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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5.07.새벽예배 -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요한일서7)

요일0212to17-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요일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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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일서 2장 12-15절


여러분은 혹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나의 신앙생활이 왜 이렇게 온전치 못하고 항상 다람쥐 채바퀴 돌 듯하는가하는 안타까운 질문을 가져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도 다 그런 경험이 있으실 줄 압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신앙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 견고해지지 못합니다. 뭔가 허전한 느낌도 들고 명확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생각할 때 이런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굉장히 간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이며, 또 무엇을 알고 있고, 또한 그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예전에 없던 능력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는 것이 나의 믿음의 내용이 되어질 때, 내 삶의 사실이 되어지고, 그 위에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 인생을 세워갈만큼 확고해 질 때 그 아는 것이 우리 삶의 능력이 될 수 있지만, 일단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망각하거나 혹은 아얘 모르고 있을 때, 우리의 믿음과 그 믿음 안에서의 삶은 방향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방향이 없고, 또 명확하지도 않은 그런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의 편지를 받은 교회가 그 당시 그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교회의 성도들은 요즘의 교회들과는 달리 처음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배우고 또 알고 있었고, 그 토대 위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또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고 그래서 그런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여러가지 면에서 신앙이 흔들리고 또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다시 그리로 돌아와서 그 위에 신앙이라는 집을 지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사도 요한이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는 그렇게 되라”고 하지 않고 “너희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 번 믿음 안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가 그 변화를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혹은 알고 있든 알지 못하든 이미 일어난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이 믿는 자들을 향해서 하는 설명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믿음으로 인해서 그 내용들이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아이들아’라는 말들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우리는 이것을 각각의 대상을 따로 부르는 말로 이해하기 보다는 요한이 교회 안의 모든 성도들을 부르기 위해서 사용한 말들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각각의 대상 뒤에 따라오는 내용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만 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호칭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성도들아’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요한은 먼저 성도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 덕분에 죄가 용서되었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께 어떤 은혜를 받았으며 또 어떤 은혜 덕분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리게 되고 또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무디어지게 됩니다. 


둘째로 요한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대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도가 누구인가를 결정할만큼 중요할까요? 죄 용서의 은혜가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의 기초라면 이것은 우리가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또 그 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데 곡 필요한 기초입니다. 대개 신앙이 정도를 벗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성도들이 하나님, 특히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 신앙의 가이드라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 기대할 수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그 반대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고, 모르는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세번째로 요한은 성도들은 이미 악한 자를 이긴 자들이라고, 그래서 강한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흉악한 자를 이긴 사람들이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이미 악한 자를 이겼습니다.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을 때입니다. 우리는 그 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의지로 사탄에게서 하나님에게로 갔습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사탄과 싸워 이긴 승리 중에서 가장 큰 승리입니다. 그것은 삶의 주인을 바꾼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미 작은 싸움에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 이기지는 못할지 몰라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탄의 음성이라는 것을 분별하게 해 주며,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에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줍니다. 이것이 요한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죄와 관련된 우리의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항상 죄에 지기만 해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사탄과 싸워 크게 승리한 적이 있으며, 우리가 그 승리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어마 어마한 무기를 넣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기를 사용해서 사탄의 유혹과 죄를 너끈히 이길 수 있습니다.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고, 또 싸움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이기게 해 줍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서 우리에게 생겨난 가장 큰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기초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라는 믿음의 기초, 은혜의 기초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을 알게된 사람들입니다. 그 분의 성품과 속성은 그 분이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알려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켜나가고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제대로 그리고 깊이있게 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사귐이 더 풍성하게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하며, 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미 가장 큰 죄,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나를 주인으로 섬기던 그 죄와 싸워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의 능력으로 언제든지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죄가 죄 용서의 은혜를 흐리게 하며,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라면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은혜를 받았으며, 그래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것을 붙드는 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공격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은혜와 진리 가운데 강건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