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0632to40 - 나에게 오고 나를 믿는 자는.pdf
성경본문 : 요한복음 6장 32-40절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지 않고, 또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인 일은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처음 주님을 만나서 동문서답하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인 물, 결코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지 않을 샘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계실 때에 사마리아 여인은 정말 영원히 목마르게 하지 않을 마법의 물이 있는 줄로 생각하고, 그렇다면 더운데 이렇게 계속 고생하지 않도록 그 물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여인은 다행히 참된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래서 그 영혼 속에 샘 솟듯 솟아나는 샘근원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거듭나고 새로워지기 전에는 도무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공통적인 경험일 것입니다. 교회 오자마자 처음부터 설교를 모두 알아듣고, 그 설교에 은혜받고 그 깊은 진리를 깨닫는 사람, 그 속에서 참 생명의 길을 발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지겹게만 느껴지던, 잘 못 알아듣던 설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설교가 마음에 와 박히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순간이 영적으로 참으로 새로워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비록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었지만, 아직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오해한 것이 아니라 아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처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 이야기를 듣고 그 물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떡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람과 가장 가깝고 없으면 생명이 유지되지 않으며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입니다. 물론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확보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장 필수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을 생명의 물과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양식과 음료로 오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줍니다. 그 분은 우리의 참된 생명과 풍성한 삶을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전부를 주시는 것, 그것이 그 분의 우리를 향한 은혜의 크기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그 우주를 움직여 가시는 온 우주의 주인이신 분이 그 분이시지만, 자신의 형상인 우리들, 우리 스스로도 완전히 사랑할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해서 자신을 먹고 마시며 살도록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의 크기입니다.
두번째로 이것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는, 그 분이 우리 속에 계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 땅에 참된 음료와 양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음료와 양식으로 삼지 않고는 결코 온전하고 참된 삶을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오실 수 밖에 없으셨다는 것은 그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럴 필요가 없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양식에 우리 생명을 의지하고 살아가듯이 그렇게 절실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삶과 생명을 의탁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주님이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음료요, 양식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일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로 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다시 표현해 보면, 그 분을 우리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서의 우리의 참된 삶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되는 물과 양식 같은 분으로, 아니 유일한 양식과 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생각할 때에 자꾸 나중에 천국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구원 이라는 말을 말 그대로 영혼만을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주님을 참된 양식과 음료로 삼아서 결코 목마르지 않고, 굶주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으므로 이 땅에서도 하늘의 넘치는 생명과 풍성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미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수와 영원한 양식이 되시는 우리 주님은 지금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땅의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되시는 예수님을 먹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쏟아주신 그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하늘나라의 삶을 앞당겨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그런 풍성한 삶이 이 땅에서 가능한가? 그건 그저 우리의 소망이 아닌가? 라고 묻기 전에 우리는 “그래, 주님께서는 나를 그렇게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셨다. 내가 믿음으로 의지하며 나아가기만 하면 천국의 풍성한 삶을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 복을 믿음으로 취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 속에는 영적인 음료와 양식의 섭취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음료와 양식을 무엇으로 먹습니까? 예수님께로 가서 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위한 영원한 양식이고 음료이기 때문에, 그 분이 없이는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분을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믿음을 통해서 주님을 섭취하게 됩니다. 그러면, 음식물이 내 몸에 들어와 내 몸을 구성하듯이 주님께서 내 속에 들어와 내 삶을 다시 구성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직 이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의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의 가능성은 항상 이렇게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그 주님을 섭취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꼭꼭 씹어서 내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기는 하지만 내 속에서는 아직도 나와 주님이 따로 노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비극입니다.
저희집 첫째가 어릴 적에 밥 먹는 것을 무척 싫어 했습니다. 지금은 둘째 놈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저희 모친의 말을 들어보면 저희 형이 그랬다고 하는데 이 놈들이 그걸 닮은 것 같습니다. 저희 형은 밥을 떠 넣어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씹지를 않고 그저 입속에서 돌리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씹지 않는 한, 씹어서 삼키지 않는 한 아무리 영양가가 있는 음식도 전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주님이 아무리 영원한 생명수와 영원한 양식이시라도 우리가 씹어서 삼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생명과 그 풍성함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음식에 의지하듯이 그렇게 절실하게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씹어 삼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음식에 두고, 그 음식을 씹어 삼켜 소화시키듯이, 그렇게 자기 생명을 위해서 그 일을 잊지 않고 하듯이 예수님을 그렇게 반드시 필요한 분으로 여기고 받아들여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신앙의 참된 만족과 능력은 나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에는 항상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이러 저러하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축복의 약속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앞의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뒤의 복이 따라갑니다. 뒤쪽에 약속된 복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씀입니까? 그러나 어떻습니까? 떡이 저기 있습니다. 물도 저기 있습니다.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떡을 들고 입에 넣고 열심히 씹어, 삼켜 소화시켜야 합니다. 그 떡을 완전히 내 몸과 동화시켜야 합니다. 그 떡이, 그 물이 내 생명을 책임져 줄 줄로 믿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복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참된 음료요, 참된 양식이신 예수님께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의 삶의 방법을 묶어놓으십시오. 그렇게 의지해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배부름과 목마르지 않음이 모두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의 구경군이 아니라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을 먹고 마시며, 그 분께 의지하고 그 분과 더불어 살아 풍성한 하늘의 생명가운데 살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