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서론 :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서 이미 한 가지를 살펴 보았고 두번째 것을 살펴보는 중에 있습니다. 지지난 주일에는 진리의 허리띠에 대해서,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의의 호심경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로 우리 허리를 동여야 한다는 말은 우리의 삶과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원리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서 그 능력으로 잘 싸우셨습니까? 또 많이 이기셨나요? 꼭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성도는 힘이 납니다. 싸울 힘이 나고 이길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붙들 때,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여러분의 허리를 하나님 말씀으로 단단히 동여 매시기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단단히 챙기라고 하신 후에, 그 다음에는 의의 호심경으로 심장을 잘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왜 허리 띠 다음에 호심경이 나왔을까? 왜 진리 다음에 그리스도의 의가 나왔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순서 안에도 하나님의 큰 은혜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요. 제가 뭐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100센트 순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 보려고 낑낑거리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또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하는 것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 속에서 자기 의와 자기 만족이라는 놈이 고개를 쳐들고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꼭 기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얼추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고나서 부터 그 일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내에 소래교회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어김 없이 거기 올라가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얼마를 지나자 마음 속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더니만 그게 나의 자랑거리가 되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정죄로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 생각을 아무리 떨쳐 버리려고 애써도 되질 않아서 결국 한 6개월 동안을 기도하는 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죄를 짓게 된다면 차라리 기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철저히 악한 존재인지 기도를 하면서도 그 기도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도 그 순종 때문에 자기 의에 빠지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뭐 하나 자그만한 거 하면 “나 했다!”합니다. “나 이만큼 대단하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진리의 허리 띠로 허리를 동인 다음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영혼과 신앙의 심장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자랑은 사탄이 우리 영혼과 신앙을 죽이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여기에 찔리면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스스로는 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가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덧입혀 주신 예수님의 의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계속해서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에 의지해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이미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살펴 본 것처럼 우리는 의를 행하면서도 죄를 짓는 그런 존재들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완전합니다. 아무런 흠도 없고 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 예수님께서 나에게 덧입혀 주신 그 완전한 의로 나의 가슴을, 영혼과 신앙의 심장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전히 우리는 의인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지요? 왜 기도하고서 그 기도의 응답을 확신할 수 있지요? 왜 우리의 작은 노력과 행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지요? 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기대하며 또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지요? 나의 의로움 때문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 한 것이 많아서 인가요? 그럼 무엇 덕분이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슴을 한 번 보십시오. 뭐가 붙어 있습니까? 의의 호심경이 붙어 있나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과 신앙의 심장을 거기 의지하고 계십니까?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의 덕분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의가 벗겨져 나가면 우리는 또 다시 더러운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해 볼까요? “그리스도의 의가 내 심장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내 생명이다.”, “이것 없으면 나는 죄인이다.” 아시겠습니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심장을 지키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그러나 이 의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 예수를 믿는 믿음인지 아닌지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전에는 내가 아무런 소망 없는 죄인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꼭 필요했고,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한 완전한 의가 되어 주셨다는 것을 정말로 믿습니까? 그래서 이제 내가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은 나의 의가 될 수 없으며, 또 내 힘으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시도를 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시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에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덧입혀져 있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의로워지려고 하고, 그래서 예수님의 의에 내가 무엇가를 덧붙이려고 할 때, 나에게 덧입혀진 의는 무효가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의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의가 되신다”, “예수님은 나의 완전한 의가 되셨다” 믿습니까?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제발 나는 이만큼 믿으면 된다, 나도 이 정도하면 잘 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의에 의지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대신 여러분은 꼭 예수님께서 주신 자유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내 힘으로 의로워질 필요가 없는 그 자유와 은혜를 안에서 하나님과 넉넉한 화평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게 예수믿는 사람들의 복이고 특권이니까요.
II. 의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 : 의인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중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한 점검이 끝났으니 이제 또 하나의 문제를 생각해 볼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의로운 삶은 꼭 필요한 것입니까? 왜 그렇지요? 왜 이미 부족함 없는 의를 가진 우리는 왜 또 다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거지요? 그 첫번째 이유는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가 의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인이니까 의롭게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것말고도 우리가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한 가지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 덕분에 다시 회복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그 관계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해 주어야 할 모든 일들을 그저 의무라고만 여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 일들을 하기는 해도 정말 부담스럽고 짐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 일들을 하면서 자녀들이 밉고 원망스러워질 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신이 자녀들을 위해 하는 일들을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 주어야 할 것들을 다 해놓고, 뭐 더 해 줄 것이 없나 찾습니다. 오히려 해 준 일들에 대해서 생색내기 보다는 더 해주지 못한 것에, 더 해 줄 것이 없다는 일에 대해 안타까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전혀 의무로 묶여진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부모에게는 부모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그 일들을 하는 것은 그저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 안에서 그 관계에 충실한 것이고 그 관계를 더 깊고 풍성한 관계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들 입니다. 분명히 수고가 필요하지만 순전히 기뻐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들이지요. 부모만 그런가요?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도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자녀의 의무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미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지키고 더 깊어지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에게 잘 한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고, 자기 부모에게 잘 한 것이 공치사할 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지요.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의무나 책임이 이 관계의 핵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의무와 책임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미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 모든 의무들은 그렇게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에 충실하기 위한, 그 관계를 더 깊고 풍성하게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관계를 더 깊고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왜 교회 안의 성도들의 관계가 성도와 교회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만도 못하고 피상적일 때가 더 많은가 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이 그 고민 끝에 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모든 인간관계란 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그 관계를 위해서 기울인 헌신에 비례한다는 것이 그 답이었습니다. 관계가 깊어지고 의미있어 지려면 일단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그 관계를 위한 헌신이 반드시 더해져야 합니다. 수 십년을 한 교회 안에 같이 있었어도 그저 시간을 보냈다면 그 관계는 그다지 의미있는 관계가 되지 못합니다. 계속 피상적인 관계로 남습니다. 저는 종종 수 십년씩 한 교회 안에 함께 있었는데 교회를 떠나면 그 뿐인 그런 분들을 봅니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저 시간만 함께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동안 교회 일을 함께 했을 지는 몰라도 그 관계를 위해서 의미있게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어도 여전히 외로운 것입니다. 허전하고 그 관계가 허무한 것입니다.
모든 인격적인 관계에는 반드시 그 관계에 대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의미있어 지려면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도 관계를 위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혹시 왜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겉돌고 전혀 깊어지지 않나 하는 고민을 가지고 계신 분들, 정말로 하나님과의 깊고 의미있는 관계 속에서 살기를 바라시는 분들은 이 점을 꼭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위해 어떤 의미있는 헌신을 하고 있는가 꼭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완전하지 못한 두 인격체가 서로 관계에 충실하려고 애쓸 때, 또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려고 할 때, 성숙하고 깊어져 갑니다. 어느 한 쪽에서라도 관계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신실하지 못하면 그 관계는 깨어지거나 곧 한계에 부딛히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완전하신 하나님과 완전하지 못한 인간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미 완전히 충실하시고 책임을 다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선한 일들 속에는 전혀 악하거나 어두운 부분이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모습이 달라질 때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나 태도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맞춰주시기 위해서 잠시 다른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향해 같은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같은 태도를 보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원래부터 그렇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 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런 노력들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신실할 수 있는 법을 연습하고 배워갈 수 있고, 그래야 그 관계가 더 깊어지고 풍성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우리의 의로운 삶,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 최선을 하다고 책임을 다하는 그런 삶입니다.
계속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성경은 의롭게 살아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인이기 때문에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 있으니까, 그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다 보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없는 삶, 그러니까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나요?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건 억지로 하려고 하면, 의무적으로 하려고 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처음에는 잘 하다가도 지치기도 쉽고, 포기하기도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 나를 그토록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더 잘 알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고 가꾸어 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똑같은 일을 더 기쁜 마음으로 더 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사는 것이 그 사람의 소원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순서를 밟지 않고 그저 열심히 말씀대로 살려고만 하니까 그게 부담스럽고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기는 해도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종교의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III.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를 의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의인으로 살게 해 줍니다. 한 번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는 그 관계가 얼마나 좋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고, 그러면 저절로 그 관계를 지키고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 헌신하게 되는데 이 헌신이 바로 의로운 삶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이 없이는 이 관계를 지켜나갈 수 없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더 깊고 풍성한 관계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힘으로 의로워지려 하지 말고, 더 의로워지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의만 붙드십시오. 그리스도의 의에만 의지하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의로운 삶을 위해서 헌신십시오. 믿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구별된 아름답고 바른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헌신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완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쓰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무관심해지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고 든든한 것이 되게 하기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변함 없이 우리 영혼과 믿음의 심장을 든든하게 지켜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가 우리의 심장을 보호하는 호심경이라면 우리의 의로운 삶은 그 호심경을 묶는 끝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가슴에 붙이고 그 호심경을 의로운 삶의 끈으로 단단히 챙겨서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자유롭고 풍성한 새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