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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10.28. 금요기도회 -시편 13. 여호와의 율법은2(시편 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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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설교분문 : 시편 19편 7-10절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도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설교 준비를 하려고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도 하나님 말씀을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오늘 우리는 왜 그렇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아마도 첫번째 이유는 우리가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가족끼리 식사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다 보니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 생활이 만들어 내는 피곤함도 우리가 말씀을 읽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고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유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라고 한가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으니까요. 왕치고 한가한 왕이 없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운 왕이 없지요. 그렇지만 다윗은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깊게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다윗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살펴 보다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저는 다윗이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그저 읽고 묵상했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깊이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19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 속에서는 저렇게 아주 다양하게 하나님 말씀을 경험했고, 그 때마다 그 말씀들을 통해 자기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얻곤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물론 먼저 말씀의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이었겠지만, 그가 그 말씀을 마음과 생각 속에만 넣어두지 않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가져다 주는 실제적인 도움과 능력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손과 발로 내려가야 합니다. 머리에 없는 말씀은 가슴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가슴까지 가지 않은 말씀이 손과 발까지 내려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손과 발까지 내려가지 않은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순금보다 더 귀한 말씀, 꿀과 송이꿀보다 단 말씀이 되기는 정말 어렵겠지요. 저 자신부터 말씀을 더 가까이 하고, 더 많이 순종하고 더 많이 경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과 같이 말씀에 젖은 말씀의 사람이 될 때, 비로소 말씀의 진짜 은혜와 유익을 알 수 있을테니까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다윗이 경험했던 하나님 말씀의 그 깊고 풍성한 은혜들을 누리게 되고, 그래서 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다윗의 세 번째 고백부터 살펴볼텐데요. 다윗이 세 번째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은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정직하다는 말은 ‘옳고 곧고 적절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서 일러주는 충고와 가르침은 적절할 수는 있어도 항상 옳고 곧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가르쳐 주는 방법들은 일을 되게 하고 또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에 효율적인 것이지 바른 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정직한 영혼을 가진 성도들의 마음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주지 않지요.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할 때, 종종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부모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제 아이들에게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기쁘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들 그렇게 하는 것과 다를지라도 성경이 말하는 가치를 가르치고 그것을 따르라고 요구하면 마음이 기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원래 거듭난 사람들은 진리를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원래부터 거듭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딱 맞는 부품처럼 맞아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르침이 성도들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가르침과는 달리 하나님의 가르침에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가르침 대로 따른 사람치고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악한 것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방법이 만들어 낸 열매에도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 결과가 마지막에 그 가르침을 따른 사람의 마음을 아무런 거리낌 없는 기쁨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줍니다. 


다윗이 들려주는 말씀에 대한 네번째 고백은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는 것입니다. 계명은 명령을 말하지요. 주로 ‘이건 해라, 저건 하지 말아라’라는 모양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이야기 합니다. 아마 십계명이 가장 대표적일텐데요.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들은 모두 100퍼센트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불순물이 전혀 섞여 있지 않은 순금같아서 자신의 눈을 밝게 해 준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명령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우리에게 하는 명령,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이 우리에게 하는 명령은 다 순수하지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다 편견과 자기 입장, 그리고 자기 이익이 섞여 있습니다. 특히 우리 마음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은 더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이미 죄가 있습니다. 자기 중심성이 있고 이기심이 있으며, 시기심이 있고 미움이 있으며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한 일들에 대한 반감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은 언제나 이런 것들을 통과한 것들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그저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을 따르면 우리는 바르고 선한 것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눈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그런 죄악들로 어두워지고 흐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우리의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거룩하시고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게다가 하나님의 명령들 속에는 하나님의 사심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들과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가장 복되고 조화롭게 만드는 방법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죄로 오염된 자신의 눈을 씻은 사람들은 그 눈이 밝아집니다. 판단을 흐리는 어두운 것들과 더러운 것들이 씻겨져 나가서 항상 이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그 사람들은 성품도 아름다워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믿지 않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렌즈로 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본 것을 통해 자기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따라 세상을 보는 사람은 항상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볼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가장 바르고 유익한 것을 선택하는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이 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계명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른다고 말합니다. 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라는 말은 그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뜻이 되는데요.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우리의 죄악됨과 더러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자기 자랑, 자기 의… 이런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지요. 그냥 내버려 두면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들을 직면해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대번에 깨닫게 됩니다. 깨끗한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면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또 형편없는 존재인지,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이 두려움이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알고 하나님 답게 신앙하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거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라고만 배우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말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그 역할을 해 주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제대로 출발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면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두려움이 깨끗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깨끗하다는 말은 제물의 정결함을 말합니다. 점 없고 흠 없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만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은혜와 복을 약속해 주셨어도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 모든 복과 은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들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고마운 일입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할까요? 그래야 죄가 무서운 줄 알게 됩니다. 그래야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향한 소원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그 죄가 나를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이 나를 하나님 곁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두려움만이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려움이 우리를 죄의 결과인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이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주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정결한 제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법은 진실하여 다 의롭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법은 판단을 말합니다. 하늘 법정의 재판장으로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판결을 의미합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판은 진실합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그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이지요. 다윗은 그래서 하나님의 판결은 진실하고 그래서 의롭다고 말합니다.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기 때문에,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큰 유익을 누립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 안 그런 것 같지만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잘 모릅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최모 여성은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했다지 않습니까?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모두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잘못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과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그것이 어디가 얼만큼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는 최고로 유익한 것입니다. 그 판결이 의롭기 때문에, 우리를 의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적으로 옳다는 뜻이고 둘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 안에서는 같은 뜻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말씀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내리는 판결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회개할 것입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며 그 행위를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입니다. 그 판결 자체가 우리를 정죄하고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판결을 빨리 인정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으로 들어와 그 복과 은혜를 다시 누리라는 하나님의 초청인 셈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자기 영혼을 소생시키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을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며, 눈을 밝게 해 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해 주었으며, 자신을 정결케 하며 다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했고, 그 말씀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은요. 절대로 소홀히 여기면 안됩니다. 그게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하는 말씀이든, 강단에서 들려지는 말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 속에 여러분을 위한 모든 복과 은혜들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과 은혜로 가는 지도를 그려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주신 은혜의 방편이 하나님 말씀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이 우리 삶과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다윗은 이 말씀을 많은 정금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만큼 보배와 같은 은혜들을 많이 찾아 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그 말씀의 길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은 여러분에가 정금이 되고 꿀이 되어 줄 것이며,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고 기뻐하는 여러분의 보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의 복과 은혜를 제대로 알고 누리는 복을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