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09.19. 새벽 -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한복음 13)


요02013to22 -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pdf


20120919D (#1).mp3.zip




성경본문 : 요한복음 2장 13-22절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 대한 일종의 상, 그러니까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저 사람은 이러 저러한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것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래도 일정기간 그 사람을 겪었봤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어서 상당 부분 그 이미지와 그 사람이 일치되지만, 이런 이미지가 갑자기 깨어지는 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속으로 굉장히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 하기도 하며, 또 그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평상시에 생각하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요즘 인기있는 설교나, 많이 팔리는 신앙서적들 속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주로 우리를 한 없이 사랑하시기만 하시고, 온유하기만 하시며, 언제나 우리 편만 들어주시는 그런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동아줄로 손수 채찍을 만들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짐승들을 몰아내시며 화를 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요즘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생소하고 불편한 그런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또 기대한다고 해도, 또 그런 기대와 너무 달라 실망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 또한 그 분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불같이 화를 내시기도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것과 더불어 한 가지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과는 다르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를 내야할 때 화를 내지 못하고, 화를 내지 말아야 할 때는 화를 내기도 합니다. 또 화를 낼 때, 그 정도를 조절하는 일을 무척 힘들어 합니다. 너무 화를 안내거나, 또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크게 화를 내기도 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화를 내야할 때만 화를 내시고, 그것도 꼭 화를 내야할 그 만큼만 화를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별견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과한 것 같고 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는 것은 너무 정당한 것이고 또 가장 적당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대단한 절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을 경험한 후에 이집트로부터 얻어낸 해방을 기념하는 그런 절기였기 때문에 유대의 절기 중 가장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사를 지내고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것은 각자가 제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물은 흠이 없는 거룩한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아주 멀리서 부터 제물이 될 양과 짐승들을 가져와야만 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지고 올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오다가 중간에 이 짐승이 더럽혀지거나 상처를 입게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몰랐지만, 제사장이 보기에 그 제물에 흠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제사를 지낼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물을 가지고 오다가 나중에는 성전에서 준비한 제물을 구입해서 제사를 드리게 되었고, 그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유대인 어른들은 성전세라고 해서 의무적으로 성전에 헌금을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용하던 로마의 화폐에는 시저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십계명에 저촉된다고 해서 그 동전을 세겔, 그러니까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화폐로 환전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월절만 되면 성전 안뜰은 제물을 팔고 환전을 해 주는 장사치들로 들끓는 시장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사를 지내야 하고 또 성전세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제사를 드리고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전의 제사장들과 장사치들이 폭리를 취하는 통로가 되었다는데 있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성전세를 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과 장시치들은 함께 작당을 해서 이것을 악용했습니다. 제물의 가격을 엄청나게 높게 책정해 놓습니다. 또 로마의 화폐를 세겔로 바꿀 때 그 환율을 엄청나게 높여 놓습니다. 제사장들은 장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눈감아 주고 심지어는 직접 제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의 제물은 무조건 퇴짜를 놓아서 장사들에게 사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취해진 엄청난 폭리는 제사장들과 장사치들이 서로 나눠 가졌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장사하는 집”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장사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이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성전에서, 다른 것도 아니라 제물을 가지고 그런 악한 일을 하며, 그렇게 얻은 폭리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은 더 이상 견디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노하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오셔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은혜를 부어주시는 곳이었고, 제사는 사람들이 그 분께로 다가가기 위해서 죄를 처리하는 아주 중요하고 지극히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더럽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은 더 이상은 하나님께서 그 곳에 임재하시지 않으시며 그 분의 용서의 은총이 부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이름, 그러니까 그 분의 영광을 두셨기 때문에 이 곳이 망가진다는 것은 성전의 기능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그 이름의 영광이 업신여김을 받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이신 그 분이 그 일을 그냥 보고 넘어가실 수는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무엇이 성전이 더 이상 성전되지 못하게 하는지, 무엇이 그 분의 임재하심을 방해하며 또 그 분의 영광을 더럽히게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장사하는 집’은 시장을 말합니다. 그 시장은 사람들의 이익과 이익이 만나는 곳입니다. 사는 사람은 사면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파는 사람은 물건을 팔면서 자신의 필요를 채웁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서 이익을 채우는 곳이 바로 시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시장이 되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셨고, 그래서 그렇게 진노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이 사람들이 서로 이익을 챙기려는 욕심을 가지고 몰려들고 또 그 이익을 챙겨가는 그런 곳이 되어버린 것을 그만큼 싫어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성전은 성도 개인의 마음 속이 될 수도 있고, 또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제 성전이 아니라 바로 그 곳을 하나님께서 임하시고 거하시는 장소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 은혜를 주시고 또 그 곳을 통해서 그 분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일 또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고 그런 우리가 모였다고 해서 그 곳이 저절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충만한 성전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그리고 우리의 모임이 시장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고 교회 안에서 선한 목적을 위한 바자회까지 죄악시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시장은 개개인의 이익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이익이 추구되고 또 얻어지는 곳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고 우리의 모임이 시장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또 서로 서로 서로가 바라는 것을 챙겨주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또 교회를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말입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린다면,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그리고 함께 모인 교회 안에서는 결코 개인적인 욕심이나 이익이 추구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무슨 욕심이건 끼어드는 것을 철저히 방지해야 합니다. 성도가 부려도 좋은 욕심, 그리고 교회가 부려야할 욕심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영적인 욕심입니다. 내가 참된 기쁨을 누리겠다는, 내가 하나님의 진짜 은혜를 누리겠다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겠다는,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겠다는 그런 욕심말입니다. 이런 욕심이 아닌 다른 욕심은 나의 영혼을, 그리고 교회를 시장판으로 만드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어디든 성전이 시장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동기를, 그리고 교회 안에서 맺는 관계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사심이나 욕심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성전은 성전으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 교회는 주님의 임재와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아버지 집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신앙 속에,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장사치의 마음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기도하며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가 넘치는 아름다운 아버지의 집으로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