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0301to06 -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pdf
본문 : 누가복음 3장 1-6절
성도 여러분, 모든 역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진실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시면 세상의 주관자가 될 수 없으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질문을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을 진실로 믿고서 그 믿음으로 살아가느냐고 질문으로 바꾸어 묻는다면 거기에는 정말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을 진실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려고 애쓸 것이고, 또 그렇게 찾아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도도한 물결을 거스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그 역사가 종착역에 도착하였을 때,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는 그런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우리 생각처럼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진짜로 믿는 것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너무 작은 것도 못 보지만 너무 큰 것도 못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이 두 가지 특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너무 큽니다. 마치 해류같이 말입니다. 해류를 타고 있는 물고기들은 해류를 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흐름이 너무 거대해서 그냥 바다에 있다고 느낄 뿐이죠. 그런데, 그 해류의 속도가 엄청 납니다. 실제로 해류가 없으면 물고기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를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나 거대합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죠. 그런데 정반대로 너무 너무 섬세하고 작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죠.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획이요 또 그 계획의 성취이지만 그 누구도 그 십자가 뒤에 숨겨진 구원의 역사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가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를 주관해 간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고 그 믿음으로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으로 세례 요한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그가 왕의 전령 역할을 합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을 성취합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를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 지라” 이것이 당시의 유대 땅을 둘러싼 정치적인 배경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땅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복잡한 정치적인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의 식민지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정통성이 떨어지는 로마의 사주를 받은 세 명의 분봉 왕들이 알력 가운데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그 위에서 유대 땅 전체를 관할하는 총독으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대제사장은 안나스와 가야바였습니다. 이 여섯 사람이 유대라는 세계를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이 사람들의 막강한 영향력 밑에서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섯 사람이야 말로 그 당시 유대의 역사를 움직여 가는 실질적인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역사는 유대 역사의 큰 흐름도 아니었고, 가장 중요한 흐름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장 강한 흐름도 아니었습니다. 그 흐름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총독관저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었고, 분봉 왕들의 화려한 왕궁에서 시작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유대 역사, 아니 세계 역사, 나아가서 우주의 역사의 가장 강하고 도도한 흐름,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흐름은 그 누구도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그런 곳에서, 그리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장소는 빈 들이었습니다. 다른 빈 들과 전혀 다르지 않는 어디인지도 정확하지 않은 버려진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무슨 위대한 영웅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버려진 땅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은 그저 이름없는 한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조금 더 카리스마 있는 또 한 명의 선지자가 나타난 것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 없는 선지자, 갑자기 등장한 젊은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이후 온 세상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고, 세상을 바꾸는 그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우리들을 둘러싼 얽히고 섥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치 그 속에서 그 모든 일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나 혹은 사람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두번째 당선된 첫 해, 김정은이 북한을 다스리기 시작한 첫 해, 일본에서는 보수 자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대한민국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하루 전날, 교단은 총회장 문제로 시끄럽고 실망스러운 때에...’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과연 이런 상황들이, 그리고 이런 나라들이,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이런 일들이 우리의 모든 삶과 역사를 결정하는 조건들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에 일희일비하며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그렇게 살아가야 할까요?
주변이 복잡하고 불안할수록 우리는 그 역사를 누가 쥐고 계신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여 가고 계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복잡해도, 아무리 불안해도 역사는 그런 상황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을 좌우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전부가 아닙니다. 진짜 역사는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그러나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이 진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 중의 역사,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사입니다.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역사는 그저 하나님의 결정적인 역사가 성취되어져 가는 무대에 불과합니다.
빈 들에서 누추한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에, 그는 온 우주의 왕이 이 세상에 오시는 왕의 대로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예루살렘의 왕궁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누추하고 보잘 것 없이 시작된 복음은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되었고, 빛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고, 세상의 역사와 문화를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왕이 오신 이 계절에 우리는 그 왕의 오심에 대한 이런 놀라운 사실들을 깊이 묵상하며 그것을 우리의 믿음의 내용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도 어느 빈 들에선가는 그 누군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있고, 또 어느 누추한 방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진행되어져 가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충실한 백성들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해 줄 것이고 우리를 그 분의 나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세상의 크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저 들판 한 구석에서 미세하게 임해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견고하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