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0831to39 - 가장 큰 성탄선물(2013년 성탄절).pdf
설교본문 : 로마서 8장 31-39절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신데 좋은 선물, 받고 싶은 선물 많이 받으셨습니까? 아마 선물을 받으신 분도 계실 것이고 또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선물 하나를 드리려고 합니다. 정말 잘만 사용하시면 세상에 더 없는 선물이 될 수도 있고요. 또 평생을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땅속에 묻힌 보물처럼 아무런 가치 없는 선물이 될 수도 있고요. 그 선물은 바로 오늘 본문의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저에게는 성경의 그 어떤 구절보다도 이 구절이 가장 은혜롭고 능력있고 또 확실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구절들 중의 하나입니다. 항상 마음을 풍성하게 해 주는 말씀이고, 믿음이 흔들리려고 할 때마다 그 흔들림을 잠재워주는 말씀이며, 근심과 걱정을 넘어선 담대함을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생각할 때마다 이런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성탄절 선물로 드리는 이유는 제가 누리고 있는 이 말씀의 유익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예수님 처럼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예수님 같은 선물은 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자기와 같은 아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면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좋은 선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 비할 데 없는 선물을 받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선물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졌고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생의 약속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선물 중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선물이 있습니까? 이런 유익을 영원히 누리며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나요? 없습니다.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온 세상을 선물로 받은 들, 그것은 우리를 죄 없게 하지 못하며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하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으며 조금 더 편하게 살게 해 줄 뿐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예수님이라는 가장 좋은 선물이기에 충분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이라는 선물은 이런 영적인 유익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만큼 현실적으로도 유용하고 또 힘이 되는 선물이 없습니다. 물론 이 선물상자를 열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고 제대로 사용하려면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믿음이라는 열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이 담긴 상자를 여는 하나 밖에 없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잊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선물이 주는 어마 어마한 유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탄절에 우리에게 주신 이 선물은 얼마나 유용하고 또 능력있는 선물일까요? 이제 상자 속에 담겨져 있는 선물의 진짜 모습과 그 사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생각할 때, 과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말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또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3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중심이 되는 구절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은 우리를 향한 던지시는 하나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를 나무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질문이죠.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이신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 주셨습니다. 그냥 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려고 내 주셨습니다. 그것도 아까워하면서 억지로 내 주신 것이 아니라 아낌 없이 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주기 싫으셔서 아까워하시는 것이 남아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백지수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지수표를 받은 사람이 그 사람에게 만원짜리 한 장만 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아까워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여전히 주기 싫어서 아까워하시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런 사람보다 훨씬 더 이상한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수님은 백지수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셨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든 그것이 하나님께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보다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이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디일까요? ‘그 아들과 함께’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실 때, 이미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 놓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고 또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의짐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선물로 받으실 때, 모든 것도 함께 받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따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았다면 모든 것도 함께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내 손에는 아무 것도 없느냐고 물으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이런 이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창고 하나를 덤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열쇠는 여전히 하나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 창고의 관리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왜냐하면 애석하게도 우리는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창고 안의 모든 것이 우리들의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또 하나님은 우리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꺼내 주십니다. 그게 뭐가 대단한 것이냐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믿는 사람들게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절대로 듣지 않으십니다. 아들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받아야 하는 다른 모든 것들도 우리의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듣고 응답하십니다. 그 창고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꺼내서 우리 손에 쥐어 주십니다. 이것이 아들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예수를 믿어도 참된 넉넉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예수님과 더불어 모든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또 알더라도 진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강할 수록 그 확신을 통해 주시는 은혜도 풍성하고 또 그만큼 근심과 걱정,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한 번 저를 따라서 고백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 예수님과 함께 / 모든 것을 / 나에게 주셨습니다 / 나는 이제 이것을 /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 내가 이것을 믿고 살겠습니다 / 이 믿음으로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겠습니다” 정말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이 넉넉함과 든든함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일 수 밖에 없는 두번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철저히 우리 편이신지를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십니까? 위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까? 다른 편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십니다. 철저히 우리 편을 드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까지 내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그 하나님이 갑자기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 일을 그만 두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의 편입니다. 아들을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들의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를 편들어 주십니다. 믿습니까? 네. 얼마나 은혜로운지 일인지 모릅니다. 그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 완전히 우리 편이라니 얼마나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당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편드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어릴 때 보면 같은 나이인데도 특별히 운동을 잘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만 우리 편이 되면 게임은 해 보나 마나입니다. 축구든, 농구든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 게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는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변수는 있습니다. 우리들이 변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니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편들어 드리면서 함께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하며, 순종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우리 삶을 무너뜨리려고 우리를 공격하는 많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직하게 행하는 한 하나님은 변함없는 내 편이시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거나 혹은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 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편을 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때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나의 편이시기 때문에 이 싸움은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서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면 그 싸움은 분명히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상황이나 나의 형편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나를 편들어 주시는, 영원히 나의 편이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실을 붙들고 있는 한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고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편입니다. 지금도 내 편을 들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위대한 선물인 세번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또 모든 심판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완전함 때문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실망하는 동시에 커다란 죄책감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내가 하나님께 거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을 이기지 못해서 교회를 떠나고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양심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그 틈을 타서 사탄이 우리를 고발하고 정죄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입니다. 그 때 우리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러고도 네가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니?’ ‘이런 데도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실까?’라는 목소리들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내 양심이나 혹은 사탄이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이지 하나님의 목소리는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33절과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십니다. 최고의 고등법원인 하늘법정에서 절대로 오판이 없으신 최고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무죄선언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상고가 없습니다. 아무리 상고가 올라와도 기각입니다. 그 어떤 검사도 우리를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죄 값은 이미 예수님께서 다 치루셨고 그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에 처하게할 아무런 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가장 유능한 실패가 없는 변호사이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계속해서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멸망받을 죄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무죄선언은 절대로 바뀔 수가 없습니다. 그 무죄선언은 흔들리지 않으며 또 영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죄성을 가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그 죄가 죄인 줄도 알아야 하구요. 그렇지만 그것이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이나 죄책감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불순종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지만 그래도 짓게 되는 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고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정결해 집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우리 발을 씻어주시니까요. 이 모든 복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죄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죄가 많고 실패가 많을수록 더욱 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더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죄책감을 이기시고 죄와 싸워 이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이 특권과 복을 절대로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도 위대한 말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정말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작은 어려움과 고통이 아닙니다.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들 중에서 간단하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그런 상황을 ‘우리가 중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느니라”라는 시편 말씀을 인용해서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아니라 전부가 다 자신이 삶이라는 현실 속에서 경험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극심하고 또 계속되어지는 어려움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신을 떨어져 나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러한 혹독한 삶의 현실과 경험들이 그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환란이라고 말합니다. 극심한 피곤함과 박해, 굶주림, 외로움, 위협, 칼이라고 말합니다. 죽음, 생명을 걸어야 할 상황, 천사들이나 악한 영들, 지금 경험하는 힘들게 하는 현실이나 근심하게 만드는 미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 같은 하나님의 그 어떤 피조물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사랑에서 자신을 끊어지게 할 수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자신은 이런 모든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시험을 다 당했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오히려 그런 것들 덕분에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 해 주실 때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찾아오고 그 어려움이 계속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약해지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도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오히려 더 깊고 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이런 확신을 얻고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 비결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그가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자신을 향한 사랑의 증거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편들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변하지 않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실 때, 자신이 살고 하나님을 섬기며 또 모든 시험과 유혹에서 넉넉하게 승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담아서 자신에게 주셨음을 알았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얻고 누리며 살아갔습니다. 바로 그 능력으로 그는 거기까지 승리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그 귀한 선물을 정말 이유 없고 값 없이 받았습니다. 이 선물이 놀라운 것은 그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주셨다는 것은 나머지 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까워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함께 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를 완전히 넘어뜨리고 실패하게 할 대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니까요. 그 누구도 우리를 효과적으로 고발하거나 유죄판결을 받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치르셨으니까요. 그 무엇도 어떤 어려움, 어떤 핍박, 미래에 대한 어떤 근심이나 걱정, 고통이나 두려움, 과거의 어떤 실패나 상처도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넉넉히 이기게 하고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을 아는 것, 이것을 믿는 것, 그리고 이것을 힘입어 살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짜 복이며 선물입니다.
제가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예배 순서지를 보시면 무엇인가가 종이에 싸여서 붙어 있을 것입니다. 안내받을 때까지 절대로 뜯지 말라는 메세지와 더불어 말입니다. 이제 그것을 뜯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성탄카드이기도 하고 또 선물이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카드로 되어 있죠? 뒷면에는 양면 테이프가 붙어 있고요. 그 카드를 여러분이 가장 자주 들춰보시는 책이나 혹은 지갑 안쪽에 단단히 붙여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시고 열 때마다 항상 한 번씩 읽어보시고 잠깐이라도 진짜로 이 약속을 믿는 믿음을 달라고 마음을 다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진짜로 믿어질 때까지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 예수님을 그렇게 믿는 믿음도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항상 이 능력있는 예수, 이 풍성한 예수, 이 사랑이신 예수, 성탄절 최고의 선물을 붙들고 다가 오는 한 해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