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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22.새벽예배 -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03)


요1701to08 -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10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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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7장 01-08절


17장은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그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이 땅에 마지막이요 또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드리는 제사를 드리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그 제사를 받으실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전혀 어둡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당당하며 확신에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제자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말 그대로 듬뿍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대대로 성도들은 17장을 읽을 때면 마음이 따뜻해 지고 든든해 지며, 자신들을 향한 예수님의 깊은 애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 17장은 특별히 예수님이 마음에 집중하면서 읽을 때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가 하나님의 영광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하나님과 연결시켜주시고 관계를 온전히 화해시켜 주시는 일을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것이었고 예수님은 이제 그 모든 권세를 맡은 일을 위해서 쏟아부으시고, 마지막으로 생명까지 내어주어 그 일을 완전히 완성시키기 전에 이 기도를 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구하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을 영화롭게 해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주셔야 하는 영광이라고 기도드립니다. 그렇다면 이 때는 무슨 때일까요? 예수님은 어떤 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십자가를 지실 때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으니 이제 그 일을 행하게 해 달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첫번째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이제 십자가를 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의 자리입니다. 능멸의 자리이고, 고통과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십자가는 그런 고통과 댓가를 치러야 하는 자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장 큰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곳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써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고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런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너무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자신의 고통과 수치를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며 또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삶이 고통스럽기만 할까요? 힘겹기만 할까요? 아닙니다. 고통도 있고 힘도 들지만 그 모든 것이 가장 사랑하는 분을 위한 일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가장 큰 기쁨이요 즐거움이 됩니다. 또 그 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 자신의 영광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진짜 신앙이 되려면 우리의 신앙은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되어야 하구요. 그래야, 두 분께 대한 헌신과 순종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생활이 두 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동시에 우리에게도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 이제 예수님은 자신에게 자기 몫의 영광을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비록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잠시 내려놓으셨던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누리셨던 그 영광을 다시 누리게 해 달라는 기도이기는 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으니 다시 하늘에서 아버지와 누렸던 그 영광을 되돌려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자로 오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두번째 아담으로도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본문은 우리가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서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늘의 영광이 어떻게든 하늘나라에만 가면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영광은 차별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명확한 차별이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은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삶을 충실하게 살고 또 우리에게 맡기신 소명을 따라 살며,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에 따라 결정되어질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영광이 가장 크게 빛나는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한 사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드리며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소명에 따라 사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머리되신 예수님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 분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셨던 것처럼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말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말입니다. 누군가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너는 왜 사느냐,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말이야 상대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대답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라는 대답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스러우심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할 것입니다.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더 좋은 방편으로 삼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랑하고 또 살아하는 사람에게 걸맞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존재이니까요. 


사랑이 없을 때, 의무는 무거운 짐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있으면 의무는 더 이상 의무로 남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의무는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됩니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모두 우리가 피조물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에게 더 이상 이런 것들은 억지로 지는 짐으로 남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행하고 싶어지는 소원이 되며, 기쁨이 되며 가장 만족스러운 일이 됩니다. 힘들고 수고롭기는 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오히려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수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십자가를 눈 앞에 놓고 드리신 마지막 기도를 통해서 표현하고 고백하셨으며, 또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앙은 사랑이 될 때, 그 때에야 참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죽음을 넘어서는 능력이 된다고 말입니다. 


꼭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더 사랑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은 더 이상 부담스러운 짐이나 그저 습관처럼 의미없이 행하는 일들의 연속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순종과 섬김이 무겁고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행하고 싶어하는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더욱 더 하나님께 순종하시고, 그 순종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행복하고 능력있는 주님 닮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