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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4.1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신명기 20-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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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4월 14일 화요일




20장에 나오는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과 전쟁을 치를 때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들인데요. 이것은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전쟁을 치러야 하고 또 그 후에도 다른 민족들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내야만 하는 이스라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명령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들 속에는 전쟁 자체에 대한 명령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전쟁을 치르는 동족들에 대한 배려의 의무들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시에 통용되는 군법치고는 아주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적군과 싸우게 될 때, 그들의 숫자나 무기를 보고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거꾸로 뒤집으면 그 반대의 경우에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그 승패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며 하나님께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두려움 없이 그 싸움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느냐 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만 확실히 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전쟁과 똑같아도 본질적으로는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삶에서 치러내는 전쟁도 이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하고 싸워야 하는 세상이라는 적군은 항상 우리보다 크고 힘도 셉니다. 물리적으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싸워보기도 전에, 그리고 조금  싸우다가 말고 스스로 세상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실적인 전쟁들은 모두가 다 본질적으로는 영적인 전쟁이고 그래서 그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조건은 눈에 보이는 크기나 힘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게 되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뒤 이어서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올리지 않은 사람, 포도원을 만들고 아직 첫 열매를 맛보지 못한 사람, 여인과 약혼하고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사람, 그리고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마음이 약한 사람은 참전의 의무를 면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마지막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 사람 자신보다는 그 사람이 전체 이스라엘 군대에 끼칠지도 모르는 좋지 않은 영향 때문이었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는 없습니다. 전쟁이 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많은 병사를 모으려고 하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그와 반대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그 전쟁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치열한 전쟁이 되겠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끝까지 너희 동족들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그들을 그저 이기기 위해서 싸워야만 하는 병사가 아니라 끝까지 너희 형제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전쟁의 승패는 철저히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자신들의 치러야 할 진짜 전쟁은 영적인 전쟁, 믿음의 전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을 때, 그렇게 해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에만 그대로 따를 수 있는 명령입니다. 여전히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숫자나 무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전쟁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현실이라는 전쟁터에서 세상이라는 막강한 적들과 맞붙어 싸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똑같은 마음과 생각,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싸워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승리를 목적으로 싸웁니다. 그래서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싸웁니다. 대개가 그렇게 싸웁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승리가 아닙니다. 싸움의 승리는 이미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우리는 승리를 위해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부분은 우리의 사령관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방법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만 하면 됩니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두려워 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 싸움에 임하고, 또한 최대한 나와 함께 싸우는 믿음의 식구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고 그 싸움 중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진멸하라고 하신 성읍이 아닌 경우에는 공격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화친을 제안해야 하며 그들이 화친을 거부해서 전쟁을 치르게 되고 그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군사인 성인 남자만 죽이고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오랫 동안 어떤 성읍을 포위했을 때에라도 그 성읍 주변의 과실수들을 베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것이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식이 될 것이니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 싸겠느냐?”고 물으셔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파괴하고 부수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싸움이 무슨 싸움이든 그 전쟁의 참된 승패는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기기 위해서 싸우지 않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스스로 인간성과 양심을 버리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도 좋은 수단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싸움을 피할 수는 없을 지라도 너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부수고 파괴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군사된 성도들의 특징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21장 부터는 이런 저런 규정들이 마치 법전에 법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는 살인자가 밝혀지지 않은 살인이 벌어질 경우, 그런 죄를 위해서도 속죄제물을 드리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죄가 처리되지 않은 채로 그냥 남아 있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속죄를 받고 깨끗하게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비로워야 한다는 원칙에서 나온 여러가지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실 속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방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싸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싸움의 눈에 보이는 양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성도들의 싸움 속에는 항상 두 가지 아주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죄를 어떻게 다루고 또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는 엄격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죄를 지어서는 안되며 죄를 지었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최선을 다해 존중해야 하고 또 마음을 다해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반대로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죄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무자비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승리하는 군사들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최선을 다해서 순종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곳이 전쟁터이지만 우리가 치러내야 할 전쟁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치르는 전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전쟁의 승패는 내가 아니라, 나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고 그래서 내가 싸우는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순종이며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함을 잊지 말고 그것을 위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또 그 승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때, 그 승리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