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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9.0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요한복음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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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9월 6일 화요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무엇을 보고 판단할 때, 자신은 굉장히 넓게 보고 정확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 중에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확신은 거의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람들이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래도 불안하지 않게 자신을 믿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폭 넓게 보고 유연하게 생각하며 비교적 치우침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비교적 그럴 뿐이고 그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가진 맹점은 그만큼 더 어둡기가 쉽습니다. 


요한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태어나면서부터 맹인된 한 사람을 고쳐 주신 일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참 재미있게도 그 맹인은 예수님 덕분에 앞을 보게 되었지만, 오히려 자신은 절대로 눈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 일 때문에 영적으로는 어떤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그리고 어떤 사람은 완전히 눈멀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자들은 그 맹인의 장애가 그 사람이나 혹은 부모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맹인을 고쳤다고 해서 예수님은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유대인들은 고침 받은 맹인이 자신을 고친 사람이 적어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조목 조목 설명하자 그 사람에게 죄 가운데 나서 맹인이 되었으면서 감히 자신들을 가르치려 드느냐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제자들은 인간의 불행에 죄라는 이유 말고 다른 커다란 의미와 섭리고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이 정한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죄인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절대로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가르칠 수 없으며, 자기들은 죄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는 편견과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맹점’이었고, 이 맹점은 그들을 때로는 작게 그리고 때로는 심각하게 영적으로 그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가장 잘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가장 심각하게 눈 멀어 있었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맹인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맹인은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눈 멀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눈을 뜨고 빛을 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맹인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대답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눈 멀어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 말이지요. 


모든 사람들은 눈 멀어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눈 멀어 있습니다. 우리도 나면서부터 영적으로는 눈이 멀어 있고 그 눈을 뜨는 방법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눈 멀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눈을 떠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눈 멀어 있어야 눈을 뜨기를 간절히 원하고 그 방법을 알았을 때, 그리로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 눈이 온전치 못합니다. 시력도 좋지 못하고, 또 맹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다는 것에 불안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싫어서 굳이 잘 보지 못하는데 다 보는 척 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그렇게 속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우리를 더 온전히 보게 해 주실 빛되신 예수님이 계시니까요. 


예수님이 빛이시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빛이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무언가를 보게 해 주고 더 분명하게 뚜렷하게 보게 해 주는 것이 빛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보아야 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인생과 이 세상을 정말로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영적인 시력이 뿌옇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보지 못하는 맹점이 많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우리는 더 뚜렷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빛되신 예수님, 우리의 눈을 고쳐 주시는 의원인 예수님께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족함이 그렇지만, 예수님 앞에서 인정된 우리의 눈 멈은 오히려 우리를 더 분명히 보고 확실히 보는 사람들이 되게 해 줍니다. 우리가 그렇게 빛되시고 의원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더 풍성하게 경험하게 해 줍니다. 날마다 자신의 눈 멈과 희미한 영혼의 시각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서 날마다 더욱 더 온전히 보게 되는 복을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