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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2.04. 새벽예배 - 오라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대강절 둘째날)


사0110to20 - 오라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pdf


20121204D (#1).mp3.zip


  

   

   본문 : 이사야 1장 10-20절


말씀드렸다시피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대하는 절기인 동시에 회개를 위한 절기이기도 합니다. 얼핏 보면 두 가지는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인 듯이 보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기쁘고 기대되는 것이지만 회개는 정반대로 기독교 신앙을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무겁고 부담스러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과 또 회개하는 것은 우연히 묶여진 세트가 아닙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한 덩어리일 수 밖에 없는 두 가지입니다. 죄 가운데 머물면서는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라고 요청하기 전에 먼저 회개를 요청합니다.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한 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이사야서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구원과 용서를 아주 희망차게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원자, 완전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장 생생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는 소망과 은혜가 충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또한 그리로 직접 가지 않습니다. 그 전에 유다의 죄를 아주 통렬하게 지적하고, 그 죄에서 돌이킬 것을 요청합니다. 이사야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구원을 이야기하기 전에 회개를 요구합니다. 


우리가 곧 바로 구원으로, 소망으로, 기쁨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독교 신앙 안에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구원과 소망, 그리고 기쁨으로 가려면 죄를 고백하고 슬퍼하며 용서를 빌고 돌이키는 회개를 통과해야 합니다. 분명 기독교가 기쁨으로 가득 찬 종교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기독교의 기쁨은 가벼운 기쁨이 아니라 굉장히 무겁고 진지한 기쁨이 됩니다. 그 이전에 모든 무겁고 죄악된 것들을 내려놓고서야 얻을 수 있는 그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는 1장을 시작하면서 유다가 하나님을 잊었다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을 알고 순종하는데, 유독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아주 오랜 세월동안 양육하셨지만 하나님을 몰라보고 순종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근본적인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양육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그래서 그 분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관원들은 소돔의 관리들처럼 되어 버렸고, 백성들은 고모라의 백성들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속속들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유다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상태에 있는 유다의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계시는데, 그 잘못은 거의 모두가 다 신앙적인 잘못입니다. 유다는 지도자든 백성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할 것은 하지 않고 하면 안되는 것들을 행했습니다. 우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분의 말씀과 법에 귀를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제사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고 그 분과 다시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그들은 그저 제사만 드리고 절기만 그럴 듯하게 지키는 일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고 나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심지어는 그런 모습이 피곤하며 지기 싫은 짐처럼 여겨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안에 내용이 있었다면 그들의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면 세상에 주님이 그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이 없으셨겠지만 내용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역겹고 거부감이 드는 것이 바로 그 귀한 제사와 절기의 행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는 그렇기 때문에 유다백성들이 손을 들 때는 손으로 눈을 가려버리시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드려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하는 철저히 인격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이 인격성이 사라져 버리면 실제로는 신앙적인 행위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을 불쾌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하나님 앞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려는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없신 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화가 나셨던 것은 유다 백성들이 단지 내용을 잃어버리고 형식에 치우쳐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아주 심각한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유다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여기고, 그들로 부터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서 힘을 휘둘렀고 또 그러지 않아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더욱 더 힘들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그는 중립지대에 남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마치 흐르는 격류 가운데 놓여진 작은 배처럼 세상의 악한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서 놓는 순간 정신없이 그 악한 흐름에 떠내려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천적으로 선보다는 악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악한 격류에 휩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모습을 모두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게 그리고 오래 기도한다고 해도 우리의 기도를 전혀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바라보셨던 눈을 가려버리고 맙니다. 


주님은 이렇게 변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두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재판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신앙의 내용을 모두 잃어버리고 대신 형식에 집착하면서도 온갖 악행을 일삼았던 유다백성들에게 첫번째로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일단은 스스로 죄를 씻어야 합니다. 저지르던 악한 일들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다가 아닙니다. 이제 원래 살아가야 할 모양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행을 배워야 하고 정의를 구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셨던 회개였습니다.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단지 예전의 잘못된 일들, 죄악들을 그만두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이고 이제 방향을 바꿔서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또 정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회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사람들 사이에서 청산하였으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완전히 씻어주시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두번째로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예전의 복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주님은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법정으로 와서 서로 변론해 보자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변론은 유죄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변론한다면 두 사람 중에서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가리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변론을 벌이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그 변론이 인간에게 승산이 있을리 없습니다. 죄는 항상 우리에게만 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변론의 결론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죄가 있다고 법정으로 불러놓고, 잔뜩 그 죄를 나열해 놓고 그 변론의 결론이 징벌이 아니라고 용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씻겨서 다시 희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한량없는 은총입니다. 그 분은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는 백성을 씻어주시고 다시 복된 자리로 돌려놓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우리는 계속해서 신앙의 내용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형식으로 채우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법을 떠나 내 욕심을 따라 살아가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 용서를 비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분은 분명 잘못은 잘못이라고 판단하시겠지만 그런 우리를 또 씻어주시고 또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다시 백성의 복되고 영광스러운 자리로 되돌려 놓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제목입니다. 오늘은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말씀에 대한 순종을 잃어버리고 자꾸 다른 형식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모습은 없는지, 그리고 아직도 내 속에 있는 욕심 때문에 다른 다른 이들을 보지 못하며 사는 모습은 없는지도 돌아봅시다. 오늘은 이런 죄들을 떠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리시고, 또 깨끗이 씻어주시는 사죄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공로, 그 분의 의로 다시 한 번 나를 덮어주시고, 다시 한 번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이번 대강절 기간이 나를 더 깨끗하고 정결하게 씻어주시는 은혜 가운데, 주님을 더욱 온전하게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