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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10.14. 금요기도회 - 시편 19편 1 :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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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설교분문 : 시편 19편 1-14절



“저 하늘은 말하네 주의 영광 저 하늘은 말하네 주의 영광  

이 날 말하면 저날은 듣고 이밤 알리면 저밤 전하네

저 하늘은 말하네 주의 영광 창공은 놀라운 주 솜씨알리네 

그 말이 퍼져나가네 온세상에 널리 울려퍼지네 

울려 울려 울려퍼지네 울려 울려 울려 울려퍼지네 

저 하늘은 말하네 주의 솜씨 

창공은 놀라운 창공은 놀라운  주솜씨 솜씨 알리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열 세 번째 곡의 가사인데요.  하이든은 천지창조를 주제로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는데 시편 19편의 1절부터 4절까지를 가져다 오라토리오의 열 세 번째 곡의 가사로 사용했습니다. 다른 곡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곡만큼은 교회 찬양대에서 많이 연주되고 있어서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노래는 마치 돌림노래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쪽에서 한 소절의 절반을 노래하면 다른 쪽에서 나머지 절반을 노래합니다. 그렇게 나눠졌다가 합쳐지고 또 합쳐졌다가 나눠지고… 그 화음과 주고 받는 노래들이 정말 아름답고 웅장합니다. 역시 하이든은 위대한 작곡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9편의 시적인 분위기를 노래로 그대로 살려냈습니다. 


맨 처음 찬란한 한낮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받아서 밤 하늘이 까만 벨벳 위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같은 별빛으로 하나님의 솜씨를 노래합니다. 이제 세번째 파트입니다. 어제의 낮은 오늘 낮에게 낮의 노래를 건네 줍니다. 오늘 밤은 내일 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노래합니다. 그렇게 해서 낮과 밤의 하늘, 그리고 밤과 낮이라는 모든 시공간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위대한 찬양이 모든 시간, 모든 곳에 울려 퍼집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알고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말이지요. 그렇게 낮의 하늘과 밤 하늘, 그리고 밤과 낮이 이어받고 어우러져 하루 하루의 찬양을 이어갈 때, 매일 그들이 노래하는 무대 위에 힘차고 젊은 테너가 등장합니다. 그리고는 아주 열정적인 독창을 들려줍니다. 그 독창자의 이름이 바로 태양입니다.  


다윗은 무대 아래 객석에서 이들이 주고 받으며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과 감동을 그대로 시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과연 어떤 노래를 들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들은 노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다윗이 들은 노래 속에는 사람의 언어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심지어는 의미없는 소리나 소음까지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노래는 분명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에 실린 하나님의 말씀마저 분명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온 세상 구석 구석에 울려 퍼져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귀에는 그 소리가 똑똑히 들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청주파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청각을 가진 동물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을 소리의 단위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당연히 가청주파수가 있는데요. 바로 이것 때문에 사람은 너무 작은 소리는 물론이고 너무 큰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만약 사람이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사람은 아마도 미쳐버릴 지도 모릅니다. 온 세상에 있는 온갖 소리들을 다 듣게 될테니까요. 또 아주 큰 소리를 듣게 된다면 우리 귀가 남아나질 않을 것입니다. 금새 귀가 멀어버리겠지요. 그러니, 우리 귀가 가청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귀를 보호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 소리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귀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뿐입니다. 소리가 있지만, 그 소리가 지금도 들려오고 있지만 그 소리가 어떤 소리는 너무 작아서, 또 어떤 소리는 너무 커서 우리 귀의 가청주파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하자면 우리 영혼에도 가청주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가청주파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듣는 것을 어떤 사람은 듣지 못합니다. 


다윗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온 하늘과 천하 만물이 다 함께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양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그건 인간의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어떤 소리나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하늘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다, 밤과 낮이 서로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 구석 구석 퍼져나가 그 세상을 채우는 것을 들었다’고 말이지요. 다윗이 참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다윗은 지금  그저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그가 받은 감동과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비유적으로 말이지요.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진짜로 ‘들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사람의 언어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라고 말했고, 심지어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온 적이 없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했고, 그 말씀이 세상 구석 구석으로 퍼져나가며 세상을 가득 채웠다고 자신이 들은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그저 비유라면, 그저 느낌이었다면 다윗은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고 음성이 들렸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말할 때처럼 말이지요. 


다윗은 그 때, 그 놀라운 찬양과 말씀을 ‘들을 귀’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없는데, 말씀도 없는데, 심지어 소리도 없는데 그 모든 것들을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것과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일은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A,B,C 이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눕니다. 한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대화를 나누었으니 모두의 귀에 들린 이야기가 똑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B라는 사람은 A가 전혀 하지 않은 말을 듣습니다. A가 언어나 소리로 전달한 적이 없는 내용을 말이지요. 그래서 나중에 대화가 끝나고 나서 B가 A에게 ‘아까 너 그랬지?’라고 하면 C는 어리둥절 합니다.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A는 깜짝 놀랍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 말로 표현한 적도 없었고, 어떤 몸짓으로 표현한 적도 없는 이야기를 B가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B가 그만큼 A에 대해서 민감하고 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직 A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말까지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과 놀라운 솜씨를 노래하는 것을 듣고, 낮이 낮에게, 밤이 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영혼이 그만큼 하나님께 대해서 예민해져 있었고, 또 그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것을 듣고 그렇게 감동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자기 몸에 무슨 음식이 필요한지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맛이 강한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되고, 또 화학첨가물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서 그 감각을 잃어버려서 어른이 되면 자기 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길들여진 것들만 찾게 된다고 말이지요.  


저는 다윗의 고백을 들으면서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 너무나 확실하게 우리 눈길을 끄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사는 일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리고, 또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 우리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만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오늘 예수를 믿는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감정에 대해서, 또 하나님 안에 거하는 풍성한 삶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것도 또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면에 도덕적이고 세련된 삶에 대한 이야기, 복을 받고 위를 받고 치유를 받는 것 같은 우리의 실생활에 대한 이야기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너무나 즐겁게 듣습니다. 이런 것들은 앞서 말씀드린 은혜들에 비하면 정말 좋다고 말하기도 미안한 그런 것인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오늘 우리들은 하늘을 보고 자연을 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능력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의 솜씨를 칭찬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다윗과 같은 경험을 하지는 못합니다. 특히 낮이 낮에게 전해주고 밤이 밤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은 듣지 못합니다. 인간의 언어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낮의 하늘과 밤하늘의 노래를 통해, 낮이 낮에게, 밤이 밤에게 건네주는 이야기를 통해 온 세상 구석 구석 퍼져가는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는 이러한 능력과 감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증거하는 생생한 말씀들을 듣게 될 것이고, 그 말씀들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시간을 흘려 보내며, 세상 만물을 볼 때마다 말이지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불확실하고 불분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더욱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는다면,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영혼에 직접 전해지는 온 세상에 충만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믿음의 증거가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하나님께 뭔가 특별하고 놀라운 눈에 보이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증거를 요구하고, 그런 것이 없으면 믿음이 흔들리거나 의심에 빠지게 되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오로지 그런 것만 따라다니며 신앙생활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귀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현대인들입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감각에 의존해서 감각이 전부인 줄 알고서 살아가기가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았던 교육이 그렇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러하며,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이미 감각되어지는 것만 믿는 그런 모습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도가 세상의 이런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감각이 닫혀 버리고 맙니다. 또 이런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발버둥 치지 않으면 영적인 감수성이 무뎌지고 맙니다. 이것은 성도에게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믿음의 풍성함과 확실함이 사라지고 희미해지며 도처에 널린 믿음의 증거들을 보지 못하게 되니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이런 일을 방지하고 또 무뎌지고 없어진 우리의 영적인 감각들을 회복하려면 우리가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도 묵상해야 하지만, 이 세상도 묵상해야 합니다. 자연을 묵상하고, 그 자연을 이루고 있는 생명체들 하나 하나를 묵상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해야 합니다. 찬찬히 귀를 기울여 말 아닌 말들을 듣고, 소리 아닌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도 다윗처럼 하늘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밤과 낮이 전파하는 하나님의 말씀, 그렇게 이 세상 구석 구석으로 퍼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자주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보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기도하러 가실 때에도 밤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빛을 응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치 닫혔던 귀가 열린 사람처럼 그저 귀를 한 번 기울여 보십시오. 그리고 이번 가을에는 자연도 더 많이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시고, 떨어지는 잎사귀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감탄만 하시고, 그냥 쓸쓸해 하지만 마시고 말이지요. 이 가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좋은 계절에 영적인 감각과 감수성이 회복되어 더 풍성하고 생생한 믿음이 세워지는 귀한 복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