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
설교분문 : 시편 24편 1-6절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을 부르는 공통적인 이름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아시다시피 ‘거룩한 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여기서 거룩함이란 따로 구별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구별된 것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구별됨은 조금은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은 스스로를 구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따로 떼어 놓으신 사람들입니다. 뭔가 특별한 점이나 훌륭한 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선택되고 구별된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별하신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성도들을 구별하신 것입니다. 물론 성도로 사는 일 자체가 너무 큰 복이고 특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성도되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처음에 성도들이 성도로 부름받았을 때는 이제 막 애굽에서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전혀 거룩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상태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성도들은 점점 성도가 아닌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성도는 거룩해도 되고 거룩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복음은 참 많이 오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은 분명히 은혜를 말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은혜로 구원을 얻으며, 은혜로 영생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100퍼센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것은 구원을 얻는 일에서만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스스로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듯이,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 죄에서 우리를 해방해 주시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이 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 용서와 구원은 100퍼센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생깁니다. 이미 100퍼센트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이 없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며 사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가들이나 고위 공무원들 중에서, 또 기업가들 중에서 심각하게 불의한 일을 저질렀다가 발각되었는데, 알고보니 어느 교회 안수집사더라, 어느 교회 장로더라, 엄청나게 악한 일을 그것도 반복해서 저질렀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목사였더라 이런 소식들이 드물지 않게 들려오고 있다는 현실은 오늘 우리들이 은혜로 얻는 구원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저 상식이나 세상의 방법을 따라 적당히 불의하게 살면서 그런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성도들은 또 얼마나 더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조금 잘 되면 무조건 하나님께서 복 주셨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왜 우리를 그렇게 구별하셨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하나님께 합당한,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 되는 것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주셨던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성령님께 의지해서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백성이 되라고 말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은 첫 사람 아담이 만들어진 이후 부터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성소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시편 24편은 그 직전에 제사를 드리러 가는 자기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지은 시 같습니다. 제사는 한마디로 은혜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얻는 자리로 가기 위해 드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우선 깨끗한 제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기준으로 볼 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한다면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제사드릴 사람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고서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조금 다른 대답을 들려 줍니다.
우선 우리가 다윗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이 진짜로 갖추어야 할 준비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사를 드리러 오기 전, 그가 살아보려고 힘썼던 거룩한 삶이 제사자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참된 제물이요, 또 제사를 위한 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제사자는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손은 제물을 들고 성소까지 가야 하는 손이고, 또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손이기 때문입니다. 그 손이 더러우면 제물도 더럽혀 집니다. 아얘 제사가 드려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깨끗한 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생업이나 직업의 영역에서의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불의한 재물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뇌물을 받으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혹은 협박해서 물질을 취해서도 안됩니다. 장사를 할 때 과하게 이윤을 남겨서도 안되고,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 질이 낮은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도 안됩니다.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손을 대면 안됩니다.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의 삶에서 이렇게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람, 이런 사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고,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습니다.
둘째, 제사자는 그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순수해야 합니다. 순수함이란 마치 순금같은 상태,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제사자는 자기 손만 잘 챙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행동을 잘 챙기듯이 자기 마음도 잘 챙겨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불순물들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절대로 형식에 머물러 있거나, 우리의 행동만 바꾸는 차원에만 머물면 안되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손을 씻듯이 우리의 마음도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마음의 더러움까지 다뤄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려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 전체를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을 씻어내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제사자는 그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허탄하다는 것은 헛된 것, 속이는 것, 허무한 것 등을 말합니다. 성경은 허탄한 것의 대표적인 것을 우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원래 없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심을 신처럼 섬기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우상이지요. 그래서 우상은 곧 우리의 욕심이고 우상숭배는 곧 우리의 욕심을 섬기는 것입니다. 욕심이 얼마나 우리를 속이며, 허무하며, 헛된 것인지를 요즘처럼 분명하게 보았던 적이 겅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악한 일을 통해 부를 취하고 권력을 취한 사람들의 잘못이 드러났고 그래서 그들이 지금껏 그렇게 쌓아올려 놓은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욕심을 부리며 사는 것이 허무하고 부질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그들이 행한 악한 일들이 발각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쌓아놓은 것이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닙니다.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나와서 ‘아닙니다,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뻔한 거짓말만 늘어놓다가 더 이상 거짓을 숨길 수 없을 때, ‘아 죄송합니다. 이제 나이가 많이 오락가락 합니다’라고 둘러대는 사람들, 더 이상 필계댈 것이 없어서 정말 거짓말한 아이들처럼 꾸중을 듣는 그들을 볼 때, 여러분은 그들의 삶이 꽉 차 있고, 무게있고 가치다고 생각되십니까? 아니실겁니다. 그들의 삶은 누추하고 구차하며 텅 비어있고 가볍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런 모양이 된 것은 그들이 이제까지 허탄한 데 뜻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 인생과 영혼이 부도나 버렸는데 말이죠. 속 빈 강정처럼 되어 버렸는데 말이지요. 성경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이라는 자리는 그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고 자기 삶과 존재에 무게를 더하고 가치를 더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설 수 있는 곳이 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네째, 제사자는 거짓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옛날에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자신의 진실함을 믿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야기에 하나님의 무게를 실었고, 자신의 말이 진실이 아닐 때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겠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믿게 하려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지당한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하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나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그리고 아무나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예배와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제사와 예배를 받으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시편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손이 깨끗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허탄한데 뜻을 두지 않는 자, 그리고 거짓맹세 하지 않는 자. 이런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자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그들을 다시 받아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는 6절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살아가는 삶을 그가 하나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와 마음이 맺는 열매로 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마음이 그런 삶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있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삶은 바르고 정직하며 마음까지 챙기는 그런 삶이 되도록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심과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복과 은혜는 그 사람이 단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것을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설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받을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구원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작더라고 희미하더라도 구원얻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답고 거룩한 삶과 내면의 열매가 맺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참으로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 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서고, 또 구한 대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풍성한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