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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각

목회는...


아이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제가 잘 아는 놀이였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이 하도 예뻐서 가만히 앉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방법과 규칙이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는데, 
원래 해야하는 방법에 따라 하는 것이 부딛힘과 쓸데없는 힘 낭비도 적고 
그러면서도 훨씬 더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같은 놀이를 하면서도 전혀 다른, 
훨씬 재미가 없고 쓸데없이 힘 낭비를 많이 하는 방법으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놀이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저나마도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 "잘 하고 있다"고 그냥 격려해 주고 내버려 둘까?

제가 나서면
아이들은 놀이가 중단된다고 기분나빠할지도 모릅니다. 
잘 놀고 있는데 왜 방해하냐고 오히려 대들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방법, 제대로된 방법을 알려주어도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지
인정하더라도 받아들일지 어떨지 확실하지가 않기습니다. 
그 아이들과 저 사이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그 아이들을 귀챦게 하지 않으려면 저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잘 하고 있다고, 재미있게 놀고 있다고 칭찬해 주고 
쓰윽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저는 그 아이들에게 원래의 놀이방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언젠가
아이들이 놀이를 하다가 자기들의 놀이방법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이게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제가 알려준 방법이 생각날 것이고, 적어도 그것을 따라해 보려고 
시도해보기는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하나라도 늘어난다면,
그래서 그 놀이의 참된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저는 제 눈 앞에 나타나는 
놀이방법을 잘 모르는 아이들을 불러세우고 
언제나 그 아이들에게
제가 아는 '제대로된' 놀이방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비록 
그 아이들이 원치 않는다고 해도
귀챦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중에
그 중에 하나가
제대로된 놀이방법을 찾을 때 
생각날 것이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때 그 아이의 얼굴에,
그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를 희열에 찬 미소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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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란...
목사로 산다는 것은...
목사로 일한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잃기도 하고
사람을 얻기도 하는

그런 갈등과 고민
두려움을 떨쳐 버려야 하는 
그 어려움을 
짐으로 져야만 하는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