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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4.12.새벽예배 -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요한복음118)

요1928to37 -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요한11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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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복음 19장 28-37절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궁금해 지는 것이 많이 생겨나지만 그 중에서도 성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신약과 구약의 관계, 율법과 복음의 관계입니다. 사실 이것은 여전히 논쟁 중인 문제여서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성경 자체의 증언으로 보면 구약은 예언이고 신약은 성취이며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라는 것이 신약과 구약의 관계를 가장 잘 정리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를 읽다가 보면 ‘성경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라든지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라든지 하는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구절들은 예수님의 어떤 행동이나 말씀이 구약성경의 어떤 말씀의 성취라는 뜻이고 예수님께서 그 성취를 위해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셨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구약의 예언이나 특별한 말씀들을 적극적으로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그런 설명들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어떤 말씀이 있는 줄 아시고 그 말씀이 자기를 위한 말씀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도 첫절을 그렇게 시작하고 있고 마지막 두 절도 그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다” 이 두 구절은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에 관한 구절들, 어찌보면 그게 그런 구절들인지 조차 몰랐던 구절들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 성취되게 하시려고 하셨고 그래서 그 구절들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구절이 가리키는 구약성경은 시편 69편 21절과 22절 말씀인데요. 거기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요한은 다윗이 극심한 고난 중에 드린 기도의 내용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서 신 포도주를 마시셨고, 결국 시편 69편 21절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시고 굳이 왜 그런 말씀들을 이루셔야만 하셨을까요? 먼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 주님의 이런 행동들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신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편 69편의 말씀을 이루셨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을 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목 마르다고 말씀하셔서 신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을 아신 후에 그런 행동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 속에 성경이 구약성경의 예언들과 말씀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또 예수님께서는 그런 예언들과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셨다고 말하는 진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한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구약성경에 예수님에 대한 약속이나 말씀들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모든 일을 하시고, 또 그렇게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을 이루신 것일까요? 이루지 않으신 것일까요? 모든 일들을 이루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신 구원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삶과 또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들을 완수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그리고 신 포도주를 마시시기 전에 이미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들은 이루어진 것이고 그렇게 보면 그 두 개의 행동들은 불필요하게 덧붙여진 행동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두 절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똑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섯 시간만에 돌아가셨지만 원래 십자가 처형은 굉장히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틀이나 삼일씩 걸리는 정말 오랫동안 천천히 진행되는 처형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사형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두 가지 배려가 있었는데요. 쓸개탄 포도주를 마시도록 해 주는 일과 마지막에 거의 죽을 때가 되면 다리 뼈를 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쓸개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취제 역할을 해서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는 드셨지만 쓸개를 탄 포도주는 드시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고통을 온전히 당하심으로써 십자가 위에서 온전한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거의 죽을 때가 되면 다리 뼈를 꺽어주는 일은 그렇게 하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아래로 처지게 되고 그러면 숨이 막혀서 금방 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두 번째 배려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기 전에 이미 완전히 숨을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 일에 대해서 이것 또한 구약성경 그러니까 시편 34편 20절에 나오는 의인에 죽음에 대한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삶 전체 그리고 돌아가시는 순간 뿐만 아니라 죽은 이후의 모습까지도 성경말씀을 이루셨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소해 보이는 구약의 구절들까지 이루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나심과 사심,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만 있으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삶 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도, 그리고 돌아가신 후의 모습까지도 성경 구석 구석에 있는 말씀을 이루셔야 하셨을까요? 그것은 저와 여러분과 같은 예수님을 믿어야 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35절을 보면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 목격한 자가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틀림이 없으며, 이런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그 기록을 읽는 자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0장 31절을 보아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한으로 하여금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요한복음을 읽는 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만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전체가 그렇습니다.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말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과 그림자를 담기 위해서 준비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고 따르며 그래서 구원을 얻게 되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서 아담이 타락한 이후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예수님에 대한 약속과 예수님의 그림자를 계속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 도구가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였고, 또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의 인물이나 사건들, 그리고 예언이나 심지어는 시편이나 지혜서에 이르기까지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주시고 또 알려주시며,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셨습니다. 그림자를 먼저 보여주셔서 그 그림자의 실체가 나타났을 때, 그 실체를 놓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역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더 확실히 믿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마련해 두신 증거의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바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약의 말씀들을 이루기 위해서 애쓰셨던 우리 주님의 모든 행동들 또한 우리를 믿게 하고 또 구원받게 하시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그대로 빼닮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열심과 사랑이 얼마나 강렬했길래, 예수님은 이미 다 이루신 후에도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구약의 단 한 말씀이라도 더 이루시려고 그토록 애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강렬하게 사랑하시는지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곰곰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신하고 구원얻게 하시기 위해서 남은 온 힘을 다해서 본인에게는 전혀 쓸데 없는 일, 그러나 우리의 믿음에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정말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뜨겁고 강렬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 이 구절 속에 담긴 우리 주님의 뜨겁고 끈질긴 사랑, 우리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열심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열심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닻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을 풍성하게 하고, 그 사랑이 여러분을 강건하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 속에서 흔들림이 없고 풍성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