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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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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2. 새벽예배 -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요한복음 59) 본문 : 요한복음 8장 48-59절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비슷한 모습이 있지만 특히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두 아이가 막 싸웁니다. 티격태격 말싸움을 합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밀리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가 생각해 보아도 싸움이 점점 불리해 집니다. 그 때 밀리는 아이가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바보 똥개 빡빡이야!”라는 인신모독적 발언입니다. 그러면 이기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우왕! 엄마 쟤가 나더러 바보래! 똥개래! 빡빡이래!” 예수님과의 논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제 가장 유치한 인신공격을 감행합니다. “너는 사마리아 인이다. 너는 귀신들렸다. 우리 말이 맞지 않느냐?” 사마리아인은 당시의 유..
2012.10.29. 새벽예배 -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한복음 41) 본문 : 요한복음 6장 41-51절 제가 목회자로 일하면서 거듭 거듭 확인하게 되는 아주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겉으로 보기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들이 영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다행스럽게도 아주 고정된 것은 아니어서 처음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다가도 영생이 무엇인지 왜 영생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거듭거듭 말해주면 서서히 영생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성도들도 생겨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이야기 해도 전혀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목회자로서 이것보다 안타깝고 또 크게 좌절을 느끼는 일이 없습니다. 장기간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되면 정말 벽을 만난 것 처럼 힘이 다 빠지는 것..
2012.10.24.새벽예배 -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요한복음 38) 본문 : 요한복음 6장 22-29절 사람들은 어딜가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놀라고, 때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따라다녔느냐 하면 꼭 요즘 청소년들이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따라다녔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도착한 적도 있었을 정도 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람들은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배를 빌려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까지 예수님을 쫓아 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팬 클럽이 버스를 대절해서 따라간 것입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라다녔습니까? 아마 그들 중에는 생업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다닌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몇 날 몇 일을 주님만 따라다녔다면 그럴 수 밖..
2012.02.21. 매일성경 묵상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0장 25-42절입니다. 갑자기 무대가 바뀐다. 그러나 주제는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다. 질문의 동기도 그렇지만 질문의 내용도 문제다. 이것이 진짜 이 사실을 몰라서 묻는 것이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옳다고 여기는 대답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 ‘정답’을 맞추시는지를 보려고 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또한 이 질문은 영생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 영생은 선물이지 일해서 얻는 삯이 아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교인들은 모두가 다 이 영생의 문제를 무엇을 하고 그 댓가로 얻는 문제로 여겼던 것이..
2012.01.13. 매일성경 묵상 신앙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는 얼마나 중요할까? 얼마나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공동체를 참으로 하나로 만들고 그 안에 머물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할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절) 시편 133편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구절로 시작한다. 적어도 시인에게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하여 동거함’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우리는 그 모습이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이스라엘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비록 열 둘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 속의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인, 하나여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죄성과 이런 저런 이유로 그 하나됨은 언제나 깨질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