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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1.1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고린도 후서 5-6장)


설교일 : 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생각할 때, 자꾸 오해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 예수를 믿는 신앙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복되게 해 주는 원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실은 정반대입니다. 그리고 그런 오해가 너무 널리 퍼져 있는 바람에 예수 믿는 신앙은 더 이상 그 능력과 참된 복과 영광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그럼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서 항상 어둡고 침울하며 불행하게 할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일보다 복된 일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일보다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과 즐거움은 흔히 말하는 그런 행복과 즐거움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이며, 나아가서 우리의 부활을 믿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부활을 믿는다는 말을 그저 죽었다가 다시 살 것을 믿는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만 확실히 믿어도 굉장합니다. 내가 죽었다고 다시 살 것을 정말로 믿고, 그것을 기대하며 산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두려워 해야 할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을테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것 이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복된 삶의 방식을 나의 부활을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로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 부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활은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때 일어날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모델이 됩니다. 우리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과 많이 닮게될수록 우리의 부활 또한 그만큼 영광스러운 부활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부활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그 십자가를 닮아 있었던 예수님의 삶 때문입니다. 


바울이 부활을 소망하면서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부활이 그만큼 더 영광스러워진다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말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그것 때문에 불편하고 힘드는 것은 너무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국교회는 잘못하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사람들을 교회로 많이 모은다는 미명 하에 한국교회는 이미 종교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부담없이, 불편함 없이, 포기할 것 없고 내려 놓을 것 없이 교회에 올 수 있게 만듭니다. 온 가족이 주일 하루 편안하게 부족함 없이 머물다가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의 계산은 틀리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를 찾습니다. 그렇지만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성도들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의 영광입니다. 교회가 나서서 그들의 부활의 영광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교회는 조금 부족하고 불편한 곳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돌아가지 않는 그런 교회가 더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을 생각한다면 제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다가오는 심판을 두려워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 심판을 기다리고 있고, 그 심판이 하나님의 정직하고 의로운 성품에 따라서 정확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답은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바로 앞 구절인 5장 9절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힘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부활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오히려 그가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는 일이 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 땅에서 살았던 예수님의 십자를 닮아있는 삶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이 참으로 능력있는 신앙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부활에 대한 소망이 빛나게 될 때, 나의 소망이 그 부활을 더욱 더 영광스러운 부활로 만드는 것이 될 때, 우리의 신앙은 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그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수 믿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부활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부활을 조금이라도 더 영광스러운 부활로 만들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 심판마저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살 수 있는 담대함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