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사람들은 누구나 진리를 옳다고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진리는 누가 보더라도 옳은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막상 진리를 말해 보면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참 이상합니다. 왜 뻔히 생각해 보아도 맞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해 보면 알게 사람은 진리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입장이나 유익, 그리고 그 당시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17장 속에는 복음을 듣고 서로 다르게 반응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진리가 아닙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만큼 사람들에게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진리는 없는지도 모릅니다.
첫번째 사람들은 갈라디아에서 만난 유대인들입니다. 물론 갈라디아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 그것도 꽤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시기했습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그래도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는데 바울만큼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바울을 핍박하려고 하였지만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멈춰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습니다. 그 대신 바울을 지지하고 따랐던 야손이라는 사람을 모함해서 어려움을 당하게 했습니다.
두번째 사람들은 베뢰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에서 참 진지하고 정직한 사람들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 보인 반응이 다른 곳에서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베뢰아 사람들도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당장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태도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그 결정을 미루고 계속해서 바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복음에 대해서 심사숙고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그들이 복음을 듣는 태도는 ‘간절했습니다’. 아직 복음을 확실히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 있었지만 바울의 메세지가 가지고 있는 무게만큼 무게를 실어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복음이 정말로 진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그래서 믿게 되었는데, 그렇게 믿게 된 사람들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과 특히 남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번째 사람들은 아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복음을 어떤 변변치 못한 종교에 대한 이야기나 혹은 또 다른 철학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하며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덴 사람들 중에서는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주 적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거기서는 아주 적은 열매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이 만들어 내는 열매는 그 말씀에 대해 보이는 반응에 따라서 여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떨어진 씨앗은 똑같지만 그 씨앗이 떨어진 땅에 따라 맺힌 열매의 양은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 우리는 복음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도 들을 수 있고 또 저렇게도 들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내 이익을 중심에 놓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내 이익에 반하는 말씀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 조차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 경우가 제일 좋지 않은 경우입니다. 또 아덴 사람들처럼 오로지 지적인 관심과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관심은 있으니 조금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사람들의 문제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서 말씀을 판단하는 자리로 올라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머리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내 취향에 따라서 듣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가슴과 머리로 함께 들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베뢰아 사람들은 아주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중요한 말씀이니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성경과 맞추어 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그게 참된 말씀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사실 예수님을 믿기가 그리 쉽지 않을 수 있는 헬라의 귀족부인들과 남자들도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은 그렇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말씀이 진리라면 나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담고 있다고, 나를 살리는 말씀이 될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기대가 기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만 가지고 들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들려오는 말씀을 맹목적으로 받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말씀을 통해 들려오는 메세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듣기 좋아도, 내 마음에 맞아도 하나님 말씀과 다르면 그건 적어도 기독교의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듣고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한 말씀이 성경의 진리와 일치한다면 그 말씀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믿음의 재료로 사용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내 믿음의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되며, 내 믿음을 채우는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은 더욱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세워지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른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실 때, 꼭 가슴과 머리를 함께 사용하십시오. 옆에다는 성경을 놓고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베뢰아 사람들처럼 하나님 말씀 앞에서 바른 모습을 잘 지켜내서 언제나 말씀이 주는 유익과 믿음을 얻는 은혜 가운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