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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7.02.1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계시록 19장)



설교일 : 2017년 2월 16일 목요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중간에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그리고 중간에는 아무리 이길 가망성이 없고 불리하게 보여도 결국 마지막에 웃는 편이 승리하는 것이니 중간에 포기하고 절망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명심해야 할 원리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마지막에는 이길 것이고 그래서 웃게 될 것이지만 그 중간에는 그런 승리와 웃음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어려움이 있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마지막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있지 않으면 우리는 힘을 잃고서 마지막에 웃을 수 없는 쪽, 그리고 영원히 웃지 못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삶 속에서 마지막에 웃을 것을 생각하면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쪽을 선택하면서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항상 우리의 본성은 편안하고 부담없는 쪽을 선호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매우 좋지 않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는 이 시대에는 일부 특별한 나라나 사회를 제외하면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큰 손해나 핍박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있는 사회에 사는 성도들은 더욱 더 그렇지요. 그래서 편하게 믿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편안한 길을 선택할 수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마지막에 웃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 세상의 악한 세력의 멸망을 뜻합니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이 없습니다. 바벨론이 이 세상에 서 있을 때는 무소불위의 힘과 휘두르며 영원할 것 같이 세상 위에 하나님처럼 군림했지만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온 세상에는 이 일을 기뻐하는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찬양은 두 가지 였습니다. 하나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신 구원과 바벨론에게 부으신 심판을 찬양하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역시 신실하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그 많은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남김 없이 구원해 내셨습니다. 구원 얻은 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인내 덕분에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실하고 완벽하게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그런 하나님의 구원을 먼저 노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셨던 것처럼 결국 악한 사람들이 행한 악행을 그들에게 그대로 갚아 주셨습니다. 그들을 참되고 의롭게 심판하셨습니다. 그 심판의 영광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은 한 두사람이나 몇 몇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그야 말로 거대한 폭포수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같은 찬양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신 자들, 하나님이 환란 중에서 보호하시고 남겨 놓으신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결코 인색하거나 불완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그대로 악한 자들을 완전하게 심판하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얻은 백성들은 바로 그 승리와 심판의 증인과 주인공들 되었고 그래서 할렐루야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찬양은 어린 양의 영원한 다스림에 대한 찬양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두 구원하시고 이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심판하셔야만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고,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이 완전하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그런 완전한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고 또한 그 완전한 어린 양의 통치 아래서 살기 시작한 가장 복된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혼인잔치 같은 즐거움과 풍성함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얼마나 복되고 충만하며 기쁘고 완전한 것이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삶이 허락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까지는 소망으로만 남아있던 그것이 이제는 영원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수많은 성도들이 목소리를 합해서 폭포수같은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성도들은 마지막에 웃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웃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함께 하심 덕분입니다.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성도들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성도들은 이 은혜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분명히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고 올곧게 예수님을 섬겼던 사람들, 끝까지 견디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 노래를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웃을 날을 기억하고 소망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냈던 성도들, 아버지를 닮아 신실하게 살았던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노래는 그런 성도들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웃고 싶어서 지금 여기서 웃는 길을 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말이지요. 


신앙은 마지막에 웃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당장 웃는 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른 선택과 신실하고자 하는 헌신도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 안에서 주님 정해주신 바른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어서 비록 여기서는 조금 덜 웃을지 몰라도 그 나라가 임할 때, 영원한 찬양 가운데 끊이지 않는 웃음을 웃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