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사람들은 참 다양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람이 모두 같지 않느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그런 다양성을 모두 포용할 수 없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됩니다. 모든 목표가 그렇습니다.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그 목표에 걸맞는 태도와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목표,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목표를 세워놓고서 아무 노력을 하지 않거나 혹은 되는대로 대충 지낸다면 그 목적은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잘못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은 그저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믿어’라는 생각이 나를 구원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적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된 구원의 의미이니까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이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우리의 믿음을 일컬어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있으며, 우리를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데까지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을 이야기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약속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저 죽을 때까지 하늘만 바라보며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썩어질 것들을 붙들고 그런 것들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지 않고 하늘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그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에 속한 썩어질 것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일시적이고 부패하는 것과 영원한 것은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며 세상을 닮은 삶을 살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와 자녀들의 나라입니다. 아버지를 닮은 자녀들만이 그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부족해도 좋고 완전하지 않아도 좋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도가 맺어야 할 성품의 열매에 대해서 말한 후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베드로는 신앙의 열매, 거룩한 성품의 열매를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열매 없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더 굳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우리의 책임이며 의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약속을 하나 덧붙입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적당히 그저 편안하게만 예수 믿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충고에 따르면 그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편안하게,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까요? 그래야 ‘세상’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옛 것’을 버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느냐 그렇지 못하냐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적당히 편안하게만 하려고 한다면 그것보다 더 안타깝고 어리석은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그저 우리로서는 언제나 변함 없이 최선을 다해서 우리 삶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더 풍성해 지도록, 그 열매들이 더 많이 맺혀 지도록 애쓰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신 목적에 맞춰 살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삶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넉넉한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한 구원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