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5.21.새벽예배 -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한일서17)


요일0401to06-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17).pdf


20130521D (#1).mp3.zip




  문 : 요한일서 4장 1-6절


요한일서는 크게 이단의 문제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 그리고 죄를 가볍게 여기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이 세가지는 모두가 다 영생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느냐, 그리고 하나님께 속했느냐 아니면 악한 자에게 속했느냐를 결정할 정도로 아주 아주 중요한 것들입니다. 얼핏보면 이 세가지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가지는 실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써서 보낼 당시, 이 편지를 받는 교회 속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침투해 들어왔고, 그 당시 교회는 이 이단 때문에 굉장한 혼란에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쉽게 말씀드려서 어떤 영적이고 특별한 지식을 아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행동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또 하나의 아주 위험한 주장을 하나 했는데, 그것은 영과 육은 아얘 상관이 없으며 영은 선하지만 육신은 악하다는 주장이었는데, 나중에는 이런 주장이 아주 극단적으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그저 영적으로 아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몸으로 행하는 일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과 육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몸으로 짓는 죄는 영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그래서 죄를 지어도 영혼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래서 죄를 짓는 일은 영혼이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어차피 악한 육체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까요. 또한 육은 악하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께서 진짜 인간이 되셨을리가 없다고 하면서 그저 사람의 모양만 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과 3절에서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이러한 이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영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까지 구속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의 몸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몸을 가진 모든 것’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이단은 물질에 속하는 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물질인 몸과 영혼은 아얘 단절되어 있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뭐가 위험하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몸은 어차피 악한 것이니 포기하자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몸을 가지고 행하는 모든 일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저 자기 영혼에만 신경을 쓰면서 현실이나 자기의 몸으로 행동하는 것에는 가치도 관심도 두지 않게 됩니다. 죄를 짓는 일 뿐만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은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앙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지주의는 그 당시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비슷한 모습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릴테니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혼구원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똑같은 의미를 가진 구령이라는 말도 많이 쓰구요. 그렇다면 과연 이 영혼구원이란 정확하게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또 한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의 영혼만 구원을 얻게 되나요? 아니면 우리의 몸도 구원을 얻게 되나요? 그리고 온 우주가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게 되는 하늘나라가 오면, 우리는 그 나라에 영혼으로 만 거하게 되나요? 아니면 몸을 가지고 그 나라에 거하게 될까요? 또한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한 일로 칭찬과 꾸중을 듣게 되나요? 아니면 몸으로 한 일로 칭찬과 꾸중을 얻게 되나요? 


그 날, 그 나라가 임하면 우리는 영혼 뿐만 아니라 몸도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로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몸은 지금과는 다른 몸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몸이 이 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입니다. 또 하나님의 칭찬과 꾸중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행한 일들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혼구원’이라는 말은 사실 굉장히 이상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만 받는 구원은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영혼과 육체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을 때 사람이지 두 가지 분리되어 있다면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구원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인간 전체를 뜻합니다. 한 부분도 제외됨이 없이 구속되는 것을 뜻합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영혼도 내 성품이나 기질까지도 모두 다 구속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몸을 가지신 진짜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진실로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이 몸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사용해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만약 몸이 중요하지 않고 또 그 몸으로 하는 일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몸은 결국 없어질 것이고 우리가 몸으로 하는 일들이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의 영혼의 구주이실 뿐 아니라 몸의 구주이시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말은 그 몸으로 하는 모든 일들까지도 새롭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에 있어서 영혼만 강조하고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몸의 구주시라는 것을 무시하는 반쪽짜리 신앙이 되게 합니다. 형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신앙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도 죄를 가볍게 여기고 사랑하지 않는 것을 전혀 심각하지 않게 여기는 신앙의 모습은 존재합니다. 몸으로 행하는 행동들은 중요하지 않고 마음으로 믿는 믿음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주장들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했던 그런 모양의 신앙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세상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시대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는 똑같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몸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주장,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주장, 그리고 영혼만 중요하고 영혼이 구속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주장은 귀를 기울여야 할 주장이 아니라 반드시 걸러내야 하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우리 안에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내 속에 이런 반쪽 짜리 복음, 그래서 복음일 수 없는 가짜 복음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살펴보시고 처리하시는 시간을 꼭 한 번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오셨던 것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그리고 그 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들도 구속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하시고 죄를 이기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온전히 구속된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