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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11.18. 금요기도회 -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시편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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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설교분문 : 시편 22편 9-21절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상황 속에 던져지곤 합니다. 그 중에는 좋은 것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지요.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셨습니까? 좋은 일이 더 많으셨습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은 나쁜 일이 더 많으셨습니까? 아마,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았던 그런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삶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인생이 진짜 우리가 살아온 인생과 다른 첫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는 아주 특별히 좋은 일만 좋다고 여기지 평상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숨을 끊임 없어 쉬고,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키고, 걷고 뛰어다닐 수 있고, 몸과 정신이 성장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 등등. 실제로 그 일이 불가능해 지면 정말 큰 일 날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우리는 좋은 일이 주는 기쁨과 만족은 그리 크게 그리고 오래 느끼지 못하지만 나쁜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과 상처는 지나치게 크게 느끼고 그런 것들에는 오랫동안 붙들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인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이미 9가지의 좋은 일이 있었지만 거기에 한 가지의 좋지 않은 일이 덧붙여 지면 우리는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인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 하는 생각에 붙들리게 되고, 99가지가 충분해도 한 가지가 부족하면 자기 인생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부정적인 경험들만이 크게 과장된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 9절부터 보면 다윗은 이제 다시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심한 고난과 고통 때문에 그의 마음과 영혼은 이리 저리 휘청거렸지만 이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일이 다윗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로 계속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지점에 가까이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12절과 13절을 보면, 지금 다윗은 ‘사람들’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산의 숫소들처럼 드세고 사자처럼 잔인한 원수들이 다윗을 해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일로 인한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약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다윗의 말을 들어보면 설마 정말 이 정도였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표현하시기 위해서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하셨던 것을 보면 다윗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지킬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자아는 물처럼 쏟아져 내렸고, 마음은 촛농처럼 녹아버렸습니다. 힘도 완전히 바닥나 버렸지요. 그래서 바로 눈 앞에서 대적들이 자기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대항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야 말로 헤어나올 길 없는 고난의 늪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아마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경우에 우리가 어떤 마음과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지는 잘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상황이 이쯤되면 우리 눈에 내 인생이나 이 세상의 밝은 면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생각만 들고, 왜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이런 일들만 계속 일어나게 하시는가 하는 냉소적이고 원망 섞인 말들만 입에서 흘러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말들 때문에 그런 상황에 더 단단하게 묶이게 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냉소적이고 거칠고 비관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 중에는 이런 고난의 피해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그 당시 자신의 삶이 그럴 뿐이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지금 당장의 현실이 그럴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이라는 렌즈나 몇 차례 반복된 부정적인 경험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보고 이 세상을 보니 그렇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다윗이라고 왜 자기 인생이 불행 투성이로 보이지 않았겠고, 이 세상이 불의로 가득찬 세상으로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며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애썼던 자신에게 그런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이 닥쳤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덥썩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기 인생을 찬찬히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자기 눈에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평안할 때, 아무 일 없을 때, 특히 큰 은혜를 경험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묵상해 보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전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하니 아무런 고생도 없이 그저 곱게만 자란 사람 같다구요. 그런데, 아닙니다. 제 인생은 그리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단지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만 겪어보지 않았을 뿐이지 저도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다들 놀라십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구요. 저희 집 큰 아이가 며칠 전에 저에게 그랬습니다. 아빠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정상적으로 자란 것이 기적이라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구요. 정말 정신적인 건강을 잃게 될 상황도 자라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정도라도 건강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제가 어머니의 태 중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순간 순간 저를 지키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제가 하나님을 붙들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걸 항상 그렇게 생각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다윗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 자기 영혼을 속이려고 할 때, 거기 속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은 있었고 고통은 극심했지만 그래서 자기 인생에 비관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원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 이전의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인생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온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 덕분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1절로 가 보시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며, 예전에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을 구해 주셨다는 것을 말이지요. 


 12절부터 20절까지 이어지는 다윗의 기도 속에는 지금 다윗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 기도는 더 이상 자기의 고통과 고난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기도가 아닙니다. 비록 이전보다 더 간절하고 이전보다 더 다급하지만 이제 다윗의 기도는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습니다. 이제 다윗의 기도는 오로지 한 방향만 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다윗이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에게로 눈길을 돌리자 거기 변함 없이 서 계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단 한 번도 변함 없이 이제까지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가장 적절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자신을 도우셨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눈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지독한 근시안이라서 먼 곳을 내다보지 못하고 항상 지금 당장 여기에서 나에게 부딛혀 오는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을 때는 좋기만한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상황이 나빠지면 쉽게 절망합니다. 또 상황이 나쁠 때는 나쁜 것에만 눈길을 고정합니다. 그래서 어둡기만한 것이 내 인생이고 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분노하고 좌절에 빠지지요. 우리가 이렇게 근시안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조금 더 멀리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라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삶, 그리고 내가 경험한 세상을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나의 삶과 이 세상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또 이전처럼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그 어둠들을 걷히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정말 변함 없이 신실하신 분이 저와 여러분이 믿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지금 눈 앞에 있는 현실, 항상 흔들리고 변하는 그런 현실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 없이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께 눈길을 고정하고 조금 멀리 내다보는 연습을 하십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과거에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인생 속으로, 그리고 이 세상 안으로 찾아오셔서 그 분의 선하신 뜻대로 모든 것을 바로 잡아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그 하나님을 향해 동일한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래서 항상 변함 없으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