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하나님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사람이 교회에 다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형식적인 문제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저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저 역시 그들의 이야기가 거짓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정말 자신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울은 드디어 공회 앞에 섰습니다. 공회라고 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와 정치를 모두 책임지는 어마 어마한 집단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 앞에 자기 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서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바울만 바라보고 있을 때, 바울은 입을 엽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이 말은 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명령했습니다. 바울의 입을 치라고 말이죠. 이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아직 재판도 시작하기 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바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향해 회칠한 담이라고 소리칩니다. 율법에 따라 재판하는 곳에서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벌을 내리라고 하니 그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그 위선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대제사장을 비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은 그 사람이 대제사장인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면 안된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얼핏보면 갑지가 태도를 바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제사장의 위선을 지적한 것도, 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도 모두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한 행동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원래 공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공회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원래 바리새인은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고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인데, 바울이 부활이야기를 꺼내니까 서로 언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정말 예기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어떤 바리새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울 편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라고 말했고, 그 일 때문에 공회 안에는 더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소동 중에 바울이 큰 일을 당할까 싶어 천부장은 다시 바울을 데리고 병영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물론이고 공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었지만 공회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습니다. 그 엄청난 권력 앞에서도, 서슬퍼런 위협 앞에서도 그는 당당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회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던진 한 마디로 그들은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졌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 중에서는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바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한 순간에 이렇게 변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들의 모임이 바른 것과 진리를 지키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려는 모임이었고 그 날도 그래서 한 통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었고, 또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편 사람들의 편을 들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서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었던 것입니다.
참 성도는 사람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참 성도는 한결같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태도와 입장을 바꾸지 않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견고함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항상 불안정합니다. 변덕이 심합니다. 두려워하며 살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두려움 없는 당당하고 흔들리지 않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