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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0.1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도행전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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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소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혹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시키신 일을 말하지요. 제가 얼마 전에 저의 소명인 목사의 일, 그 중에서도 설교를 하는 일로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부분에서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 분은 설교에 관련된 어떤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설교자가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그 부분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설교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설교자는 몰라도 저에게 있어서는 그 부분까지도 설교자로서 저의 소명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최춘선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맨발의 전도자로 불리던 거지 전도자였는데요. 이 분이 이런 별명을 얻었던 것은 이 분은 평생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걸인처럼 사셨고, 또 그렇게 전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사셨느냐고? 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말이지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분에게 실제로 그런 질문을 하고 또 그렇게 그 분을 못 마땅하게 여겼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기자가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명은 각자 각자, 그 누가 뭐래요? 그 누가 말려요?”라고 말입니다. 


사명이라는 것, 또 소명이라는 것. 이것은 사실 다 비슷한 것 같지만 각자 각자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리고 그 소명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 밖에 없고, 그것이 아니면 아얘 그 일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무 지나치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소명을 비웃기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명을 받은 사람은 그런 비난과 오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꼭 그 일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은 누가 보아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섶을 들고 불로 뛰어드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붙들리는 장면을 환상을 본 예언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이것은 말려야만 하는 일로 여겼고 그래서 바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눈물로 바울을 뜯어 말렸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도 각오하였느니라” 이러니 더 이상 바울을 말릴래야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게 해 달라는 기도만 드릴 수 있었을 뿐입니다. 


아마 바울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바울을 참 무모하고 사려깊지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참 유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바울의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에 가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로 결론나더라도 거기에 목숨을 걸고 순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말리고 오해한다고 어떤 모양으로건 타협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바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어쩌면 이와는 정반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소명은 굉장히 느슨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선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처럼 여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고 우리는 그 습관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명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라면 우리는 그 소명을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과 남의 소명은 내가 이렇게 저렇게 평가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그게 정말 별것 아닌 일에 고집스럽고 완고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게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이니까요. 


우리는 그것이 나의 소명이든, 다른 사람의 소명이든 그 소명을 존중해야 하고 또 그 소명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소명을 귀하게 여기고, 그 소명을 행하는 일을 행하는 일도 귀하게 여겨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