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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6.12.04. 주일오전 - 하나님의 전신갑주 : 믿음의 방패(에베소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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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6년 12월 4일 일요일 

본문 : 에베소서 6장 13-17절



I. 모순… 창이냐, 방패냐


옛날 중국 초나라 때, 한 장터에 무기장수가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무기장수는 그 창으로는 뚫을 수 없는 없고, 그 방패는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고 선전을 해 댔습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신기해 했지요. 그런데,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청년이 무기 장수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무기장수 양반,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나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이 부러질까요? 아니면 방패가 뚫릴까요? 우리가 사용하는 모순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라고 합니다. 세상에 그 두 가지가 다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둘 중의 하나는 있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그 때부터 창 모(矛)자와 방패 순(盾)자를 함께 써서 말이 안되는 이야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을 모순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데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아무 것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 중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창을 택하실 분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방패를 택하실 분 손 들어 보십시오.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더 머리가 좋은 사람일까요? 아무래도 방패를 선택한 사람 쪽이 더 머리가 좋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공격무기가 있어도 그 무기가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그런 방패는 공격으로부터 생명은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지 않아야 이길 가능성도 생긴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최선의 방어는 승리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I. 믿음의 방패가 필요하다


믿음의 싸움, 영적인 전쟁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다른 부분의 무장이 잘 되어 있고, 공격무기가 완벽하다 해도, 아예 방패가 없거나 그 방패가 엉망이라면 다른 것들은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치르는 영적인 전쟁은 형태상으로 보면 현대전이 아니라, 재래전 그것도 갑옷을 입고 칼과 창으로 싸우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이 될텐데요. 그 중에서도 불화살은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합니다. 불화살은 큰 상처를 입힐 뿐아니라 완전히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리고 적의 진영을 통째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고 또 이기려면 그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본문은 지금 평상시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싸우는 로마 병사의 모습을 성도의 모습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패 역시 로마 병사들이 전쟁할 때 사용했던 그런 방패를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 병사의 방패는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둥근 방패가 아니라, 가로 60센티, 세로 120센티 정도 되는 길죽한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손으로 다루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으면서도 병사가 웅크렸을 때, 몸 전체를 보호하기에 가장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패의 재료는 나무이지만그 앞면에는 가죽이 여러 겹으로 덧대어져 있습니다. 바로 이 가죽 덕분에 이 방패가 불화살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죽에 물을 충분히 축여 놓아서 불화살이 와서 박힐 때, 불이 꺼지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III.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사탄이 우리를 향해 쏘아대는 불화살 같은 시험으로 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내고 두려움 없이 전쟁을 치러내려면 우리에게는 사탄의 불화살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방패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방패를 준비하려면 도대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특히 불화살을 막아줄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선 분명히 해 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단지 어떤 ‘사실’을 기계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격적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믿음은 항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하고, 또 그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만큼 우리의 믿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기도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욕심대로 마음대로 구해 놓고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그대로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우리가 정말 사심 없이 기도한 것, 그리고 정말 너무 급박해서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믿고 기대하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을 선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믿고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잘 아는 어떤 사람처럼 피도 눈물도 없으신 분이시고 도무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그런 분이시라면, 그리고 전혀 선하지 않은 분이라면 과연 그 때도 우리는 기도하면서 그런 응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믿음, 정말 능력있는 믿음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갑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기도가 나에게 아무리 중요하고 아무리 급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내가 기도했으니까 나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 질 것라고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했으니까, 기도로 하나님께 맡겼으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이런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의 필요를 더 잘 알고 계시고, 나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한 것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응답을 더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응답이 주어지지 않아도 기도한 후에 돌아온 응답은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인 줄로 알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또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IV. 믿음의 방패 

만약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사탄의 공격에 무너지기 쉽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의 공격은 때로는 불화살처럼 강력하고 치명적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어떤 사람이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실수가 아니라 큰 죄를 지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믿고 있고, 그 사람이 그 일을 했다는 증거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그를 믿어주는 사람은 그 사람의 가족들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증거들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믿습니다. 온 세상이 그를 의심하고 죄인으로 확신하고 있는데도 여러분만큼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그 사람을 향한 의심을 막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그 어떤 의심보다도 강한 신뢰가 있어야만 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3절에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든든한 약속인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그런 시험은 피해가게 하셔서 결국 우리가 우리 삶에 닥쳐 오는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십니까? 그저 은헤롭게만 대답하지 마시고 솔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경험해 보시니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시험만 우리에게 주십디까? 정말 그렇던가요? 우리는 정말 의심 없이 이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가 당하는 비교적 큰 시험들은 항상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하나님은 지금 너에게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셨다고, 그래서 너는 이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믿음을 흔들만큼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우리가 느끼는 현실에 훨씬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여기에 넘어가는 성도들이 그렇지 않은 성도들 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과 사람들의 방법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아무리 현실이, 내가 당하고 있는 시험이 그런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나를 압박해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고 결국 시험을 이겨 냅니다. 정말로 그 시험이 자신이 감당할 만한 시험이었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그런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끝까지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정직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자신을 흔들고 넘어 뜨리려는 의심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뿌리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둔 사람들이 끝까지 이기고 또 한 번 하나님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온 하나님의 약속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은 현실이고 그 현실에 흔들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현실이나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단은 그 믿음이 맹렬하게 날아드는 사탄의 불화살을 막아낼만큼 충분히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방패 자체를 살펴 보았으니 이제는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방패의 앞 부분으로 시선을 옮겨 보겠습니다. 


V. 방패를 적시고 있는 물, 그리스도의 보혈


위에서 우리는 로마군인의 방패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살펴보았는데요, 다시 기억해 볼까요? 이 방패의 앞부분은 어떻게 되어 있었지요? 여러 겹의 가죽으로 덧대어져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만들어졌다구요? 그렇습니다. 그래야 불화살의 불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방패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 내려면 절대로 이 물이 말라서는 안됩니다. 가죽에 물이 항상 충분하게 적셔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이 우리의 믿음을 적시고 있을 때, 그것이 사탄의 불화살을 소멸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예수님의 보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예수님의 보혈을 바라보고 그것만 의지할 때,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불화살 같은 사탄의 공격도 견디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는 두 가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구원의 확신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확신하고 있을 때, 정말 성도 답게,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탄도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만 흔들어 놓고 빼앗아 간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질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언제나 이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가 가진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분명하게 지켜줍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항상 우리에게 너에게 있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 줍니다. 사탄은 언제나 나는 의인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흔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같이 흔들리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들춰 내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가 죄를 짓게 유혹한 다음에 우리가 그 시험에 넘어가면 그 사실을 들어서 우리 양심을 공격합니다. 이래도 네가 구원받은 것이 맞느냐고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우리의 확신이 흔들리게 되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은 바로 그 때 우리에게 소리칩니다. 네가 가진 의는 원래부터 너의 의가 아니었다고,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이라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의를 거두어 가시기 전에는 결코 그 의가 사라지거나 무효가 될 수 없는데, 이미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셨으니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가 의로워서 흘려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를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고, 그래서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 좀 짓는다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받은 의가 사라질까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정도로 없어지고 무효가 될 수 있는 것이 의라면 예수님은 애초에 그것을 위해 그 귀한 보혈을 흘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기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가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시험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사탄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 양심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확신을 흔들려고 할 것입니다. 그 때는 사탄을 향해서 나에게는 주님의 보혈이 흐르고 있다고 말해 주십시오. 나의 믿음의 방패에는 주님의 보혈이 흥건히 젖어 있다고 여러분의 영혼을 일깨워 주십시오. 그렇게 얼른 사탄의 불화살을 꺼 버리시고, 그 다음에는 그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이키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다시 돌이키기만 하면 됩니다. 한 번 의인은 영원한 의인입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흔들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흘리셨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흔들리기 쉬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렇게 우리 영혼을 지켜 줍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특히 믿음을 지키고 진리 에 순종하는 일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사탄은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가 겪는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어려워 집니다. 사탄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뒤흔들어 놓으려고, 우리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우리를 불화살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모두가 다 사탄의 그런 공격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들이 하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르니까, 또 그 사실을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자 봐라, 내가 너희를 이만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보여주신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보혈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피가, 거기서 줄줄 흘러내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상황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사탕을 먹을 때만 단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니까요.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가 십자가에서 흐르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둔하고 어리석어도 그 피를 증거삼아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십자가에 흐르는 보혈, 우리 믿음의 방패를 적시고 있는 그 보혈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에 그 보혈이 보이십니까? 사탄의 불화살을 보면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방패를 적신 보혈을 보면 우리는 그 의심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VI. 결론 : 믿음의 방패를 놓치지 말자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시험과 삶의 고난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로 우리의 믿음을 훈련시키려고 하시지만 사탄은 그것을 불화살 삼아서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성품을 믿고 사는 신뢰의 방패를 손에서 내려놓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방패 앞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 믿음의 방패, 보혈이 흐르는 그 방패가 우리 손에 들려져 있는 한, 우리는 사탄의 그 어떤 불화살 공격 속에서도 끄떡 없이 안전할 것이며, 오히려 그 방패의 능력을 더 확실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손에 쥐어 주신 믿음의 방패를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영적인 전쟁터를 달리는 믿음의 용사들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변함 없는 하나님의 성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2.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적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며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지켜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