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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23.새벽예배 -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창세기 22)



창0416to17 -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창22).pdf


20130723D (#01).mp3.zip




  문 : 창세기 4장 16-17절



가인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에덴 동산에서 더 멀리 쫓겨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났는데, 가인은 거기서 동쪽으로 더 멀리 갔습니다. 그렇게 가인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하나님으로 부터 더 멀어진 가인과 가인의 가족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한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가인과 가인의 가족의 역사는 그리 밝은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떠난 가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렇게 아들을 낳자 거기에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성이라고 지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을 향해 저지른 또다른 잘못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가인에게 유리방황하는 벌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동생의 피로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그 땅에 머물며 살아갈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벌이 너무 심하다고 불평하더니 이제는 그 벌마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로 가려고 했던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도 무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인이 쌓았다면 그 성은 누구의 성입니까? 바로 가인의 성입니다. 그러면 그 성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 성은 그가 왕노릇할 수 있는 자기만의 세상이 되고, 또 자기 힘으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벌을 내리셨지만, 그에게 표를 주셔서 그가 보호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지만, 그는 그 은혜를 믿고 그 안에서 보호받는 대신에 자기가 왕노릇 할 수 있는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죄 지은 인간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쪽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주변에 자기가 왕이 되고, 또 하나님 없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성을 쌓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또 하나의 더 심각한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가인을 닮은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도 계속 자신만의 성을 쌓으려고 하고 그 성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스스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필요한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인 동시에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생활인이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필요로 해서 얻고 또 마련하는 것들이 우리를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쌓는 우리의 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든든하고 하나님 때문에 안전한 대신에, 내가 가진 것들, 내가 내 옆에 쌓아올린 것들 때문에 든든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며, 하나님 보다는 자꾸 거기 기대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성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가인이 쌓아올린 에녹성이 되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통해 이런 저런 복을 받고 그 복 안에서 안전하고 든든하며 또 넉넉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 자체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그렇게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쌓아올리려고 하는 성에서 벽돌을 하나 하나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의 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산성되어주심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완전한 산성이 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그 일의 행복과 만족, 그리고 반석같은 든든함을 깨닫고 그 안에 거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라고 말입니다. 집이 우리를 지키고 우리가 쌓아올린 성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호하시는 것은 그 집과 성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집이나 성이 아니라 바로 그 집과 성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가인처럼 우리의 성을 쌓아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재산이나 힘을 늘리고 교회를 크게 짓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욕심을 동기로 삼고 적법한 방법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쌓아올려야 할 자신의 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서 집과 성을 보호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가인은 그 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성이라고 지었습니다. 에녹은 시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인의 첫 아들 에녹은 가인의 시작이었습니다. 첫 아들과 잘 어울리는 이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아들이 자기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을 표현한 가인의 선언이었습니다. 사실 가인이 정상적이라면 성을 짓고 그 성을 하나님께 봉헌하며 기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을 떠난 가인에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들고 아담이라고 이름지어주셨듯이 아들을 낳고서 그 아이에게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아들의 이름을 자기 성의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자기가 지은 자기 세상을 자기 자녀에게 물려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이전과는 달리 안전도 또 생명도 온전히 보호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착하게 되는 것이 바로 자기의 성이며 또 자녀입니다. 자기가 지은 성 안에 안전히 거하면서 자기 자녀를 통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기 생명을 이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그것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굉장히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서 과도하게 집착하며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내가 그것을 많이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내가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도 또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가인이 저질렀던 것과 똑같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이런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을 더 의지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우리가 붙들고 있는 그 것으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려고 다른 이들을 섬기며 또 나누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을 자꾸 늘려가야 합니다. 


나의 성이 무엇이든 진정으로 그 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그 성이 아니라 그 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 성은 그 성이 아무리 든든하다고 해도 아무도 지키는 이 없는 무방비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산성으로 삼고 살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불안과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비결을 배우셔서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며 영원히 든든하며 영원히 보호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