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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12.1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디모데 후서 1-2장)





설교일 :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디모데 후서를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사도가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데요. 1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선포하고 가르치는 복음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보다 더 온전하게 복음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복음은 생명의 약속입니다. 이 복음을 받고, 믿고, 붙들고 살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참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다른 약속은 복음이 될 수 없다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이라야만 복음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복된 소식들이 존재합니다. 공부 잘 하는 방법, 돈 많이 버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 행복하게 사는 방법 등등.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은 모두 ‘복된 소식’이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복된 소식이라고 해도 그런 소식들 중에서 사람을 새로 살게 하고, 또 영생을 누리며 살게 만들어 주는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그 소식을 받고 또 믿을 때, 그 사람을 그 사람이 참으로 살아가고 또 누려야 할 참된 삶으로 인도해 주는 그런 능력을 지닌 소식은 없습니다. 그런 소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그 복음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복음이 싹이 나고 자라나서 생명이라는 열매를 맺는 일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거의 죽음을 방불케 하는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열매를 맺도록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인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부활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능력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기 때문에 부활의 능력은 항상 죽음 이후에 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실 수 있으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결국 죄를 이기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영원한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닮은 작은 죽음들이 씨앗으로 뿌려지게 하셨습니다. 그 씨앗들이 다시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곧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복음 전하는 사람의 고난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곳에서 더 큰 생명의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 일이지요. 복음으로 인한 생명의 역사가 가장 강하고 풍성하게 일어났던 때는 마음놓고 편하게 예수 믿을 수 있을 때, 예수를 믿어도 아무런 불편함이나 손해가 없었던 시절이 아닙니다. 반대로 가장 심한 박해가 있을 때, 생명의 역사는 가장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서 고생하는 일 때문에 슬퍼하고 낙심할 수 있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참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이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같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고난을 부끄러워하면 안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자랑스럽게 여기며, 오히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그리고 한국교회가 생명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우리가 믿는 복음 때문에 그 어떤 손해나 불편함도 당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에만 능력있게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그만큼 희미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늘 한국 교회 안에서 복음과 믿음으로 인한 손해와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인기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항상 복만 받아야 하며, 잘 되기만 해야 하고, 또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말입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우리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일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정말 우리에게 유익할 것인가 말입니다. 


성경을 따라 이렇게 말씀드리고는 있지만 저 자신도 디모데 후서를 읽으면서 참 많이 부끄럽고 힘들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헌신했으면서도 그것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영광스럽게 생각한 적도, 기뻐한 적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반복해서 본문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복된 사실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그 일 자체가 언제나 크고 작은 고난을 동반할 수 밖에 없고, 바로 그 고난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오늘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가 성도로 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과 불편함들을 만날 때, 그것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환란 중에도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