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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4.10.새벽예배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요한복음116)


요1917to22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요한1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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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복음 19장 17-22절


아주 오래 전에 한 아버지가 한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고 지금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있는 곳인 모리아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미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제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옛날 그 아버지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린 양 한 마리가 필요했듯이 오늘은 이 땅의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을 유월절의 어린 양 한 마리가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어린 양,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제물로 삼았습니다. 


아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자기 십자가... 아들은 사실 자기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라뇨? 죄 없는 분, 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자기 십자가라뇨? 세상에 이것보다 가당치 않은 것이 어디있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그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셨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그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이고, 그 아들의 십자가는 우리 아들들의 십자가입니다. 


골고다, 죽음의 땅. 그 언덕은 우리와 우리의 아들들이 올라야 할 언덕입니다. 그러나 그 언덕을 예수님께서 오르셨습니다. 어깨에는 제단과 뗄감을 지고 이번에는 아버지도 없이 홀로 그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다른 죄인들과 함께 못 박아서 완전한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렇게 가장 악한 죄인으로 형틀에 처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도, 그리고 사탄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대적했던 유대인들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 그 분이 자기 십자가로 삼으시고 거기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가 실은 그 분의 가장 큰 전쟁터였고, 승리의 장소였으며 심지어는 그 분의 왕좌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나 부당한 것이고, 아픈 것이고 비참한 것이며 슬픈 것이지만 사탄과 그 하수인인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완전한 패배의 장소로 몰고 들어갔고, 거기서 완전한 패배를 당했고,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온 세상의 왕으로 높은 왕좌에 앉혀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못 박도록 내어준 빌라도는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도 그랬겠지만 유대인들을 향해서 굉장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알면서도 자신이 원치 않는 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그런 심정을 예수님의 죄명을 적는 예수님의 명패에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관례대로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로마의 말인 라틴어로 예수님의 죄명을 명패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목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물론 대제사장들 일당은 이 죄명에 대해서 발끈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다가 ‘자칭’이라는 말을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빌라도는 “나는 적어야 할 것을 적었을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 이 세 언어는 그 당시 유럽과 소아시아 지역 사람들 전체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언어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죄가 적힌 명패는 결국에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그 당시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준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패는 죄인의 명패,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억울한 죄인의 명패가 아니라 그 누가 보아도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왕의 명패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곳이 골고다 그러니까 해골이라는 이름의 땅, 죽음의 땅이라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곳은 지명의 뜻도 그렇지만 그 동안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곳이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땅이었죠. 게다가 그 곳에 세워진 십자가라면 거기야 말로 가장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고, 그 죽음으로 인한 가장 큰 어둠과 절망과 고통이 있는 곳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골고다 언덕, 그리고 거기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쏟아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거기에 생명이 가장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죽음을 이기면 모든 곳의 죽음이 정복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 그 골고다 십자가 위에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을 부어주심으로써 죽음의 땅, 사탄의 본거지에서 완전히 무력화시키신 것입니다. 


게다가 처음 아담의 실패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그것 때문에 이 세상에는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정반대로 뒤집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죽기까지, 그것도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우며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번째 아담으로써 이번에는 사탄으로부터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비록 그 십자가 밑에서는 여전히 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님의 속옷을 가위바위보로 나눠가지려고 실랑이를 벌이면서 인간의 무자비함과 무지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온 유대인의 왕, 나아가서 오시기로 되어있는 우주의 왕이심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미리 기록해 놓으신 성경말씀을 그대로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이며, 예수님이 그 동안 죽음을 무기로 휘두르며 세상의 왕노릇하던 사탄을 무너뜨린 가장 빛나는 승리의 전쟁터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장 높이 들리신 왕좌였습니다. 비록 악한 인간의 얕은 지혜나 사탄의 부족하기만한 간교함은 그 깊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도 또 파악할 수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 골고다의 십자가를 다시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는 승리의 자리, 죽음의 한 가운데 세워진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과 싸워 자꾸 약해지고 또 패배하게 되는 이유는 첫째로 겉으로 보이는 싸움만 보고, 겉으로 보이는 승패만 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가장 큰 승리의 전쟁터요 가장 높은 왕좌로 만드심으로써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단지 하나님과 예수님께만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지혜이기 때문에 실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원리, 그리고 진실로 승리하는 원리,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삶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며 가장 빛나게 하는 원리가 다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 삶을 위한 가장 지혜로운 원리가 되어 줍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생명을 지키려고만 하면 움켜쥐고 있으려고만 하면 생명은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주님처럼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내놓고, 또 나의 바깥으로 흘려보내면 겉으로 보기에는 빼앗기는 것 같고 지는 것같지만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승리가 일어납니다. 그 자리가 자기중심적인 세상에 대해, 또 사탄에 대해 승리하는 자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생명의 자리가 되고 또 나를 위한 영광의 자리가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짜 영광과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다가 지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이기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이기려다가 낮아지는 것은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높아지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나누려다고 연약해 지는 것은 연약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해지는 것이며 더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그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지혜를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 가치있게 살려고 하다가 힘들어 지시거든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선하게 살려고 하다가 베풀고 살아가려고 하다가 손해를 본다고 여겨지시거든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잘 하는 것입니다. 아주 잘 하는 것입니다. 잘 하는 것일뿐 아니라 스스로를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며 또 가장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십자가의 능력과 지혜를 우리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니까요. 


십자가가 보여준 세상이 알 수 없는 지혜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셔서 가장 영광스럽고  가치있는  승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