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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11.새벽예배 -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창세기16)


창0314to21-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창16).pdf


20130711 (#01).mp3.zip




  문 : 창세기 3장 14-21절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 때로는 악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렇게 얻은 좋은 것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콩 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씨앗을 뿌리고 얻은 열매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열매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악한 결과를 남기게 됩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 이것은 자연법칙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움직여 가시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직하고 공평하신 분이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정직과 공평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사건에 관련된 모든 피조물들을 벌주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내용들을 하나 하나 살피기 전에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죄가 우리자신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가져오는 결과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항상 똑같은 결과를 이 세상에 가져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왜 사람들이 가진 것과 누리는 것, 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점점 더 살기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늘어나면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로 그 죄에 합당한 징벌을 내리실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자비로 오래참고 또 용서해 주시기도 하시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징벌을 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과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들만이라도 꼭 기억하고 또 지켜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결코 악한 씨앗에서는 선한 열매가 맺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변함없는 원리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선한 것들을 선택하며 또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씨앗이 되어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열매들로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벌을 내리신 것은 바로 뱀입니다. 뱀은 하와를 범죄하도록 유혹했기 때문에 배로 기어다니게 되며, 흙을 먹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뱀은 결국 자신이 범죄하게 한 여인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혀 영원히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기서 뱀은 사탄을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양과 용과의 전쟁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승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여인을 유혹해서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반대로 그 여인의 후손에 의해서 완전하고 영원하게 끝장나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기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뱀의 간교함은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들이 되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지혜롭다고 하시는 방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두번째 선고는 하와에게 내려집니다. 첫번째 벌은 해산하는 고통이 크게 더해지는 것입니다. 거의 죽음에 다다르는 수고를 하고서야 사랑하는 자녀를 얻을 수 있는, 그런 고통을 형벌로 받게 됩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해산은 처음부터 고통스런 것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또 다른 하나님의 형상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그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일과 그 극심한 해산을 고통을 짝지어 놓으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내리신 벌이었습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을 가장 큰 고통으로 바꾸어 놓으심으로써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기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인에게 내려진 두 번째 벌은 여인은 남편을 사모하게 되고, 남편은 여인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을 때는 완전한 동반자였지만 어쨋든 하와가 아담을 유혹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게 함으로써 그 동반자의 자리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건 여자는 남편에게 종속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미 구속받은 자들이니 역할은 다를 수 있어도 원래의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회복해 가야 합니다. 


세번째 형벌은 아담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담은 원래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을 다스려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담에게 주어진 형벌은 그가 다스려야할 땅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과 자연,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과 자연은 하나의 기계를 이루고 있는 부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은 사람에게 속해있는 상태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에 속해있고, 그래서 사람이 망가지면 함께 망가져 버리는 유기적인 관계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아담이 벌을 받을 때, 땅은 저절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주를 받은 땅은 다시 아담에게 고통을 안겨 줍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서 아담의 다스림에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의 고통은 배가 됩니다. 땀이 흘러야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을 적대하는 땅에서 수고를 해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땅은 삶의 터전과 기초를 말합니다. 요즘으로 표현하면 직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세상에 들어온 죄 때문에,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며 삶의 필요를 얻는 우리 삶의 터전, 우리의 현실이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을 향해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가 지금도 똑같은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죄는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땅을 망가뜨리고 있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더 거칠고 억센 가시와 엉겅퀴를 사람들을 향해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망가지는 자연환경이나 혹은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직장과 사회가 되는 것. 이런 것들이 다 그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땅은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의 터전은 항상 크고 작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땅을 치유하고 삶의 터전을 가꾸는 방법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가서 그 위에서 살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담이 그것을 버려서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그리로 다시 돌아가야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삶의 자리, 우리가 서 있는 땅에 있는 가시와 엉겅퀴는 작아지고 또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형벌은 아담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형벌이었습니다. 그것은 원래 인간이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인간이 그렇게 귀하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인간에게 불어넣어진 하나님의 숨결이신 성령님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는 사람에게서 성령님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흙 밖에 없습니다. 가치없고 허무하기 그지 없는 이리 저리 날리는 흙먼지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흙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을 가치있고 귀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다시 온전하게 회복되려면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돌아오시고 또 우리 안을 꽉 채워주셔야 합니다. 그저 예수 믿는다고 자동적으로 성령충만해 지는 것도 아니고, 충만한 삶을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성령충만함을 사모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성령님을 떠나가게 했기 때문에 사실 성령충만함을 얻고 또 유지하려면 다시 순종으로 돌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쓸 때, 성령님은 비로소 다시 충만하게 거하실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이 있는 이 땅에서도 충만하고 가치있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흙이나 티끌이 아니라 다시 생령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져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죄로 인한 형벌과 저주가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날, 온 세상의 구속이 완성되기 전까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삶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온 세상의 가시와 엉겅퀴, 고통과 수고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는 예전의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그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해 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다시 순종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충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주변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가시와 엉겅퀴가 사라지게 될 것이며, 깨어지고 뒤틀어진 관계들 또한 천천히 회복되게 될 것입니다. 


날마나 아담과 하와가 떠났던 순종의 자리로 더 온전히 되돌아 가셔서 아담이 잃어버렸던 복된 삶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