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8.29. 금요기도회 -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사도행전 74)



20140829FE.mp3.zip


행1220to25 -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사도행전74).pdf





본문 : 사도행전 12장 20–25절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하여 지고 그 안에 뜨거운 말씀의 역사가 임하기를 소망하면서 금요일 저녁마다 사도행전을 설교해 왔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사도행전을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저를 많이 고쳐주신 것 같습니다. 제 안에 있는 성령님의 역사나 믿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 잘못된 믿음, 그리고 잘못된 기대들을 보게 하셨고, 또 조금씩 조금씩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도 많이 바꿔 주셨고 또 뜨겁게 해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을 통해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콩나물 시루에 부어지는 생수가 시루의 콩을 자라게 하듯이 사도행전의 말씀들은 우리의 영혼을 자라게 하고 든든하게 했습니다. 오늘로 사도행전 설교는 일흔 네번째 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이 사도행전의 전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전반부에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후반에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또 주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반부의 마지막 본문을 대하게 됩니다. 혹시 절반을 지내오는 동안 놓친 은혜가 많다고 생각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좀 더 큰 기대를 가지고 말씀에 집중하셔서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의 말씀들을 통해서 주시는 귀한 은혜와 도전들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전반부는 주로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진행되어져 왔습니다. 처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께서 불의 혀처럼 임하셔서 사도들과 성도들의 입술에 복음을 담으셨고, 그 복음이 선포되자 하루에도 수 천 명씩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고 그렇게 전도된 사람들이 또 다시 사방으로 흩어져 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복음은 더욱 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마다 성령충만하여졌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방인들 중에서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복음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말씀이라는 사실도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핍박자였던 사울이 회심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는 정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의 승리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헤롯 아그립바 왕이 교회와 사도들을 핍박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첫번 희생자가 바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참수를 당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게 나타나자 이번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를 죽으려고 잡아 들었습니다. 왕으로서의 정통성이 부족했던 헤롯으로서는 유대인들의 더 큰 지지가 필요했으니까요. 정치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번 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해 버리면 그 권력을 계속 붙들고 또 더 크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 사람은 하지 못할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가끔식 정치가들의 악행을 생각하면서 설마 사람이 그렇게 까지 하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치가들은 우리가 설마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일을 서슴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못할 일이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헤롯은 베드로도 야고보처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처형되기 전 날 탈옥이 절대로 불가능한 감옥에서 베드로를 아무도 모르게 탈출시켜 주셨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헤롯은 베드로를 지키던 죄 없는 파수꾼들만 처형하고는 다 귀찮다는 듯이 유다를 떠나 가이사랴로 훌쩍 떠나 버렸습니다. 헤롯은 베드로 때문에 오히려 유대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더 난처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가이사랴로 내려가 버린 헤롯 왕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요 헤롯은 한 마디로 굉장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누구의 잘못 때문이었든 간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헤롯을 달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헤롯이 다스리던 땅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공급받지 않고는 두로와 시돈은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을 달래기 위해서 그가 머물고 있었던 가리사랴로 몰려 갔습니다. 직접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헤롯의 측근인 심소담당 신하인 블라스도를 중간에 세워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날짜는 헤롯이 잡았습니다. 그는 단상을 세우고 거기 앉아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일장연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과연 이 연설이 듣기 좋은 연설이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권력에 중독되어 있는 그의 입에서 선한 소리가 흘러 나올 리는 없죠.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이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의 연설이 끝나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오!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다!” 이 말이 진실이었을까요? 정말 헤롯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그 사악한 권력자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처럼 들릴 리가 없죠. 요즘 ‘영혼 없는 말’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외침은 그저 어떻게든 헤롯을 달래서 화해하고 계속해서 식량을 공급받으려는 심산으로 내뱉은 영혼이 없는 사탕발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그것을 너무 너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사실 옛날의 왕들은 거의 모두가 사람들이 자신을 신처럼 여겨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까요. 성경에 나오는 거대한 동상을 세운 왕들도 그래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이 헤롯 왕은 그런 욕망이 무척 큰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이 대중 앞에 설 때는 특별히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그 옷은 은으로 되어 있는 옷이었는데요. 그는 태양빛이 강렬할 때, 일부러 그런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주 신비하게 빛나는 눈부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지요. 사람들이 자신을 신처럼 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유치한 짓을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스스로를 높이려는 교만한 사람처럼 유치한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는 대단한 것같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를 진심으로 높게 생각한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그 사람만의 착각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혹은 재물 때문에, 혹은 관계 때문에 그 사람 앞에서는 그 사람을 높이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는 그런 그 사람을 업신 여기며 자기 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헤롯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도 없는 찬양을 늘어놓자 헤롯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입니다. 자기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라고 추겨 올리는데도 그저 그것을 즐길 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이 사건은 역사의 기록에도 남아 있습니다. 유세비우스라는 역사가는 헤롯이 그런 대접을 받고 곧 바로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급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역설적인 일입니다. 겉은 그 누구보다도 화려합니다. 그러나, 그는 벌레가 그의 뱃속을 파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겉은 번지르르 했지만 속은 썩은 사람, 그가 바로 헤롯이었던 것입니다. 헤롯의 죽음은 어쩌면 우리에게 자신의 겉모습, 자기에게 덧붙여 지는 것에는 온 신경을 쓰지만 정작 자기 영혼이나 속 사람의 모습에는 전혀 마음쓰지 않는 사람 속에서는 이런 일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겉으로만 괜찮다고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훌륭한 사람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속이 썩어가고 텅 비어 가는 그런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죽음을 향해 움직여 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혼과 속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겉 사람의 모습이나 나에게 더해지는 것들이 아니라 바로 그 두 가지를 가장 신경 써서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거룩해지고 온전해져 가고 있는 지를 잘 챙겨야 합니다. 


헤롯은 적어도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또 살릴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 권력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 하며 아첨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는 또 그 힘으로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는 헤롯의 손에서 완전히 끝장나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를 기적처럼 빼내셨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잃어버린 야고보는 자기 믿음을 위해서 생명도 아까워 하지 않는 믿음의 용사로, 그리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자로 삼으셨습니다. 한 사람은 살아서 또 한 사람은 죽어서 성도들의 믿음을 돕고 하나님의 영광을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던 헤롯은 결국 하루 아침에, 그것도 벌레에게 뱃속을 파 먹히는 고통 속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치시자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롯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헤롯의 급작스런 죽음을 보고하는 23절 뒤를 잇는 2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았던 헤롯은 하루 아침에 스러져 버립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무너뜨리고 없애버리려고 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흥황하여 이전보다 더 커다란 맹위를 떨칩니다. 커다란 소용돌이처럼 여겨졌던 헤롯은 그저 작은 파문만 남긴 채로 자신이 흔들려고 했던 하나님의 역사 아래로 흔적도 없이 가라앉고 맙니다. 그러나 미풍처럼 여겨졌던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상을 휩쓰는 태풍으로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헤롯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없애려고 했던 교회는 여전히 든든하며, 십자가의 복음 또한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말씀 하나가 떠오릅니다. 이 말씀은 생각할 때마다 우리를 힘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는 능력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40장 6절부터 8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하나님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할렐루야! 결국 신앙의 싸움은 사람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의 힘과 재물, 그리고 업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 편에 서게 되지요. 그렇지만 사람은 아무리 길어봐야 한 평생입니다. 그 사람의 권력이나 업적은 50년을 가지 못합니다. 그 이후에 그것들은 사람과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제가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중에 나온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러시아 초대 대통령인 고르바초프의 영부인은 지병으로 치료를 받으러 서방세계로 갔었는데 그만 그기서 회복하지 못하고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시신을 운구하러 그 나라까지 갔지요. 그래서, 대통령과 고인이 된 영부인이 비행기로 다시 러시아로 되돌아오는 장면이 텔레비젼에 그대로 중계되었다고 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비행기의 출입문을 통해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영부인의 시신은 비행기의 화물칸에 실렸다가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곳을 통해 내려졌다고 합니다. 세상 없는 권력자도 죽으면 그 뿐입니다. 죽음은 시신이 될 뿐이고 그러면 그저 화물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권력에 의지해서,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 지탱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그런 것이 사라지고 자기를 떠날 때는 그것과 더불어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는 사람들은 영원히 든든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확실하고 능력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영원하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중에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이 그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거기 귀를 기울이며 거기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 이외에는 이렇게 쉽게 변하고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변함없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하나님만이 영원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변치 않으며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지는 능력 있는 약속임을 믿습니까? 이제 그 말씀 위에만 우리의 인생을 세우십시다. 그 위에만 우리의 믿음을 세우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듯이 우리의 삶과 신앙 또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건축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