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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7.01.08. 주일예배 - 구한 것을 얻은 줄 아느니라(2017년 신앙주제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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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일서 5장 13-15절




오늘은 올해의 신앙주제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양쪽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시고요. 제가 ‘주제말씀!’이라고 말씀드리면 왼쪽의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주시고, ‘2017년 신앙주제’라고 말씀드리면 오른쪽의 ‘신앙주제’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준비 되셨지요? 주제말씀!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또한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한 번 더요.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또한 얻은 줄을 아느니라” 다음은 올해 신앙주제입니다. ‘2017년 신앙주제!’ “기도하며 사는 성도 기도로 서는 교회’ 이것도 다시 한 번요! “기도하며 사는 성도, 기도로 서는 교회” 우리 교회는 지난 해에 이어서 올해도 다시 한 번 기도의 회복을 신앙적인 목표로 잡았습니다. 지난 해 부터 힘쓰기 시작한 기도가 올해는 불길과 물길이 되게하고 우리 삶과 신앙에 뿌리를 확실히 내리는 한 해가 되게 하자는 뜻으로 이 말씀을 고르고, 신앙주제를 이렇게 잡았습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가 더욱 더 기도 위에 든든하게 세워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우리들 각자도 기도하면서 살고 삶을 위해 기도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에 대한 놀라운 약속의 말씀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모두가 이 약속을 붙들고 이 약속 안에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쓴 성경은 모두 다섯 권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가 27권이니 그 중에서 다섯 권을 사도 요한이 썼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인데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쓴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자기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만큼 성도가 자신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는 그 영생을 주는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요한1, 2, 3서에서는 그 영생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믿음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는 영생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승리 이야기로 확실하고 영광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한 1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가 쓰여진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3절을 보면 요한 사도는 영생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이지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이 이름을 가진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때, 우리에게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러니까 여러분 개인의 왕이요 구원자로 믿고 신뢰하십니까? 혹시 아직도 다른 것들을 왕으로 섬기고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해 줄 것처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분들은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른 조건은 필요 없습니다. 바로 이 조건만 만족되면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영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영생’에 대해서 오해를 할 때가 있어서 이것부터 바로 잡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오늘 말씀이 제대로 풀릴 테니까요. ‘영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이 그래서 인지, 우리가 영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꾸 영생을 ‘죽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는 긴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다 조금 더 나가면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것’을 떠올리고 말이지요. 물론 영생에는 이 두 가지가 다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만 이해하면, 우리가 꼭 빠뜨리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이미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죽어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성경이 말하는 영생이란 본디 완전히 끊어졌던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렇게 회복된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충분하고 풍성하게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을 ‘영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나중에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누리게 될 영생은 없다가 죽을 때 갑자기 받는 게 아닙니다. 이미 이 땅에서 누리며 살던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완전한 모습으로 계속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영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영생이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성도 여러분, 절대로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고 ‘이게 뭐가 영생이야?’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사도 요한의 편지를 처음 받았던 성도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편지를 썼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니까요. 성도들에게 구원받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었냐고 말하면 그것도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영생을 누리고 있냐 하고 말하면 머뭇 거리고 대답을 못합니다. 세 가지가 다른 질문입니까? 아닙니다. 같은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잘 못할까요? 사도 요한이 그 대답으로 들려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 여기서도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인데, 기도를 하지 않고서 살아가니까 자신에게 영생이 있는데도, 그 영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요한사도의 설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늘 말씀 속에서 영생과 기도를 직접 연결시켜 놓은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늘상 그러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과 기도를 하나로 묶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그 어떤 돈 많은 재벌가의 자녀나 힘센 권력자의 자녀가 된 것도 이것과는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고 왕이신 하나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것이니까요. 여러분, 왜 자녀라는 신분이 대단하지요? 자녀는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따라해 볼까요?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이게 믿어지십니까? 솔직히 실감이 안되시지요? 맞아요! 그렇습니다. 뭐 하나 손에 쥐어진 것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버지의 것을 내 것이 되게 해 주시려고, 내 손에 쥐어 주시려고 말입니다. 


우리 14절과 15절을 다시 한번 함께 읽어볼까요?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 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호적을 떼면 분명히 이름이 같이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분명히요. 그래서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주저할 필요도 없고 미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들과 딸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리 엄청난 것을 달라고 해도 하나님께는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또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이미 그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 치르신 값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것,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못 내놓으실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의심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의 통로가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바로 이런 놀라운 일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한 대로 응답받으면서 그것을 통해 이 세상에서 나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진짜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하지 않아도 될까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굴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에는 어쩌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는 조건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한 대로 응답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한 대로 응답이 안됩니다. 


우리는 이런 조건이 붙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냥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이 내가 기도한 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씀보다는 그저 ‘기도한 대로 된다’라는 말을 들을 때 더 기뻐하고 더 큰 소리로 아멘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로 그게 더 좋을까요? 내가 무엇을 기도하든 기도한대로 무조건 다 들어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에 그렇게 응답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고 과자를 주면요. 엄마들이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자기 자식 예뻐해 주는 줄 알고 입이 귀에 걸렸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사탕과 과자를 함부로 주면 안됩니다. 그러면 대번 엄마들의 표정이 확 변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굴뚝 같아도 꾹 참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제 엄마들이 개화되어서 그렇습니다. 과자 많이 먹고 단 것 많이 먹으면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요즘 엄마들은 참 독합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졸라대도 사탕과 과자는 잘 주지 않습니다. 자꾸 애들 싫어하는 고구마, 감자, 뻥튀기 이런 것들만 쥐어 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면 압니다. 애가 예쁘다고 과자 주고 사탕주고… 달라는 것 달라는 대로 다 주는 사람은 대개 엄마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죠? 그렇습니다. 마음 좋은 옆집 아줌마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기도하는 그대로 다 들어주신다면 그 분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이실 수 있을까요? 아니죠? 그러니까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면 뭐든지 다 들어주셔.’라고 생각하면서 좋아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어제 이사 온 옆집 아저씨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한 없이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 사실 우리는 항상 필요한 것들을 기도로 구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로또를 사고 복권을 삽니다. 왜 그렇지요? 당첨되려고, 당첨되면 돈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지금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아시다시피 그렇게 해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에서 삶이 망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요. 잘 살던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깨어지고, 자살을 하고, 놀고 먹고 흥청거리다가 거리의 부랑자가 되고… 복권에 당첨된 다음에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무엇이 자기 인생을 진짜로 복되게 할지, 무엇이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될 지 잘 모릅니다. 그저 지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또 우리의 욕심대로 기도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제목을 찾아야 하고 그 기도제목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기도가 응답될 때, 그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부작용 없는 복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릴 때, 그 때에 한해서만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만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고 우리는 또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하는지 아시겠지요? 그런데요. 우리에게 이렇게 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헤아리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의 지혜가 부족해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바램과 욕심이 강하면 하나님의 뜻은 뒷전이 되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그 답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말 정말 십자가를 지기 싫으셨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 십자가를 나에게서 치워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항상 잊지 않고 그 뒤에 덧붙이신 기도가 있으셨지요? 그게 무슨 기도였지요? “그렇지만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정말 죄된 것이 아니고 욕심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이것이 정말 정말 필요합니다. 이것을 주세요.”라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 뒤에 꼭 이렇게 덧붙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저 제 기도만 듣지 마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이게 우리 기도의 안전장치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가 되게 하고, 우리를 욕심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아주 명확하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기도를 덧붙여서 우리의 기도를 더욱 더 완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가 되고, 응답된 것은 모두 우리가 구한 그것을 받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우리의 삶을 채우는 복된 통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정말 놀라운 통로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신앙 주제는 ‘기도하며 성도, 기도로 서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우리 기도하면서 사십시다.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십시다. 한 번이라도 더 기도하고 일분이라도 더 기도하십시다. 그럴 수 있으시겠지요?

우리는 분명히 기도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복을 제대로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산다면, 올 한해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올 한 해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시는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한 해를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올 한 해 더 열심히 한 번이라도 더, 1분이라도 더 기도하겠습니다. 
  2. 기도하면서 살아서 하나님의 자녀된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겠습니다. 
  3. 항상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면서 기도한 그것을 받으며 사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