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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26. 새벽예배 - 내 아버지의 뜻은(요한복음 40)


요0636to40 - 내 아버지의 뜻은.pdf


20121026D (#1).mp3.zip




본문 : 요한복음 6장 36-40절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도 남은 것만 열 두 광주리가 넘었습니다. 아이 하나가 먹기에도 빠듯한 도시락이 도대체 몇 배로 뻥튀기가 된 것인지, 너무 너무 부족한 상태에서 가장 풍성한 상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 때문에 점점 더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놀라운 일이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자극된  탐욕으로 예수님을 잡아서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피해서 혼자 사라지셨고, 이제 다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앞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리고 나서 하신 이야기가 바로 영생을 위한 물과 떡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이 영생을 위한 물과 떡에 대한 말씀은 오병이어의 이적에 대한 해설이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오병이어를 통해서 보아야 할 표적을 보았다면,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것을 보았다면 다시 말씀하실 필요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반복해야만 했던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배가 고픈 5천명의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그 사건, 그것은 실은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보내신 물과 양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원한 물과 양식으로 먹고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음식을 먹고 배만 불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배만 불려주실 것을 바랬습니다. 그래서 아얘 이 참에 예수님을 왕으로 세워서 계속 떡을 만들어 내도록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은 주님의 답답한 탄식이었습니다. 보았으면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보았으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보기는 보았지만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언가가 그들의 눈을 가리웠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빵에 대한 욕심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고질적인 죄들로 부터 해방시켜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고, 그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이런 비극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안타까운 탄식 또한 그것 때문에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서 착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신앙을 아무 것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도구쯤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할수록 능력있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자기 욕심을 이루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실은 신앙이 아니라 신앙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진짜 신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신앙은 계속해서 우리의 탐욕만을 자극할 뿐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빵을 주시고 물을 주실 때, 주님을 그저 언제든지 빵을 주시고 물을 주시는 분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그 분 자신이 참된 빵이고 참된 물이라는 사실, 그 분만이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고 또 영원히 배고프지 않게 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분을 그런 분으로 믿고 신뢰하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보고 또 예수님답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먹고 마시는 일 때문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는 이 고질적인 영혼의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가리워 참된 믿음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을 치워버릴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늘의 만나를 먹고도 배고팠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는 목마르거나 배고프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는 참된 믿음과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께로 오지 못하고 있었으며 또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계획은 좌절된 듯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언제나 죄를 이깁니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깁니다. 우리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여전히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께로 갈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 중 누구도 내어쫓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이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에게는 양식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살고, 또 거기 의지해서 사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는 모두 다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너무 자신있는 말씀입니다. 너무 확신에 찬 틀림없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자 중에서 영생을 얻고 부활을 얻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구원에 대해서 믿어야 할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이것이 틀림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위한 떡과 음료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생을 위한 양식으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다시 살리실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뜻과 의지는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변경되거나 꺾여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지도 능력도, 그리고 판단력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약속은, 사람의 장담은 그다지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숨을 내어놓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안되는 일을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하지 않아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자신의 의지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것만을 보여줄 뿐이지 이미 실패한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또 영원한 고집장이이십니다. 그 분의 능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는 일도 없고, 의지가 모자라서 포기되는 일도 없으며, 시간이 부족해서 이루지 못하시는 약속과 계획도 전혀 없습니다. 

      

      우리 쪽에서 본다면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서 그 분을 보고 믿는 일과 또 영생을 얻고 부활하게 되는 모든 일들이 전부가 다 따로 떨어져 있는 일로 경험됩니다. 그래서 보는 것과 믿는 것이 곧 우리의 영생과 부활로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의지와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능력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한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 중에서 믿지 않을 사람들이 없고, 믿은 사람 중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사람도 없으며, 또 영생을 얻은 사람들 중에서 부활에 이르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람들이 보이는 고집스러운 불신앙을 보면서, 저 사람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만약 그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반드시 영생을 얻고 부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고집스런 모습 때문에 너무 실망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기도하면서 진심으로 권면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는 사실 내가 구원을 받은 사람이 맞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거기 매달려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또 부활에 대한 것은 우리 주님께 모두 맡기고 그저 내 믿음만 잘 체크하면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잘 보고 있는지, 그래서 예수님을 성경이 말하는 그런 예수님으로 제대로 신뢰하고 있는지 주의하면 됩니다. 혹시 내 속에 아직도 예수님을 보면서도 제대로 신뢰하게 하지 못하는 그런 내면의 장애물들이나 숨겨놓은 죄가 없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것들을 열심히 치워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나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또 전부입니다. 우리 주님은 절대로 나를 구원하시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 또 부활에 이르게 하시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들을 보고 믿는다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 구원에 관한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빛은 항상 어둠보다 강합니다. 은혜는 죄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는 약속의 말씀, 그리고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는 확고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여러분의 믿음의 닻을 두십시오. 주변의 불신앙의 어둠이 아무리 어둡고 진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여러분의 믿음의 빛이 어두워지지 않게 하십시오. 


        우리를 맡아 기르시고 또 보호하시는 우리의 영원한 목자께 우리의 영혼을 맡기고 이 어둠과 불신앙의 시대 속에서도 은혜의 빛과 확신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