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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13. 새벽예배 - 요셉과 베냐민(창세기 160)


창4922to27 - 요셉과 베냐민(창160).pdf


20140613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9장 22-27절



이제 야곱은 마지막 두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이 둘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에게서 나온 두 아들이었습니다. 그만큼 각별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래서 야곱이 이들에게 특별한 복을 빌어 주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행한 일이었습니다. 먼저 요셉입니다. 요셉은 이미 비공식적으로 복과 약속을 받은 이후였지만 형제들 앞에서 한 번 더 야곱의 축복과 약속을 받게 됩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찬양으로 만들어 져서 불리워질 정도로 성도들이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참 멋진 말씀이고 복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무성함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요셉은 시편 1편이 말하는 것처럼 물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그래서 항상 빛이 푸르르고 가지는 무성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푸르름과 무성함은 담장을 넘었습니다. 그 풍성함을 바깥으로 드리웠습니다. 이것은 그 자신도 복되고 풍성할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의 풍성함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바깥을 향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그 동안의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그는 최악의 죄수에서 일약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전을 경험하였지만 요셉은 그것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섬기고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영광이 있었지만 요셉의 진짜 영광은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복된 도구가 되어서 다른 이들을 살렸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진짜로 복된 이유는 그의 복은 자신이나 자기 가족만 복되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을 복되게 했습니다. 그야 말로 요셉의 삶이 진짜로 복된 이유는 그가 담장 안의 무성한 나무가지가 아니라 담장을 넘은 나무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나 혹은 ‘내 가족’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 식의 복이지 성경이 말하는 복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이해되는 복은 그 사람 개인이 잘 나거나 혹은 능력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저 운이 있어서 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가족의 범위를 넘지 못합니다. 이런 생각을 대변해 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누가 뭐래?”라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말을 들으면서 이 말에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성경적인 복이 아니라 기복적인 의미에서의 복, 그저 행운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복을 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한결 같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 사람 자신이나 그 사람의 가족만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에게 주신 복도 그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자신을 향하는 복이 아니라 자기 바깥을 향하는 복이었습니다. 그들이 받은 복은 스스로 ‘복’이 되어주는 복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 복이 요셉의 자녀들에게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이 복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너만 정직하고 너만 잘 살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 복으로 남을 위한 복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크든 작든 우리 자녀들을 담장을 넘은 무성한 나무가지가 되는, 요셉의 복을 지닌 자녀들로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을 이렇게 이해하고, 또 자녀들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가르칠 때,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의 삶을 계속 담장을 넘은 무성한 나무가지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물론 야곱은 요셉의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요셉의 활은 그 활보다 더 강할 것이고 그의 팔은 더욱 더 힘이 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자신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의 손을 힘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남들을 위한 복이 되는 사람. 그냥 생각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적도 없고 해꼬지 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선함과 복됨 때문에 다른 이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고 악인들은 또한 그렇게 선하고 고상하게 사는 모습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이유 없이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 전능하신 팔로 그를 지켜주시고 그를 붙들어 주셔서 대적하는 자들을 능히 이기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더욱 더 풍성한 삶이 되게 해 주십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네 선조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복이란 복은 다 약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가장 복되게,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복 답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니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도 투자할 만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베냐민이 마지막 차례입니다. 야곱에 베냐민에게 들려준 하나님의 뜻이 이것입니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 지파는 이 복을 그대로 받게 됩니다. 훗날 이 지파에서는 용감무쌍한 용사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받은 이 용맹함의 복 또한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것을 챙기기 위해서도 싸웠지만 그렇게 얻은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지만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강점은 단순히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능력과 장점을 가지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의 능력과 강점은 신앙적으로 볼 때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돌보고 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니, 나를 위해서 사용하고 또 남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나를 망치고 남을 망가뜨리는 도구가 되지 참으로 복된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야곱이 요셉과 베냐민에게 주었던 복과 약속은 과연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복’이라고 불리는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 복을 가지고 우리가 우리 이웃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한 복이 되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복된 인생이란 복을 많이 받은 인생이 아니라 그 복으로 남을 위한 복이 되는 그런 인생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넉넉한 공급자가 되어주실 것이고 또한 우리를 보호하시고 힘 주시는 분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이렇게 참된 복된 삶을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