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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3.04.19. 금요기도회 -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사도행전 9)


행0115to26 -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사도행전9).pdf


20130419D (#1).mp3.zip




본문 : 사도행전 1장 15-26절


우리는 지난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과 성도들은 그 기다림의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는 일을 선택했다는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이미 약속하신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그런 기도는 우리를 그렇게 약속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준비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를 드리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그렇게 약속된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 자체가 영적인 전투이고 싸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가지 마음과 생각의 시험이 더 격렬해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실망시키고 좌절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이 더 심해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제는 세상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겠다는 사탄을 향한 선전포고이기 때문에 사탄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때, 우리는 더 든든하고 확실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기도할때 더 주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믿음이 은혜를 받는 손이라면 기도는 그 손을 만들기 위한 꼭 필요한 준비이며 그래서 사탄이 그렇게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을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를 성령충만할 때까지 우리를 공격하여 넘어뜨리고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공격을 막아내고 인내하면서 성령충만함을 덧입을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제자들과 처음 성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주실 때가지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기간이 다 합치면 50일인데 이 기간이 그들에게 아무런 시험이 되지 않았을리가 없습니다. 그 기간동안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끼어드는 불신앙적인 생각들과 마음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사탄의 공격이 심했을 것이고 싸움은 치열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각개전투를 벌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함께 모였고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보다도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그들을 끝까지 인내하고 승리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승리하는 기도, 결국에는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그 첫번째 비결은 무엇보다도 우리는 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계속해서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 보다는 저와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을 더해 달라고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가 응답되기는 되더라도 분명히 더디 응답될 것이고, 그 응답의 능력 또한 더디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음으로 함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영적인 준비를 함께 갖추어 간다면 그만큼 기도의 응답도 빨리 이루어질 것이고, 응답이 주어졌을 때 그 응답이 부작용이나 어려움 없이 우리 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더 능력있게 바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계속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죠? 기도하실 때마다 잊지 마시고 계속 간절하게 우리 교회의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우리가 성령충만의 은혜를 주시기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 나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비결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뢰로 부터 나오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기도로 믿음을 지켜가고 또 그 믿음으로 다시 기도하는 그런 기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끝가지 주님 주시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해서 함께 응답받는 기도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뽑아서 열 두 사도의 수를 채우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모였을 때, 베드로가 일어섭니다. 그리고는 가룟 유다의 일을 설명하고서는 이제는 열 한 명이 되어버린 사도들의 숫자를 보충해서 다시 열 둘로 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설명하는 설명이 조금 독특합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이 그랬듯이, 유다 대신 한 사람이 선출되어 유다를 대신해야 하는 것도 성경이 이미 말씀하고 있으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일은 제자들과 처음 성도들에게는 아프고 이해할 수 없는 가장 악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으니까요. 그 때 성도들이 얼마나 좌절하고 분노했겠습니까? 그렇지만, 베드로는 유다가 배신하고 죽는 일은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일, 하나님의 계획 밖의 일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구약성경은 유다라는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는 않고, 하나님께서 유다를 유혹해서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다는 배신도 죽음도 철저히 자기 의지로 선택해서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고, 또 섭리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이 정확하게 어떤 관계 안에서 움직이는지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신비 중의 신비이니까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선택은 어떤 모양으로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는 것과 그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선택이 하나님의 뜻을 선하게 이루어 가는 도구가 되게 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아시고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보는 일, 경험하는 일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지라도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섭리해 가시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좌절과 실망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모두가 다 그 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분의 선을 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보고 또 그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며 또 섭리하고 계신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확신이 우리를 견고하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능력을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이것을 몰랐고 또 성도들이 이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그들은 한 명이 빠진 자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말씀을 통해 그 일 또한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섭리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뜻은 열 둘을 채우는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들의 분별과 판단이 옳았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아주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오늘 본문은 사실 본문의 흐름과 별로 상관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그냥 1장 14절에서 2장 1절로 넘어가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죠. 그런데, 실은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전체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특히 에스겔 3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참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서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성령세례를 주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성령님께 순종하며 그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새 이스라엘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진짜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하나님의  참된 백성, 새 이스라엘을 만드시려면 누가 필요할까요? 그 성령을 받을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진짜 백성이 될 당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바로 최초로 새 이스라엘이 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입니다. 아직 성령충만하기 이전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과 40일을 보내며 약속을 붙들고 기도에 힘썼던 이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웅성대고 두려워하기만 하는 오합지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분별에 따라서 한 명이 빠져 열 한 명이 되어버린 사도를 채워넣기로 했습니다. 왜 사도를 열 두 명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한가 하면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새 이스라엘이 될 열 두 지파의 족장이기 때문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120명인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120명은 12지파에서 10명씩 모여서 이루어진 새 이스라엘의 대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신 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이 새 이스라엘의 시작, 온 나라와 족속들로 부터 불러내실 참 이스라엘의 시작이 되게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드디어 결코 생길 수 없을 것 같은 새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될지 않을 것 같아도 그렇게 시작한 새 이스라엘을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은 모두 구원하시겠다는, 직접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열 둘을, 그리고 백 이십을 세우셨듯이 마지막 날에는 십 사만 사천을 온전히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포기하시는 것같고 실패되는 것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 12명이, 그리고 120명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2명을 꽉 채우시고, 120명을 채우셨듯이, 144,000명을 채우십니다.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그 나라를 완전하게 하시고, 또 구원을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맡기신 일이나 책임이 전혀 필요 없거나 쓸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12명, 그러니까 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대표자들이 채워지는 과정에서 베드로의 리더십이 있었고, 성도들의 동의가 있었으며, 또 두 사람의 자격을 갖춘 자가 있었음을 보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직을 맡을 사람에게는 자격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날까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격조건에 의해서 추려지고 남은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유스도라고도 불리는 요셉과 맛디아가 그들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조건으로 내세워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사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꼭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지금까지의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들에 대한 역사를 잘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여곡절을 모두 겪으면서도 여전히 거기 있다면 그는 그만큼 충실하고 신실한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되려면 변함없이 신실한 부활의 목격자여야만 했습니다.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뽑는 일은 회중 전체가 담당했습니다. 성도들은 먼저 기도했습니다. 섬김과 사도의 직무를 대신하기에 합당한 사람들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맛디아가 선택되었고 열 두 명의 사도의 수가 채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 이스라엘의 첫번째 열 두 지파가 완성되게 되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성령충만을 주실 준비가 갖추어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함,  성령세례라는 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내세울 수 있는 공로나 조건이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될까요? 물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약속하신 선물,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충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우리 편에서 꼭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는 분별해야 하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감당해야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올바른 자세이며 또 준비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믿음과 그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도만능주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자들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해야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데 필요한 능력과 분별력, 그리고 결정적인 일은 전혀 우리 손에 있지 않고, 또 열매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한 교회의 일원이 되고, 또 그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게 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어쩌다가 보니 우리는 광현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또 세월이 흐르고 교회에 오래 다녔으니 당연히 때가 되어 직분을 얻게 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120명의 성도를 모으신 것처럼 우리를 모으셔서 우리는 광현교회의 일원이 된 것이고, 또 그 안에서 우리의 직분과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물론 때로 교회들이 직분자들을 정치논리나 그 밖의 현실적인 이유로 함부로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에라도 그 일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막으셨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의도로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그 때부터 그 직분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애쓴다면 오히려 뽑기는 제대로 뽑아놓았는데 그 다음에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고 그 직분 때문에 오히려 가지지 말아야 할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라고 말입니다. 직분 뿐만이 아니라 교사로 섬기고 찬양대로 섬기는 일, 찬양을 인도하거나 싱어로 섬기는 일같은 교회에서 맡은 역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되는 것보다는 된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비록 우리가 처음부터 맛디아처럼 나에게 주신 자리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허락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 자리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리와 역할들이 우리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를 모으시고 또 우리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루어진 우리 교회는 언제 정말 교회다운 교회가 되고 또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진 그 곳에서 세워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할 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라도 그 자리에 맞는 맛디아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쓰며, 교회 전체가 맛디아를 세운 처음 교회처럼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민감하게 되어서 그 뜻을 분별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애쓰게 될 때, 그 때 우리 교회는 정말 교회다운 교회, 그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으로 준비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충만함을 달라고 약속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 우리 교회의 한 지체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위해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최선이야 말로 바로 성령충만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준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일은 기도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해 감당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되어 주님 주실 성령충만의 은혜를 가장 온전히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