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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5.30 금요기도회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사도행전 63)



행1044to48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사도행전6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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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0장 44-48절





처음 사도행전을 시작할 때, 학자들은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른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령행전이라는 이름은 사도행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과 함께 시작되고, 그 약속이 성취되면서 부터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사람들이 한 역할이 정말 중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주도권은 항상 성령님께서 쥐고 계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변화시키시고 양육하셨으며 거기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사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맨 앞에 1장 8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을 놓고 그것이 성령님으로 인해 어떻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한 약속을 주신 후 그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순절날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 성령님께서 강하게 임하셨고 제자들은 생전 배우지도 않은 외국어를 사용해서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온 순례객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낮부터 좋지 않은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요엘선지자의 말씀을 사용해서 지금 그들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 옛날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이루어 지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설명을 통해 말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일이라는 것, 그것은 말세에 일어나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는 것은 곧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셨을 때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고, 그 뒤에 복음을 듣고서 똑같은 은혜를 경험을 한 사람들은 유대인들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충만까지 경험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대교의 틀에서 이방인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이방인들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 가게 하려면 하나님께서는 이 벽을 허무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바에 가 있는 베드로를 가이사랴의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보내서 스스로 그 벽을 허물 수 밖에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누구도 헐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헐 수도 없었던 그 벽이 허물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모난 그릇 속에 담긴 부정한 음식을 보여주며 그것을 집어 먹으라고 말씀하셨던 환상을 통해서, 그리고 그 때 타이밍을 딱 맞춰서 찾아온 고넬료 집 사람들의 방문을 통해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향해 쌓아올려 놓았던 성벽 분의 빗장을 빼 놓으셨습니다. 고넬료를 만난 베드로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없이 받아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지난 주 금요일까지 살펴본 것과 같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마지막으로 복음의 핵심을 전합니다. 43절 뒤쪽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성령님께서 거기 모여서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고넬료와 고넬료 집안 모든 식구들 위에 빠짐 없이충만하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들이 성령충만을 덧입었다는 증거는 그들의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그리고 베드로와 동행했던 욥바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더 이상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진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여 고넬료의 집에서 며칠을 더 머물며 서로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섯 절로 된 하나의 짧은 단락에 불과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성령충만에 대한 진리는 너무도 풍성하고 유익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성령충만을 소망하고 또 성령충만함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본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꼭 성령충만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제대로 성령충만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성령충만함에 대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첫번째 증언은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그리고 고넬료 집안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부어지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기 전도 아니고, 복음을 전하고 난 후 며칠 있다가도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들었을 때, 그 자리에 임하셨고 그렇게 그들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바로 붙드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성도들 속에 성령충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너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성령님을 부르는 여러가지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이름과 또한 진리의 영이라는 이름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생각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절대로 예수님과 상관없이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 없이 임하시지 않습니다. 그 날 거기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그들이 성령충만함을 덧입게 된 것은 복음,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 선포 되었고, 사람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참된 성도들은 성령충만함을 사모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차별없이 성령충만함을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도 왜 성도들 중에는 성령충만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조국의 교회에 대해서 걱정하고 아파하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그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성도들은 참된 진리, 진짜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답게 가르치려고 애쓰는 목회자들은 다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조국 교회의 성도들 중 더 많은 수가 이미 성경이 진짜로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진리라고 말하며, 무엇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라고 말하는지, 무엇을 진짜 믿음이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과연 이런 성도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저 위로 받고 기뻐하고 치유 받는 일입니다. 복 받으라는 메세지 입니다. 자신을 웃겨주고 울려 주며 시원하게 해 주고 다 잘 될 거라고만 말해주는 설교, 그러면서도 잘못과 죄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 하지 않는 설교,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건드리지 않는 설교입니다. 오늘 조국 교회의 성도들 중 많은 분들은 그저 한 번 웃고 위로 받으면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설교를 통해서 무엇이 하나님의 진짜 은혜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인지, 무엇이 복음인지를 듣고 배우지 않아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설교를 하면 불편해 하고 귀찮아 하며 관심 없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바로 성령충만함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 속에는 하나님께서 온전히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연약하고 불완전한 피조물 안에 하나님의 영이 가득 담기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히 계시는 거처가 된다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복이 없는 인생은 그야 말로 껍데기 뿐인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란 원래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안에 성령님께서 충만히 거하시지 않으면 다시 흙인 인생, 티끌인 인생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절대로 말씀과 상관없이 복음과 상관없이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진짜로, 그리고 제대로 이 복을 누리려면, 누리면서 놓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합니다. 듣고 듣고 또 들으면서도 여전히 듣고 싶어 해야 하고 그 말씀이 아니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는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충만의 복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라시지요? 우리 교회가 은혜 충만하고 생명과 기쁨이 넘치는 교회, 정말 주님이 잘 되게 하셔서 잘 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계시지요? 너무나 선한 소원이고 또 너무나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일은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하나의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고 또 이런 교회로 회복되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는 이 일은 과연 어디서 부터 시작되어질까요? 성령님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움직이시는 진리의 영이시니까 분명히 이런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고 또 들려지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은혜를 원하고 부흥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를 기뻐하며 그 진리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나부터 그런 변화를 일구어 낼 때, 우리 교회도 그렇게 복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을 때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성도들이 진리에 관심이 없어지면 그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영적인 기근이 시작됩니다. 그 때부터 성도들의 영혼은 항상 배고프고 항상 목마릅니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합니다. 과연 이런 성도들이 행복할까요?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 그래서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먹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이 정도로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사랑과 애착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성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성도의 신앙생활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것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진리에 관심이 없고, 그것으로 영혼을 채우려는 갈급함이 없는 성도 치고 그 영혼이 기쁨과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성도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들려 주시는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믿음의 귀를 기울이는 성도치고 영적으로 시들시들한 성도 또한 없습니다. 건강하고 힘이 있으며, 그 얼굴에 영적인 기쁨이 흘러 넘치는 성도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명의 양식이며, 또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이기 때문에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내 영혼의 회복, 그리고 우리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태도가 달라질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복된 사건입니다. 우리가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아 먹으며,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거기 성령님께서도 충만하게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간곡히 부탁하고 권면합니다. 꼭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는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꼭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그러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여 애쓰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시고 예배에 와서는 여러분의 영혼을 다 쏟아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말씀에 내가 누릴 참된 복, 우리가 누릴 진짜 복이 모두 달려 있으니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 위에 충만하게 임재하셨습니다. 우리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 성령님을 충만하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루 속히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답게 귀하게 여기며 즐겨 듣는 마음이 회복되어서 우리 교회가 주님의 영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는 참된 부흥을 경험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