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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0.2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로마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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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오늘 부터는 로마서를 함께 읽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성경이 보석반지라면 로마서는 그 반지의 보석이라고 말이지요. 그만큼 로마서가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에 대해서 가장 집중적이고 또 자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립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는 오히려 다른 성경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성경학자들도 이 로마서에 대해서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말씀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많이 달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로마서를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그것 때문에 로마서의 진리 자체가 망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지요.  


로마서는 그 초두부터 이 책이 복음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쩌면 성경이 들려주는 복음에 대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누구에 대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있는 것은 그 사실이 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기독교는 성경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성경을 믿는 이유가 바로 성경이 진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은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자이시고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다른 구원이나 내가 바라는 구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약속한 그 구원자만이 참된 구원자이시고 그 분이 우리에게는 성경이 약속한 구원만이 우리가 받아야 할 참 구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성경만 가르쳤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믿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누구를 어떤 분으로 믿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바울은 로마와는 별로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로마 교회를 세운 것도 바울이 아니고, 바울은 지금까지 로마에는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바울은 정말 정말 로마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하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어 교회가 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들려주는 일은 어떻게 보면 필요 없는 일처럼 보여지지만 실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저런 혼란으로 이제껏 참된 복음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을 그들에게 참 복음을 들려주는 일만큼 시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은 처음 예수를 믿을 때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저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복음은 반복해고 듣고 듣고 또 듣고,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배우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 신앙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초이기도 하고 기둥이기도 하며, 우리가 그 안에 사는 집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반복해서 듣고 또 들으면서 내 믿음이 그 안에 세워져 있는지,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그 복음 안에 머물고 있는지를 잘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자꾸 복음에서 멀어져 가고, 또 복음 아닌 것을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복음을 전하기를 그렇게 원했던 이유는 자신이 믿는 바를 정확하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이후에 선교사역에 동역자로 삼기 위해서 였습니다. 만약 로마교회가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울을 의심한다면 그 일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이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앞으로 언제 로마에 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편지를 먼저 보낸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에 대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은 절대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복음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이 믿음이 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중간에도 말하고 있지만 복음은 하나입니다. ‘그 복음’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믿을 때 비로서 그 사람을 살리고 또 살게하는 생명의 능력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가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는데, 바울이 보기에 유대인들은 아직 복음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명사였습니다. 복음은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의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게 해서 의인으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지요. 그렇게 사람들을 참 유대인으로 만들어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자신들은 그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만약 율법으로 의로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도 복음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습니다. 처음에 의로움을 덧입을 때도 그렇고 그 다음에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도 그렇습니다. 의인은 철저히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의나 공로가 아니라 말이지요. 그리고 복음은 우리 속 사람을 바꿔냅니다.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 속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어 갑니다. 믿음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며 보면 이 사실을 자꾸 잊게 됩니다. 자꾸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하고 그것을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서 무슨 자격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의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의는 깨어지고 맙니다. 


언제나 복음 앞에 자신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전히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의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언제나 복음 위에, 그리고 복음 안에 세워져 있게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