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본문 : 에베소서 6장 14-17절
- 하나님의 전신갑주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 중에서 마지막 한 가지를 살펴 보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동안 살펴본 다섯 가지를 한 번 함께 말해 볼까요? 첫번째 나온 것이 뭐였죠? ‘진리의 허리띠’였습니다. 두번째 것은요? ‘의의 호심경’이었습니다. 세번째 것은요? ‘복음의 신발’이었습니다. 그럼 네번째 것은요? ‘믿음의 방패’였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 것은 ‘구원의 투구’였습니다. 보시다 시피 하나님의 전신갑주 여섯가지 중에서 다섯가지가 방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과 영혼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싸움에서 우리 자신을 잘 챙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많은 분들이 자꾸 잊는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살아 보겠다고,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데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나 하나 단단히 챙겨입지 않고 그저 싸움에 뛰어듭니다. 그래서 변변히 싸워보기도 전에 큰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시험에 들어 정작 진짜 이겨야 하는 영적인 싸움에서 패하고 맙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로 잘 무장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잘 챙겨야 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일하는 내내 그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영적인 안전과 하나님의 영광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시려거든 항상 자신의 마음과 생각, 영혼과 믿음부터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게 영적인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II.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섯가지 보호용 도구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공격 무기는 딱 하나만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 ‘성령의 검’이라고 부르는 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무기만 주신 것은 우선 다른 것으로는 우리의 삶과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무기만 있으면 충분히 이길 수 때문입니다. 사탄을 이기는 유일하고도 충분한 무기가 성령의 검이기 때문에 이 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가만히 보면, 다른 부분을 설명할 때는 ‘믿음의 방패’처럼 그저 ‘무엇의 무엇’이라고만 했었는데, 성령의 검은 그 뒤에 정확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검의 이름은 ‘성령의 검’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탄과 싸울 때, 우리 손에는 성령의 검이 들려져 있어야 합니다. 다른 무기로는 안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 있을 때만 우리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 사탄을 이기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말씀의 영’,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항상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말씀이 약속하는 대로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말씀을 통해 그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시험하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진리가 있는 곳에서만 일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면 우리의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의 무기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만이 성령의 검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기도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기도에도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을 덧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자체에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 말이지요.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는 오늘의 영적인 풍토는 우리 자신을 능력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전장에서 칼을 손에 쥐는 것처럼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과 그것이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게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과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시기를 원하신다면, 다시 한 번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사는 일에 다시 한 번 관심과 열심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말씀의 검은 여러분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되어 줄 것입니다.
III. 말씀을 사용한다는 것.
우리도 지금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치르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두 번은 정말 치열하고 위험한 전쟁이었습니다. 한 번은 광야에서 40을 금식하신 다음에,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맞닥뜨리신 싸움이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예수님은 결국 승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무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씀이라는 검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사용하되 그것을 제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칼을 거꾸로 쥐고 싸우면 내 손만 다칩니다. 되는 대로 휘두르면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의 검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그것을 잘 살펴보고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두 번의 예수님의 전쟁기록은 우리에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싸우셨던 모습을 잘 살펴 보면 우리가 우리 손에 쥐고 있는 말씀의 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그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을 사탄이 유혹합니다. 그 유혹들은 정말 실제적이고 강력한 것들이었습니다. 40일을 굶었는데 돌로 빵을 만들라고 합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왔는데, 세상의 왕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직접적이고 강력한 유혹들입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 엄청난 시험들을 아주 간단하게 이겨내셨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탄을 공격하는 검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은 다들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입니다. 밤에 홀로 길을 걷습니다. 예전에는 그 밤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요. 내 그림자도 나를 따라오고 달도 나를 쫓아 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라도 불면 정말 당장 귀신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집에 가려면 저 컴컴한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데, 그 모퉁이를 도는 순간 뭐가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심호흡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집에 가기까지 주기도문을 몇 번이나 외우는지 모릅니다. 그걸로도 안되면 조금 강력한 주문을 사용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이것은 애교스러운 어린아이들 버전인데요. 저는 이 이야기의 어른버전도 하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에게는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 분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정말 겸손하고 진지한 신앙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분은 자신에게 병고치는 은사가 있다는 것을 거의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고 찾아 가면 마지 못해 기도해 주시는 그런 분이시지요. 그런데, 제가 다른 부분에서는 이 분을 참 좋아했지만 딱 한 가지는 참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분이 그 분을 찾아가는 분들에게 내려주는 ‘처방’이었습니다. 벌써 이 ‘처방’이라는 말부터 무슨 냄새가 좀 나지 않습니까? 제가 들어보니 그 분은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는 꼭 이런 식으로 처방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김 집사님, 집에 돌아가서 매일 주기도문 1000번 외우세요.”라고 말입니다.
둘 다 그리 크게 정죄받을 만한 일은 아니고, 그저 웃어 넘길 수 있는 일들이지만, 두 경우에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방법이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두 경우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문설주에 붙여 놓는 부적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때, 예수님께서도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셨습니다. 우리가 밤 길에 주기도문을 외우듯 말이지요. 그렇지만, 주님은 그 말씀을 무슨 부적처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달콤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수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사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탄에게 확실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삶과 행동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그 대로 하셨습니다. 돌로 빵을 만들지 않으셨고 그 대신 말씀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사탄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셨고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 내려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대신에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나머지 삶 전체를 통해서 말씀의 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얼핏보면,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도는 기도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사람의 삶을 통해 고백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십자가는 유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죽기보다 지기 싫은 것이었습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정말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자체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 십자가를 지기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의 고백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고백대로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정말 거의 매 순간 영적인 싸움에 직면합니다. 사실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선택들이 다 영적인 싸움이니까요. 우리는 그럴 때마다 두려움도 느끼고 갈등도 하게 됩니다. 다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저 욕심을 따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붙잡아 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바로 그 모든 순간 순간이 예수님을 공격했던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때입니다. 그러면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쥐고 그 검을 치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제 정신을 차리게 도와 줍니다. 사탄의 유혹에 휘청거리던 내 생각과 마음이 중심을 잡게 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상황에 대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게 해 줍니다. 그 상황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지요. 마치 병사가 검을 손에 쥐고 높이 치켜 들 때, 자신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 서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그저 칼을 치켜 드는 것만으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칼을 들었으면 그 칼을 어떻게 해야 하지요? 말씀을 생각해 냈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 다음에는 적을 향해 휘둘러야 합니다. 적을 향해 반격을 가해야 합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적절한 하나님의 말씀이 떠 올랐으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떠오른 말씀을 손에 들고 사탄을 공격해야 합니다. 사탄을 격퇴하는 무기로 사용해야 합니다.
왠만큼 신앙생활하신 분들은 사탄이 자신을 시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치켜 드는 일까지는 그래도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공격을 알아차리고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방법을 찾아내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는 만큼 잘 이기질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말씀을 제대로 사용하는데 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분별력을 줍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한 상황파악 능력을 줍니다. 그런데 말씀이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는 것은 그저 알라고, 상황 파악을 잘 하고 잘 분별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분별한 대로, 제대로 파악한 대로 행하라고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검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분별력을 따라 선택하고 움직일 때, 그것이 바로 사탄에게 타격을 입히게 되고, 바로 거기서 우리 삶과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을 격퇴할 능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IV. 결론 : 말씀을 포기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몰라도 좋은 것이 아니라 꼭 알아야 하구요.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믿어야 합니다. 순종해도 그만 그렇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니라 꼭 순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삶을 무너뜨리고 우리 영혼을 망하게 하려고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을 이기게 해 주는 능력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이 말씀의 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시느라 많이 바쁘시지요? 정말 정신이 없으시지요? 말씀 한 구절 묵상할 짬을 내기도 힘드시지요?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절대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씀 없이 살 수 밖에 없다고, 말씀 없이 살아도 된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더 간절한 마음으로 정말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가슴에 담고 묵상하며 사십시오. 그 말씀이 하루 하루를 사시는 여러분의 검이 되게 하시고, 그 검으로 사탄을 대적하며 사십시오. 그래야 그 바쁜 삶이 바로 세워집니다. 그래야 그 정신 없는 삶이 분별력있는 삶이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삶과 영혼을 지키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말씀이 빠진 삶을 살지 마십시오. 말씀이 없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말씀의 검은 꼭 챙기십시오. 그리고 나서 삶의 전쟁터로 나가십시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검을 손에 쥐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헌신하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의 이기게 하는 능력을 제대로 누리며 사는 영광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가까이 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에 승리케 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게 하소서.
-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속에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