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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27. 새벽예배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2(요한복음106)

요1711to13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2(요한10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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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7장 11-13절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충만하게 가지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던 이유는 제자들이 기쁨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기쁨이라는 것이 평범한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시면 제자들이 슬퍼할까봐 그 슬픔대신 기쁨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기쁨은 예수님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기쁨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주고 싶어합니다. 무언가를 통해서 만족을 얻게 해주고 싶어하고 그래서 기뻐하게 해 주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하신 기도,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들을 위해서 하신 이 기도 속에 들어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들을 향한 사랑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평범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너무 크고 진한 사랑, 너무 풍성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시는 기쁨이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이 예수님 자신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기쁨은 과연 어떤 기쁨이었을까요? 그 기쁨은 가장 짧게 말씀드리면 세상에는 없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쁨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이기 때문에 누리는 그런 기쁨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누리신 기쁨은 이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누리신 기쁨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누리는 기쁨입니다. 13절의 기도가 11절에서 이어지는 기도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나서 13절로 와서는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하게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기 때문에 누리신 기쁨이라는 것과 주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두 분의 완전하신 분이 하나이실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또 완전하겠습니까? 완전함과 하나되는 것은 정말 정말 기쁜 일입니다. 말 그대로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일입니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여러분도 이미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동안에 분명히 여러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과 성령으로 충만해진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시죠? 어쩌면 지금 그런 상태이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때 여러분이 느끼시고 누리셨던 기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면서 느꼈던 가장 크고 완전한 기쁨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 성령님과 하나되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속을 꽉 채우시고 또 그렇게 나와 하나가 되셨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그래서 세상은 결코 줄 수 없는 그런 기쁨과 만족입니다. 우리가 그 때 누렸던 기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하나됨 속에서 누리셨고, 또 지금도 누리고 계시는 그 기쁨을 닮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족스럽고 그렇게 기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쁨을 닮은 완전한 기쁨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크기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만 있었던 그 완전한 기쁨을 나눠주고 싶어하실만큼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 덕분에 저와 여러분에게는 비록 이 땅에서 살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그 완전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이 세상에서도 그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하나됨 안에서 누리셨던 그 기쁨을, 그것도 빼앗기지 않고 지속적으로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러한 기쁨 가운데 있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런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결코 거절하시거나 마다하실 이유가 없는 예수님의 기도였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앞에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약속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이런 기쁨에 관심을 가지고 이 기쁨을 얻고 또 누리기 위해서 애쓴다면 우리도 주님의 기쁨을 닮은 그런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니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은 이미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 일에는 이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더불어 거기에 대한 우리들의 온전한 순종과 헌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이 기쁨을 얻을수만 있다면 그런 댓가들은 오히려 적을 것입니다. 다시 11절과 13절의 기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드리고 있고, 그렇게 기도드리는 이유는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하나됨 속에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숨겨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교회가 하나되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부어주고 계시니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하실 역할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에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그 은혜에 의지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셨을 때, 제자들과 하나의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사시면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 하나됨을 지켜나가실 수 있을지를 손수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버릴 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경고는 하셨을지언정 그들을 욕하거나 비방하고 제자들의 무리 안에서 내어 쫓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고, 그렇게 해서 처음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되는 길은 우리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흉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흉을 알고 허물을 알아도, 부족함과 잘못을 알아도 품어주고 기다려 주며 끝까지 하나됨을 지켜내려는 넓은 마음을 연습해 가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교회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하나되었을 때에 자신에게 얼마나 실제적이고도 영적으로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주실 수 있는지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것을 알고 있고, 또 한 번이라도 교회의 하나됨으로부터 오는 참된 유익들을 누려본 적이 있다면 교회를 그렇게 소홀이 대하지 않을 것이며, 교회의 하나님을 깨뜨리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를 하나로 만들고 또 그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가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할 소중한 의무와 노력들을 기쁨으로 감당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의 기쁨이 교회의 하나됨, 하나님과 예수님의 하나됨을 닮은 그런 온전한 하나됨 안에 있다면, 우리들은 그저 적당히 서로 문제 없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래서는 나에게도 참된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은 기도를 드리실 때, 우리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내가 버리고 떠나야 할 마음과 습관들, 다른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들은 없는지 곰곰히 살펴보시고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것이 의외로 굉장히 사소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하나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에 의지해서 하나됨을 위해서 헌신하고 순종하겠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교회의 하나됨 안에  성도들의 참된 기쁨을 넣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래서 성도로서의 최고의 기쁨을 알기를 원한다면, 그 기쁨을 위해서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수님을 흉내내며 서로를 사랑하려고 애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되기 시작할 것이고, 우리가 하나된 그 만큼 우리는 참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점에서 성장해 가고 또 그래서 함께 누리는 기쁨이 점점 더 커지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완전한 기쁨을 향해서 다가가는 그런 기쁨 넘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함께 이런 기쁨을 위해서 애쓰고 헌신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주님께서 누리셨던 그 완전한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