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또 방해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내려지는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그런데, 성도인 우리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실제로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 하는 것은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면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에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는 강도나 크기도 다르고 그 능력도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성도들 중에는 이 당연한 것을 잘 모르는 분들이 참 많고,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이것이 성도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믿음이 너무 부족하고 영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생각할 때 잊지 말고 떠올려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은혜가 비록 너그럽고 풍성하신 분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 쪽에서 적용해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함을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만큼 강력하고 풍성하게 임하게 되고 또 경험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의 첫번째 성인 여리고 성을 정복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단한 기적과 영광의 기록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셨고 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든 은혜와 능력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읽을 때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물론 전쟁은 하나님께서 다 하셨고,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도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키신 준비가 있었고 또 요구하신 행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세대교체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새로운 세대들은 전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었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누군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사람을 할례자와 무할례자로 나눌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할례였습니다. 그러니 이유야 애쨋든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표지를 지니지 않았다는 뜻이 되고,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분명하게 해야 했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 영적인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그 관계 안에 머무는 것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를 알고 거기 맞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구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일에 대해서 기뻐하며 감사하지만 그 선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선택되고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우리의 우리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고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놓치고서 살게 되면 우리는 오늘날의 할례 없는 백성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할례받은 백성들입니다. 그 할례란 마음의 할례이며,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혼의 할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정적으로 영적으로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겉모습이 같다고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언약백성 답게,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형식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내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사는 실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사기가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할례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 정복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대사령관을 보내셔서 여호수아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진짜 지도자는 하나님이시지 여호수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맡게 되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누가 그랬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리더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결정해야 하며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짜 리더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진짜 리더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듣기 좋고 위로가 되며 힘이 되는 ‘아, 그렇구나’하기면 하면 효력을 발휘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의 왕이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을 움직여 갈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일의 진짜 유익과 능력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예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또 하나님의 생생한 은혜 안에 늘 머물려면 그래서 언제나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고, 늘 하나님의 온전하신 다스리심 가운데 살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삶을 살 때 얻을 수 있는 은혜와 복은 그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것이니까요.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민감하시고 그 은혜 가운데 머물기 위해서 스스로를 구별하며 하나님 앞에 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항상 하나님의 백성됨을 지켜 가시고 하나님의 백성되는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