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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5.08.0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열왕기상 17-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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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열왕기상 16장 후반부부터 마지막까지는 모두 아합왕의 이야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왕들의 경우 몇 절만 겨우 언급된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아합 왕의 이야기가 6장 넘게 기록된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아합의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합이 훌륭한 왕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형편 없는 악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합이 정치적으로도 엉망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합 왕 때에 북쪽 이스라엘은 그야 말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앙적이고 도덕적으로는 그야 말로 최악의 시대였습니다. 아합시대의 이야기만 보아도 눈에 보이는 번영과 영적인 상태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엉망으로 살았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기도 하시지만 그냥 내버려 두시기도 하시는데, 원래 악인들은 자기 앞가림을 잘 하기 때문에 그 때 아합처럼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하여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전성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진짜 모습,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고 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아서 이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이루어지기 힘든 희망사항이 되기 쉽습니다. 참 성도는 언제나 그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어지는 것이 없어도, 때로는 그래서 더 손해를 보고 살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랑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또 마지막 주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으로 부터 영원한 칭찬을 얻는 길이니 그렇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란 참 역설적이고 재미있습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나님 보시기에 큰 문제가 없을 때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나타나도 별로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많은 시대가 되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며 그들을 통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합의 시대가 영적으로는 그야 말로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하면 엘리야입니다. 특히 그가 기도하자 삼년 반 동안 가뭄이 찾아왔다가 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린 사건과 갈멜산에서의 전투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놀라운 일들입니다. 하나는 기도의 힘을 이야기할 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할만큼 엘리야가 성경과 우리 신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야가 있어야 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 시대가 영적으로는 최악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최고의 전성기였지만 영적으로 보면 암흑기였기 때문에 그런 큰 선지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오바댜 같은 의로운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왕궁에서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선지자들의 후견인과 보호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참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아합의 시대는, 적어도 그가 죽기 전까지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우상숭배가 성행했습니다. 이세벨의 밥상에서 459명이나 되는 바알의 선지자들이 식객 노릇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엘리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증거해 보입니다. 18장 21절에서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한 말에서도 드러나 있는 것처럼 그 당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이론상으로는 하나님을 떠나고 이방신을 섬기면 당장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혼줄이 나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자기가 나서서 우상숭배를 권장합니다. 이세벨은 그 원흉이었구요. 그런데도 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강합니다. 그러면 이 복은 바알이 준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주신 것입니까? 그 때,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나타나서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말합니다. 바알이 참 신이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해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악인이 득세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 나라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는 다른 신을 믿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빨리 성공을 이룹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런 증거들도 많습니다. 아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만 잘되고 잘 나가면 선택하기가 쉬울텐데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되고 잘 나가고 있습니다. 현실을 놓고보면 바알이 하나님보다 더 강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시는 시험문제와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바알과 하나님, 세상과 신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시험문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눈치채셨겠지만, 오늘 말씀을 비롯한 아합과 엘리야의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합과 이세벨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을 두려워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권한은 하나님이 쥐고 계셨습니다. 삼년 반 동안 비를 그치게 하신 분도, 또 결국 갈멜산에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신 것도 하나님이셨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아합시대의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바알을 섬길 때,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지 않고 최고로 번영하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시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눈치재치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험문제들을 잘 풀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험문제들은 눈 앞에 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그런 문제들입니다. 하나님도 힘이 있지만 현실이 더 힘이 세어 보일 때, 그 때 우리는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릴 수 있고, 우리 삶에 바알이 들어오게 하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시험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라는 대답을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변함없는 정답이 될 것이고, 우리를 바알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항상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가장 분명한 하나님을 붙드는 견고하고 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