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0660to66 -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pdf
본문 : 요한복음 6장 60-66절
저는 종종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믿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여러분도 함께 이 질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되면 거의 많은 분들은, 특히 그래도 진지하게 신앙생활해 보려고 애써왔던 분들은 얼굴은 웃으면서도 아주 심각하게 어렵다고 대답합니다. 왜 신앙생활이 어려울까? 그 좋은 일이 왜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을까? 그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걸림돌들 때문입니다.
그저 설렁 설렁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나 드리는 일을 신앙으로 생각한다면 몰라도, 신앙에 깊이 발을 들어놓고 또 예수를 제대로 믿어보려고 하는 순간 우리 앞에는 그러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하는 걸림돌들이 나타납니다. 사실 신앙에 대한 그런 진지함이 없다고 해서 걸림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걸림돌은 애써 모른 척하고 또 피해다니지 않는 한 언제든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걸림돌이 참 많지만, 그런 걸림돌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걸림돌, 그리고 자주 만나는 걸림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걸림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사람들 중에서 그 속에서 걸림돌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걸림돌의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 반면에 우리의 자연적인 삶은 항상 진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성경이 내가 바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해 줄 때는 괜챦지만 내가 바라는 것이나 혹은 내가 익숙해져 있는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할 때는 성경의 교훈은 나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챙겨주신다... 이런 말씀들은 그런 말씀들을 우리가 진짜로 믿든 그렇지 않든 우리 입맛에 잘 맞습니다. 그걸 받아들이기 위해서 내가 떠나고 버려야할 것이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져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쳐 복종시켜라, 십자가에 욕심을 못 박아라, 원수를 사랑해라, 자기자랑하지 말고 항상 자신을 낮춰라... 성경이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심각해지면 심각해질수록 그것은 더욱 더 커다란 걸림돌이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위한 물과 떡에 대한 말씀을 다 마치셨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불평하고 또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겨났습니다. 이번에는 제자들 중에, 그러니까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이것이 이들의 불평이었습니다. 이것이 영생에 대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듣고난 후, 이제까지 스스로 예수의 제자임을 자처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해서 안타깝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은 만약 이들이 “내가 영생을 위한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니 나를 먹어야 살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진다면, 오히려 믿음을 잃어 버리고 실족하게 된다면 나중에 예수님의 승천을 볼 때는 더욱 더 실족하고 더 큰 불신앙에 빠지게 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안타까워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걸려넘어짐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주신 처방전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답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앞서 주신 주님의 말씀보다 더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정말 무지하게 어려운 말씀입니다. 답이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된 셈입니다. 정말 큰일이죠. 예수님의 이 말씀은 풀고 또 풀어 본다면 이런 이야기쯤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말한 나의 ‘살’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과 영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너희는 ‘살’에 붙들려서 도무지 이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구나. 계속 영생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너희 육신,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붙들려서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그런데, 주님은 이 알아듣지 못함의 문제를 곧바로 믿음의 문제로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영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계속 말해왔지만,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성령님이시고 너희 육체는 너희의 영생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해왔지만 너희들 중에는 이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구나” 주님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것만큼은 아주 명확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육체의 생명,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그 입장에서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중에는 전혀 그런 생각조차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영생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 영생에 대한 말씀은 듣지 않으려고 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믿음의 문제가 되고,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불신앙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믿기 싫으니까 애써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전에 하신 말씀들을 반복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전에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였다면 이번에는 가짜를 진짜로 부터 걸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이것은 아주 아주 무시무시한 말씀이었습니다. 내 말을 따라서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가짜라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보인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말씀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듣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오해해 왔고, 예수님은 자신들이 원하는 배만 부르게 하는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육신과 만나가 아니라 영과 생명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순간 그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결국 이들이 제대로 알아들은 그 말씀이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었고, 이들은 그 걸림돌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이들에게 진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떠나간 이 슬픈 제자들에게 진짜 걸림돌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까? 나는 너에게 만나를 주어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주어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왔다는 말씀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에게 진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예수님의 관심사와 다른 자신들의 관심사, 그러니까 영혼과 생명이 아닌 떡과 배부름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걸림돌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생을 위한 진리가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실은 이미 우리가 걸려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걸림돌, 그러니까 우리의 욕심과 현실에 대한 집착이라는 걸림돌에 심각하게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그 자리를 떠나라는 영생을 위한 진리가 반대로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때는, 그 말씀을 치워버리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내 욕심을 내 집착을 치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우리 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오히려 주님의 말씀 때문에 주님과 더 멀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의 걸림돌 대신에 우리의 욕망과 집착이라는 걸림돌을 치워버리는 이 일은 너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걸림돌들은 반드시 치워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정말 강력한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을 충만하게 채워주셔서 우리가 그 힘으로 우리의 진짜 걸림돌인 욕심과 집착을 치우게 해 달라고, 그 소심줄같은 끈을 끊어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분은 분명히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또 강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말씀에 걸려넘어지지 않고 그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그리고 영생으로 더 가까이 가도록 온전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것들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날보다 더 간절히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속 사람이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져서 욕심이라는 걸림돌, 현실에 대한 집착이라는 걸림돌을 훌쩍 뛰어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 영생에 이르게 하는 참된 믿음에 이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이 이 기도를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능력있게 도와주셔서 우리를 참 믿음에 이르게 해 주시고, 넉넉히 넘을 수 없었던 걸림돌들을 넘어서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직접 이 기도로 들어가겠습니다. 말씀을 기억하시고 또 묵상하시면서 성령충만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영생을 얻는 믿음에 이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