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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20.03.22. 요한복음 14장 1-14절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49)

 

 

 

 

날짜 :  2020년 3월 22일 일요일

본문 :  요한복음 14장 1-14절

 

성도 여러분, 한 주 동안 믿음으로 잘 사셨습니까? 믿음으로 근심과 걱정을 이기고 자유롭고 능력있는 삶을 사셨나요? 신경을 쓰고 애를 써도 참 쉽지가 않지요?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이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걱정하고 그저 두려워하지요. 다 지내놓고 그게 그런 줄 알게 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싸움에서 이기기는 커녕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할 때가 더 많지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실제로 두려움과 근심을 제어하게 될 때까지, 주님을 믿는 연습을 하며, 그 믿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주신 세 개의 귀한 약속들을 살펴 보려고 하는데요. 이 약속들은 주님이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면서 그 믿음의 내용으로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1절 말씀이 큰 틀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말씀들은 그 틀을 채워넣는 내용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함께 이 약속들을 살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약속들을 믿음으로 받게 하시고, 그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첫번째로 약속해 주신 것은 하늘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는 것은 제자들의 거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인데, 다 준비되면 다시 와서 제자들을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영접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헤어지는 일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헤어짐을 영원한 이별로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시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은 제자들을 거할 하늘거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늘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눈 앞의 일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걱정이 떠나질 않지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늘 우리 인생 전체를 보시면서,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십니다. 때때로 주님이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시는 것 같고, 또 나를 홀대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무슨 일을 하실 때, 꼭 지키시는 철칙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한 최선을 찾으십니다. 우리를 최고로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의 지혜를 총동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해가 되었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신 것은 그것이 제자들에게도 가장 유익한 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의 눈으로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그 모든 것이,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무엇을 얻든 잃어버리든 모두 다 우리의 최선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그 약속대로 행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증언이 있고, 우리 삶의 증거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말씀의 우리의 과거라는 렌즈를 통해 내 인생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자 애쓴다면, 우리는 황송하게도 우리의 최선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제자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을 위로하셨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신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바로 하늘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 제자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하늘 말이지요. 제자들은 ‘땅’을 걱정하고 ‘땅에서 살아갈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실 예수님은 땅에 대한 답을 주셔야 합니다. 그게 맞는 거지요. 그런데, 주님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가리키시면서 하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서울로 가는 길을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을 들어서 북극성을 가리켜 보여주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거기는 방이 넉넉하니까 너희가 거할 곳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께로 가서 제자들을 위해 거처를 준비하신답니다. 준비가 다 되면 다시 와서 제자들을 그리로 영접해 가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땅을 보며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이중 삼중의 확신을 심어 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땅’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답이 ‘땅’에 있는 줄만 압니다. 왠만큼 예수를 믿었다는 분들도 좀처럼 이런 생각을 벗어나질 못하지요. 그래서 땅에서 문제가 생기면 늘 땅만 바라보며 땅에서만 답을 찾습니다. 물론 땅은 중요합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것, 그것이 현실이지요. 우리의 인생 자체가 현실이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현실적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풀어 자유케 해 주셨으며,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고, 제자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의 문제에 대한 진짜 답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땅에 묶여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보는 영화들 중에는 중간에 이야기가 뒤집혀 버리는 영화들이 참 많습니다. 사실 영화의 재미와 성패는 이 반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하지만, 이런 반전들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혹시 착한 사람이 불행해지고 나쁜 사람이 잘 되는 것은 아닐까, 엉뚱하고 실망스러운 결말이 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신경이 쓰여서 영화를 보면서도 적잖게 긴장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짜증스러워질 때도 있고요. 하지만 아무리 중간에 반전이 심하고,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져도 대개는 그 영화를 끝까지 다 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중간에 스토리가 어떻게 바뀌든 그런 영화들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영화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래서 영화가 어떻게 되든 현실이 변하는 것은 없으니 때로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라도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이유가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영화라는 것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는 사필귀정,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한 편의 영화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독이 되시고, 우리가 주인공이 되며,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이 조연이 되어 주는 영화말입니다. 이 영화들은 한 편도 같은 영화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숫자만큼이나 스토리도 다 다르지요. 같이 사는 부부나 가족들도 똑같은 영화를 찍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놀랍게도 결말이 모두 같습니다. 모두 다 최고의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다른 결말이 있을 수가 없지요. 성도들의 인생을 담고 있는 영화들은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행복한 장면으로 끝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말로 영광스러운 진짜 이야기는 그 장면부터 다시 시작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이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영화들이 거의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스토리 라인이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굴곡도 많고 갈등도 많고, 그래서 불안한 부분도 굉장히 많지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 얼마나 큰 어려움이 이 영화 속에 끼어들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가 언제 끝날지 그것도 모릅니다. 감독이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많이 불안해 지고 두려워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간에 스토리가 어떻게 바뀌고, 또 어떤 어려운 일이 끼어들던 감독님의 뜻을 따라 성실하고 정직하게 끝까지 주어진 역할을 잘 마치기만 하면 이 영화가 영원하고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끝을 안다고 해서, 그리고 그 끝이 해피엔딩이라고 해서, 중간에 끼어드는 인생의 굴곡들이 평탄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은 슬픔이고 아픔은 아픔입니다. 고난은 고난이고 연약함은 여전히 연약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것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의 결말이 해피엔딩이고, 우리가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더 여유롭고 담대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아름다운 결말을 아는 우리들에게는 그 이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저 그 행복한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니까요.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영광스럽고 행복한 결말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잠시 잠깐은 몰라도 두려워할 필요도, 근심에 빠져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두려워지고 근심이 될 때마다 여러분의 눈을 땅에서 하늘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이 곳이 아니라 거기가 내가 영원히 살아갈 나의 집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거기 거하는 여러분의 복되고 영광스러운 모습도 상상해 보시고요. 두려워지는 그 순간에 성도들에게 보장된 하늘처소에 마음과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근심과 걱정을 너끈히 이기는 힘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장되어 있는 하늘나라! 이것이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첫번째 약속이었다면, 예수님의 두번째 약속은 그리로 가는 ‘길’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하늘의 거처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 지 너희가 그 길을 아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이미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알고 있지요.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복된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여전히 땅에만 고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도마는 자기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로 가는 길을 아신다고 하느냐고 예수님께 항변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다시 설명해 주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덕분에 이 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지요. 

예수님은 몸을 입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유일하고 완전한 진리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또한 마르지 않는 샘이시고 생명의 떡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시는 목마르거나 주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이런 진리와 이런 생명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이 생명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무이한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위해 하늘 거처를 마련하러 아버지께로 가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주님 계신 영광의 나라로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힘이 빠졌다가도 다시 힘이 납니다. 하지만, 문득 문득 그런 걱정도 듭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맞나?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혹시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제가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제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저에게는 하늘 아버지께로 가서 그 분과 영원히 거하는 일이 저의 인생 전체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고, 그래서 절대로 그 일에 실패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같습니다. 그들은 인생 전부를 걸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자신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엄청난 댓가를 치렀고 또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문득 불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가, 이 길을 따라 가면 정말로 하나님께로 갈 수 있을까? 그런 불안함이 생길 수 밖에 없지요.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 밖에 없는 바른 길에 들어서 있다고, 그래서 지금처럼 계속 그 길로 걸어가면 반드시 하나님께 이르게 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삶이 불안해질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여러분의 발걸음을 멈추지 마시고요. 늘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고, 영원한 영광 속에 거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세번째 약속을 살펴 보려고 하는데요. 여러분도 다 아시지만,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두 가지 짐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번째 짐이지요. 하지만,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니 이 짐을 지는 일이 결코 쉽고 간단한 일이 될 수 없지요. 그리고 둘째로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그렇게 살면서 우리 자신의 필요도 채워야만 합니다. 우리 역시도 몸을 가지고 생활하는 생활인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두 가지 짐입니다. 둘 중의 하나도 지기 힘드는데, 우리는 우리의 믿음 때문에 더 무거워진 짐을 두 개씩이나 져야 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참 쉽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착하거나 충분히 성화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래도 목사니까 성경을 믿는 사람이니까 아주 조금 예수님처럼 해 보려고 애써 보았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와 저 목사님 대단하다, 정말 훌륭하다, 예수님을 닮았네! 하면서 귀하게 여겨 주었을까요? 제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 사람들도 저를 존중해 주었을까요? 아닙니다.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아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더라구요. 종처럼 부려 먹으려고 하고요. 제가 바보라서 그러고 있는 줄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또 될 수 있는대로 욕심을 덜 부리려고, 움켜쥐며 살지 않으려고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잘 한다고 마구 마구 부어 주셨습니다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더군요. 아마 이것은 그래도 믿는대로 살아보려했던 분들의 공통적인 경험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이 무거운 두 개의 짐을 질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사실 많은 성도들이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세상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명한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 말씀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은혜로운 약속인데요. 그래서 성경학자들도 이 말씀을 굉장히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니까요. 아무튼 이 말씀이 사실이고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그 일이 아무리 힘들고 대단한 일이라고 해봤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보다 큰 일이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13절과 14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택하신 방법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의 이름으로, 그러니까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거기다가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 내가 그대로 행하겠다는 약속을 붙여주셨지요.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리지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모르고, 또 그 능력을 제대로 믿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는데, 12절과 13절 말씀이 걸렸습니다. 갑자기 나는 정말로 이 말씀들을 있는 그대로 믿나, 믿고 있으면서 설교를 하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이 말씀을 붙들고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단순하고 확고하게 이 말씀을 믿는 믿음을 달라고 말이지요. 설교자는 이럴 때 참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때로는 자기도 자신이 없는 말씀을 전해야 하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 이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저의 믿음이 어떻든지 이것이 우리 주님의 약속이고, 우리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아무래도 계산이 안 나오는 인생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넉넉하게 살아 낼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고 부르심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몫이듯이 응답은 우리 주님의 몫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다시 한 번 기도하며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그 기도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얻고 주의 뜻을 행할 능력을 얻으시는 능력있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 우리를 위해 하늘거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면 우리를 하늘나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 주님만 믿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붙들고 우리를 부르신 그 거룩한 부르심을 따라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부르심이라는 두 개의 짐을 지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께서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신다는 기도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갈 수 있는넉넉한 힘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성도 아닌 사람들과 바라보는 것도, 의지하는 것도 다 다른 사람들입니다. 살아가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이고요. 성도들은 이 모든 것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예수님을 두어야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로부터 거듭난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늘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거기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확실히 붙들고, 예수님만 의지하며 기도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주님 만나뵐 때까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주소서.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을 견고히 붙들게 하소서. 기도의 능력으로 살게 하소서. 땅이 막히면 하늘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2.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는 이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때, 특히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