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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7.1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마가복음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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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7월 13일 수요일



 


사람들이 벗어나기 힘든 사고방식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머리 속에 제일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생각이 바로 ‘인과응보’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는 항상 그 원인이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지요. 물론 이 말은 맞습니다. 이 세상은 인과응보의 세상입니다. 결과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결과가 있다는 것은 원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우리가 한 가지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항상 사람에게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 없으면 안되는 필수적인 것들의 경우 그 원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사람에게 은혜가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또 영적인 생활도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조차도 이 사실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자꾸 은혜로 이루어져 가는 신앙을 자신이 무언가를 해서 자격을 갖추고 얻어 마땅한 것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망각이 이 일의 원인이 될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있는 자랑하기 좋아하는 마음이 이 일의 원인이 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율법을 지키면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공로로 생각하고, 자랑거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큰 죄를 짓고 더 악해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율법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이야기하는 바는 똑같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 남성들은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든지 이혼증서를 써 주기만 하면 아내를 내보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런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완전히 금지해 놓으면 그 당시 가정에서 여성은 심각한 고통과 폭력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여인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허용하셨습니다. 앞으로 그 여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증서를 써 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면 이혼해도 좋다고 하였다고 해서 그걸 지키는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고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야 말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율법이 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기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최소한 인간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 선을 넘으면 안된다고 정해 놓으신 최저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부자는 무엇을 행함으로 의로워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율법들을 지켜내는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자격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가 율법을 지켰던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었습니다.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 한 일이었지요. 그렇지만 이 사람도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의롭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자격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무언가를 해서 의로워지려면 100퍼센트 순수하게 최우선적으로, 또 독점적으로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완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그 일은 그 부자가 정말로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는 동시에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오려고 하는 어린아이들을 나무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자기들을 예수님께서 다스리실 나라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여전히 어떤 일을 행하고, 자격을 갖추고, 그래서 더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해서 남과 달라지려는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신앙과 하나님 나라의 은혜됨을 생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걸인 바디메오를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바디메오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바디메오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앞을 보게 되었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바디메오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자격을 갖추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예수님의 은혜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은혜를 얻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됨을 알고 은혜만 구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격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나라는 은혜로만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신앙 자체가 은혜라는 것과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은 더욱 더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사실을 잊게 되면 우리는 항상 자신을 높이고 내세우고 자격을 갖추려고 하면서도 구원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은혜에서는 멀어진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은혜의 은혜됨을 잊지 않고 은혜만 구하는 삶을 살아서 은혜로만 들어가는 그 나라의 백성들이 되는 복을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