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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6.08.21. 주일오전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베소서 31)

20160821SM (#1).mp3.zip





설교본문 : 에베소서 5장 8절-14절



전제 : 너희들은 빛이다, 빛의 자녀들이다. (8a)


길거리에 구정물이 담긴 병 하나가 진흙이 잔뜩 뭍은 채로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그 물병을 찬찬히 살펴보니 참 이쁘게 생긴 병인데 그렇게 굴러다니는 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담긴 구정물을 부어 버리고 깨끗하게 잘 씻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병에다 값진 향기름을 담아 잘 어울리는 뚜껑을 찾아 꼭 막아 장식장에다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병은 어떤 병이 되었습니까? 아직도 진흙이 잔뜩 묻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구정물 병인가요? 아니지요? 이제 이 병은 값진 향기름을 담은 향유병, 그것도 귀한 집 장식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값진 병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그 병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순전히 그 사람 덕분입니다. 그 사람이 그 병을 주워다가 잘 씻고 그 안에 값진 향유를 담았고, 장식장 위에 올려 놓았기 때문에 그 병은 아무 가치도 없는 구정물 병에서 아름답고 값진 향유를 담은 향유병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예수를 믿은 다음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변화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죄를 용서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지음받게 됩니다. 졸지에 진흙이 잔뜩 뭍은 구정물 병이 부잣집 장식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값진 향유병이 된 것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일어난 이런 변화들은 애초에 우리와는 전혀 상관 없이 일어난 변화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에 우리는 이 사실을 무효로 만들거나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모든 일들을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하십니다. 이제 죄를 용서받고 죄와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죄를 지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지음 받았으니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그런 사람들로 만드시고 그런 사람들로 인정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녀이고 또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꾸 오해합니다. 그런 요구들을 내가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내가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계속해서 “너는 무엇 무엇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 말씀을 자꾸 “나는 무엇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한다”라고 알아 듣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 신앙에 굉장히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들을 아직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미 백성인데 아직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미 자녀인데 아직 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여전히 옛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닮아가지 못하며, 새 사람으로 옷입지 못합니다. 아직 아니니까 자신에게는 계속해서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꾸 쓸데 없는 낙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일들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되고, 새 사람이 되는 일에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다 우리가 이미 떠나온 신앙의 출발지점을 목적지로 오해해서 생겨나는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바울이 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여전히 목적지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빛이 되고, 또 스스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을 어둠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바울은 너희가 예수를 믿는다면 ‘주 안에서’ 이미 너희는 빛이라고 말합니다. 거기는 너희 신앙의 출발점이지 목적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빛입니까? 나는 빛입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자신있으십니까? 왜 그렇지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 하나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빛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빛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이 빛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빛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빛이라는 것은 우리의 출발지점이지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빛을 빛이라고 부를까요? 빛은 어딘가를 빛을 비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빛이 되었고 그래서 예수 안에서 빛을 비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빛입니까? 우리 안에는 이미 세상을 비출 능력이 있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비출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아니다, 못한다, 소용없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이미 주 안에서 빛인 우리들이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빛이라는 것만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빛으로 사십시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빛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빛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완전히 빛으로 생각되지 않아도 의심치 않고 믿으십시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이미 빛이니까요. 


오늘 나머지 시간에는 본문 말씀을 통해 과연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을 말하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좀 살펴 보겠습니다. 


  1. 빛의 자녀로 살아야 빛의 열매가 맺힌다.(8b-10절)


우선 바울이 제일 먼저 이야기 해 주는 것은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빛의 열매들이 맺혀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우리가 어떤 열매를 얻으려면 그 열매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다른 씨앗을 뿌려 놓고서 그 열매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빛의 열매를 거두려고 한다면 당연히 빛을 씨앗으로 뿌려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밝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현재는 전혀 밝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지금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유는 너무 간단합니다. 누구나 이 사회가 밝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빛을 씨앗으로 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이렇게 어두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를 공부하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두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예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역할을 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성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그 역할을 해야 할까요? 바로 ‘빛의 열매’를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어 그 열매로 세상을 채울 때, 그것이 이 세상을 위한 예수님의 은혜와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 나라를 닮은 곳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통치와 축복을 조금이라도 더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만들려면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열심히 빛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 씨앗이 열매가 될 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이 되고, 그래도 조금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빛의 열매를 뿌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빛이 아니고 빛의 자녀도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이고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믿는 우리에게 맡겨진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자녀로 살아야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이 어두운 이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1. 빛의 자녀로 살아야 어둠을 책망할 수 있다(11-13절)


이제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두번째 이유로 넘어가 보겠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 때, 어둠이 ‘책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눈을 한 번 감아 보시겠습니까? 어떠십니까? 뭐가 보이십니까? 이것과 저것이 구별이 되십니까? 그렇지 않지요? 이제 눈을 떠 보십시오. 이제 모든 것들이 보이시지요? 어둠도 보이고 그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지요?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으면 어둠이 책망받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빛이 없을 때, 어둠은 전혀 어둠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겨진 것도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 집니다.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도 그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양심을 지키고 법을 지키며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습니다. 모두가 다 사회가 어둡기 때문에 생겨나는 혼란들입니다. 그렇지만 빛이 충분히 밝아지면, 빛과 어둠은 구별되기 시작하고 어둠은 어둠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숨겨 놓았던 부끄럽고 은밀한 일들을 스스로 드러내게 됩니다. 


다들 아침에 집에서 나오실 때, 거울을 보고 나오셨지요? 저도 강단에 서기 전에 늘 거울을 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 거울이 여러분을 비난한 적이 있습니까? 손가락질 하면서 웃어댄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겸연쩍어 하면서 얼굴에 뭍은 머리카락을 떼고, 잇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빼기도 하며, 헝크러진 옷 매무새를 고칩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서 그렇게 하는 이유는 거울이 우리를 지적하며 우리를 비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거울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어서 잘못된 곳을 스스로 보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거울이 그렇게 우리를 책망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책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람을 비난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짜 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진짜 선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악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꽉 찬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 주는 것이 가장 강하고 효과적인 책망입니다. 거울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들을 위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빛의 자녀로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들의 거울이 되어,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스스로 어둠의 일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그들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깊게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들을 책망하는 거울이 될 때,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며 어둠의 일을 버릴 수 있고, 빛으로 나와 자신도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어디가셔서 누구를 만나시든지 항상 나는 거울이라고, 저들을 말 없이 책망하는 ‘거울’이 되라고 나를 거기로 보내셨다고 여러분 자신에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쁘고 그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책망받아 바른 길로 나아오는 아름다운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충고 :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9절 참조)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할 첫번째 이유가 그래야 우리 삶에 빛의 열매가 맺혀져서 그 열매가 세상을 빛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면, 두 번째 이유는 그래야 그 열매로 우리가 세상을 책망하여 세상도 스스로 빛으로 나와 빛이 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빛의 자녀답게 살면서 빛의 열매를 맺으려면 잊지 말고 부지런히 해야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는 것, 그러니까 ‘심사숙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열매를 거두려면 빛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씨앗에서 빛의 열매가 맺혀질 지, 씨앗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능력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열심히 씨를 뿌린 우리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지를 심사숙고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그것도 빛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 씨앗을 골라야 할까요? 그게 볍씨라면 소금물에다 띄워라도 보겠지만 빛의 열매를 맺을 씨앗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가려낼 수 있을까요? 다행히 바울은 9절에서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거기서 바울은 빛의 열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안)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빛의 열매는 열매 자체가 착하고 의롭고 진실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과 나, 그리고 하나님과 이 세상의 관계를 회복하고 깊게 만들어 주며, 바르고 정직합니다. 항상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빛의 열매는 언제나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씨앗’에서 자라납니다. 무엇이 빛의 열매를 맺을 씨앗인지를 구별해 내려면 우리가 하려고 하는 행동을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심사숙고해서 잘 살피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동기에서 그 일을 하려고 하고 있는지, 또 내가 그 행동을 했을 때,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를 심사숙고 해 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을 씨앗들이 어떤 씨앗들인지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심사숙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심사숙고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살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빛의 열매를 맺을 씨앗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생각하는데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생각하면서 사는 일을 귀찮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실지 많이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자신을 훈련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빛의 씨앗을 뿌려 빛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4.   결론 (14절)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답게 살아갈 때 이 세상도 우리를 통해 참 빛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참 빛이신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고, 스스로도 빛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아름답고 선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 우리도 빛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살면서 빛의 열매를 맺으면 그 영광과 칭찬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다가 오는 한 주간도 열심히 빛의 자녀로 사십시오. 빛의 씨앗을 잘 분별하고 그 씨앗을 열심히 심어 빛의 열매를 많이 거두는 빛의 자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가오는 한 주간도 우리로 인해 이 세상에 밝은 빛이 더해지는 그런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