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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5.24.새벽예배 -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한일서 20)

요일0417to21-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2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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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일서 4장 17-21절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반복해서 이야기해 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서로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랑을 통해서라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은 사랑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그 이야기를 어쩌면 모든 믿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 그러면서도 가장 불확실해 하는 문제에 까지 넓혀가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의 문제를 이 땅에서 가질 수 있는 믿음의 확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심판날에 대한 확신의 문제와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를 사랑하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구체화되고 온전해 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관계 안에서만 온전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의 관계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그 사랑이 구체화되고 온전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확실하고 명확해지기 시작하며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 지면 우리는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사랑하면 우리가 심판날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요? 17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해 줍니다.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 주님을 흉내내며 우리 주님처럼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커다란 영광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날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려고 애쓸 때, 그 사랑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아주 놀라운 일을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우리가 그 날을 두려워하고 그 날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는 것은 그 날에 있을지도 모를 꾸중과 형벌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 형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상급의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성도들이 너무 마지막 심판날을 생각하지도 않고 또 두려워하지도 않고 살기 때문에 문제이지만, 만약 우리가 곰곰히 생각해 볼 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면 그것은 아직 우리 안에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날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두려움의 크기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의 크기와 반비례 한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두려움이 많다면 서로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일에 더 많이 헌신하면 됩니다.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결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분히 우리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말씀입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정면으로 배치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표현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인데,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직접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고, 그저 사람을 사랑하는 일, 특히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 확신을 통해서 마지막 날 심판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고 기쁘게 마지막 날을 소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절대로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사랑의 근원에서 사랑을 퍼 올려야 합니다. 그 사랑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9절은 이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한다고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건 모르건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먼저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려고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도 요한은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장은 부족하고 너무 작은 사랑으로 사랑할지라도 우리가 계속해서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도 점점 더 온전해져 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며 그 순종이 가져다 주는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는 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일에 무관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해 줍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가져가 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항상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다함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신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풍성한 유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