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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절기

2015.11.15. 주일오전 - 잃어버린 감사찾기(2015년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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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전도서 9장 7-10절





요즘은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추수감사주일이라는 말 보다는 추수감사절이라는 말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추수감사절이라는 말이 오늘이 특별한 절기라는 것을 더 잘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인데요. 하나님께서 교회에 절기를 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각각의 절기가 가리키는 은혜로운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절기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고 또 목적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매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절기를 주셔서 우리에게 그 절기들을 지키게 하시고 그러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절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을 위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자칫 밋밋해 질 수 있는 우리 신앙에 여러가지 색깔을 입혀서 더 아름답고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선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를 거의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과 신앙의 여러가지 열매들을 다시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지만 그 열매란 실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 삶에 끊임 없이 부어주신 은혜 덕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는 그 열매들보다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더 많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가 중심이 되는 절기이기 때문에 저도 한 해를 되돌아 보면서 ‘감사’라는 단어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저에게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참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왜 그렇게 감사가 부족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는데요. 그런 질문을 가지고 읽어서인지 며칠 전 성경읽기 본문이었던 잠언 말씀 속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없이 읽으면 아무 말이 없지만, 질문을 가지고서 읽으면 성경은 반드시 답을 이야기해 주는데, 특히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려 줄 때가 많습니다. 잠언말씀이 제게 들려준 대답은 뒤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먼저 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하게 되는가 하는 조금은 일반적인 이유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예전에 저는 정말 감사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감사를 가르치면서도 거의 감사하지 않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참 위선자였지요. 그런데, 저에게 그렇게 감사가 부족했던 것은 제 마음 속에 ‘특별하게 감사할 꺼리가 없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원 받은 것,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나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특권을 허락하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별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보니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감사가 참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이런 저런 이유로 감사를 말하는 저의 모습이 스스로에게도 어색할 때가 있을 정도로, 예전같으면 감사를 생각하지도 못했을 일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 덕분입니다. 예전에 저는 기도를 할 때, 그다지 세심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하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광현교회를 섬기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하나 하나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서 계속 기도할 수 밖에 없었고, 여러분을 돌보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저 자신 때문에도 정말 치열하게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교회의 이런 저런 절실한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도를 전부 다 들으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많은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기도를 하면서도 ‘과연 이런 것까지 들어 주실까?’라고 생각했던 그런 기도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제 마음과 생각을 지켜 달라는 기도는 거의 100퍼센트 들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도 많아지고 또 구체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요. 그 이전에는 저의 삶을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시며 또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일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흔들리는 저의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두시고 혼란스러운 저의 생각을 나몰라라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은 그 이전에도 계속해서 제 삶을 섭리하시며 제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완벽한 공급자이셨고, 저의 모든 것을 지켜 주셨던 완전한 보호자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그 이전에는 이런 은혜를 덧입고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 대해서 그렇게 감사가 인색했을까요? 그 이유는 제가 구체적이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식능력이라는 것은 참 많이 부족합니다. 똑같은 걸 가지게 되어도 간절히 가지고 싶어했을 때는 그것에 대해서 큰 기쁨을 느끼고 귀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별로 감흥이 없고 그것이 좋은 줄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똑같이 어려운 문제가 터졌는데요. 한 번은 그저 내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끙끙거리다가 해결되었고, 또 한 번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에 해결되면 두 경우에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앞의 경우에는 대개가 잘 됐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해도 그 감사가 그렇게 깊고 생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쪽의 경우에는 깊은 감사, 풍성한 감사, 정말 감사다운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앞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니 감사를 드릴래야 감사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드리는 감사도 형식적이 되고 말이지요. 


물론 감사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신뢰하고 의뢰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에게 우리가 흘려보내기 쉬운 감사의 기회들을 다시 되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삶에 감사가 많아지게 하고 풍성해지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가 다시 살아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지켜보고 계시며, 나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 많이 기도하게 될 것이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고, 그만큼 하나님을 향한 신앙 또한 생생해지고 분명해지며 구체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첫번째 이유, 그것은 우리 삶에 진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기도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우리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우리 신앙을 더 확실하고 생생해 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진지하고 간절하게 아뢰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삶에 감사가 되살아 날 때, 그 감사는 분명히 여러분의 영혼을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감사할 꺼리가 없다’고 느끼는 첫번째 이유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데 있다면, 두번째 이유는  실제로 우리 삶에 감사를 드려야 할 만한 일들이 그렇게 드물게 일어나거나 혹은 우리 삶이 감사할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만 정말 감사하면서 살기가 너무 힘들겠지요. 분명히 그래서 감사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제 삶에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이게 사실일까요? 내 감정은, 내 느낌은 나에게 그렇다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삶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없을만큼 불행하고 힘든 일들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 본문은 전도서의 일부분입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그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너무 부조리하고 예측할 수 없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헛될 뿐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해 보려고 발버둥치며 사는 것 또한 헛되다고 말합니다. 마치 염세주의자나 허무주의자의 연설처럼 들리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도자는 문득 문득 몇 차례에 걸쳐서 “그래도 내가 살펴보니 그나마 허무하지 않은 것은 지금의 삶을 누리는 일이다. 열심히 일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가족과 즐거워 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최고다. 그거야 말로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가장 확실한 선물이니 가서 그런 것들을 누리며 즐기며 살아라. 적당히 하나님을 믿으면서 말이다. 케이 세라 세라.”하고 말합니다. 이거야 말로 정말 가볍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줄 복음 중의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옛날에는 전도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큰 오해였지요. 


전도서는 인생과 이 세상의 본질을 묘사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의 눈에 비쳐지는 대로의 이 세상과 인생의 겉모습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런 모든 모습을 ‘헛되다’는 말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저 눈에 보여지는 대로의 이 세상, 그저 경험되는 그대로의 우리 인생은 사실 헛되기가 그지 없습니다. 선한 기대는 너무 쉽게 좌절되고 오랫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탑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내가 씨앗을 뿌렸는데 다른 이들이 열매를 거두어 가고, 선한 사람들은 힘들게 사는 데 악한 사람들은 떵떵 거리고 살고 있고, 그 속에서 그래도 바르게 살아보려고 끙끙대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이 나만 손해인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마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삶과 이 세상의 지배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헛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헛됨에 빠져서 절망하고 좌절하며 혼란스러운 삶을 사는 일을 벗어나게 해 줄 묘약은 없을까요? 묘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아 보이고, 그래서 모든 것이 헛되게만 보이는 그런 삶과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시며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고 그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증거들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현재 내 손에 주어져 있는 선하고 즐거운 것, 소소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입니다. 맛있는 음식, 포도주, 가족 간의 사랑, 또 열심히 일한 댓가로 내 손에 쥐어지는 나의 소득…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선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런 것들을 누리고 기뻐하면서 살아가면 비록 헛되게만 보이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는 그 헛됨과 혼란스러움에 함몰되는 일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 헛됨에 가려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진짜로 우리 삶 속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만한 일들이 전혀 없거나 혹은 턱없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런 일들에 너무 심하게 함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맘대로 안되는 일들, 부족한 것들, 주어지지 않은 것들, 그리고 우리가 불행한 일이라고 부르는 일들에만 너무 집착하고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다가 인생이 참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심하게 현재의 자기 삶의 조건에만 집착하며,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없는 것, 모자란 것, 힘드는 것,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 말이지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 밖에 없는데, 그 현재라는 귀한 시간을 이런 식으로 아닌 것, 없는 것들에만 허비하고 있고 그러느라고 정작 지금 나에게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니 누리거나 기뻐하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는 것은 우리가 현재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는 항상 완전하지 못합니다. 현재에 속해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습니다. 나라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구요. 직장이 그렇구요, 내 보직이 그렇습니다. 내 수입이 그렇고, 우리가 사는 집이 그렇습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그렇습니다. 아내도 그렇구요. 남편은 더 그렇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식이 그러니 며느리나 사위가 마음에 완전히 흡족할리는 더더욱 없습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불완전함 속에도 여전히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는 있습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도 여전히 주님 주시는 즐거움과 행복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해 줄 하나님의 선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불완전한 것은 그냥 불완전한 채로 주님께 맡기시고 이미 여러분의 삶 속에 주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 소소한 것이지만 여러분의 삶을 은혜로 채워주고 있는 것들을 찾아서 그것들을 즐거워 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얼마나 복되고 은혜로운 삶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가 살아난 삶은 감사가 죽어있는 삶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입니다. 


꼭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감사가 살고 그래야 은혜와 믿음이 삽니다. 없는 것, 부족한 것, 불완전한 것 때문에 현재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그냥 흘려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감사가 살고 여러분의 인생이 살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 감사의 절기에 잃어버린 감사를 꼭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을 찾고 하나님을 되찾으며, 하나님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