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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5.12.18. 금요기도회 - 밀레도에서 12(사도행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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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20장 36-38절





그 동안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는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20장 17절부터 35절까지 겨우 18절 밖에 안되는 분량이지만 무려 10번에 걸쳐서 그 내용을 조금 자세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과연 몇 번이나 설교하게 될까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시작했지만 이미 10주 동안이나 이 본문에 머물러 있었고 또 오늘까지 더해서 21절을 11주에 걸쳐서 함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을 마지막으로 살피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은 항상 여러분을 돕고 돌보는 목회자를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과 여러분 신앙의 중심에는 그 어떤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놓여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 자신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자신이 훌륭한 목회자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또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의 영혼을 이끌어 줄 올바른 인도자를 잘 분별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목회자는요. 여러분의 신앙과 영혼에 있어서 정말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쨋든지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과 목적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목회를 하는가 하는 것, 그런 것이 과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방향에 있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 자신도 그리고 성도의 영혼도 같이 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회자가 아무런 흠 없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도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만, 큰 틀에서 그 사람이 과연 어디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목적으로 해서 목회를 하고 있는지 그것은 분명하게 보셔야 합니다. 저는요. 목회자는 사람 좋다고 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좀 못되어도 좋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자기의 삶과 신앙, 그리고 목회를 맞추어 가고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는 올바른 말고 그 사람의 삶과 목회의 방향이 그래도 한 곳을 향하고 있다면 그런 목회자가 오히려 맘 착하고 사람은 참 좋지만 생각도 기준도 없이 일관성 없이 목회하는 목회자 보다는 훨씬 좋은 목회자입니다. 여러분은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정직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애쓰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기준으로 해서 목회자를 바라보아야 하며, 이런 본질적인 부분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목회자가 아무리 사람 좋고 여러분에게 친절하게 대하더라도 그 목회자를 좋은 목회자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혹시 제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면 저에게 꼭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제발 저희 영혼과 신앙을 위해서 헌신해 주십시오. 바르게 목회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저 자신도 제가 바로 가고 있는지 어떤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귀를 열어놓으려고 애쓰고 있으니까요. 절대로 그래도 어떻게 목사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생각하지 마시고 꼭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정말로 소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여러분은 저를 지켜주는 그런 교회 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진리 앞에 서려고 애쓴다면 이런 아름다운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할 이야기를 다 마친 바울과 장로들은 이제 드디어 마지막 헤어지는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바로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헤어지기 전에 함께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장로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고, 장로들은 바울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게 말이지요.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하는 부분은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난 후에 있었던 일들인데요. 성경은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해줍니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저는 20대 때부터 정말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저는 그러다가 참 이상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당한 신앙연륜을 가지고 있는 그 분들이 이상하게도 굉장히 냉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것이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인 줄 알았습니다. 소위 ‘마음의 평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다른 사람이나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 때는 그런 모습을 추구했었습니다. ‘그래, 참 믿음이 있다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말아야지.’하면서 기도하고 애도 썼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과연 이렇게 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 맞나? 이런 것이 참 성도의 모습이 맞나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은 어떤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마음의 평안함을 얻고 또 잘 지켜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과히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항상 감정의 요동이 거의 없는 상태가 믿음이 좋은 사람의 마음상태일까요? 우리가 예수 잘 믿으면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 맞을까요? 사실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서 이상하게도 예수를 오래 믿고 교회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냉정해 지고, 사무적이 되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기 감정 힘들어지게 하려고 하지 않고… 신앙생활 자체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사람냄새가 희미해 지는 그런 분들 말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는,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그런 선입견이 있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감정도 항상 일정해야 한다는 선입견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 편견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류의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애쓰다가 문득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완전한 분이 어디있나요? 하나님보다 깊고 견고한 내적 평안을 지니신 분이 어디있습니까? 하나님보다 인격적인 분도 계시지 않지요. 그런데,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백성들 때문에 노하시고 슬퍼하시고 후회도 하시고 안타까워도 하시고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시며 심지어는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될 때는 질투라는 감정까지 느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제가 ‘이건 내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죄 때문에 속 사람이 많이 망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이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감정들이 하나님께도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런 감정들이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그런 감정과는 다른 점도 많았지만 하나님께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감정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면 우리들에게도 그런 감정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때로는 그런 감정들 때문에 흔들리고 힘들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확신이 된 것은 것은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는 사도 바울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하면 정말 강철같은 사람이고 그래서 그 어떤 감정의 요동도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엄청난 환란과 핍박, 그리고 육체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섬겼던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바울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사도행전 20장만 보더라도 그는 성도들 때문에 슬퍼하고 속상해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보고싶은 성도들에게는 그리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했고 성도들을 호리는 거짓 선생들에게는 ‘개’라고 욕하며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믿음이 부족하고 또 인격적인 수양이 부족해서 이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더욱 더 깊고 온전하게 믿으면 믿을수록 그리고 인격이 성숙해져 갈수록 그는 이런 모습을 되찾아 갔습니다. 바울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요? 그는 눈 앞에서 사람이 돌에 맞아 죽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지켜 볼 정도로 매몰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되찾은 모습, 그리고 그가 변화되어져 간 모습은 과연 누구의 모습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에베소의 장로들이 헤어질 때, 그들은 함께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또한 장로들은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더 근심했습니다. 슬픔과 근심이 그들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믿는 사람들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모든 면에서 변화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우리의 행동과 겉으로 드러나는 삶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 감정 또한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니까요. 하나님도 슬퍼하셨고 하나님도 근심하셨으며 하나님도 화를 내셨고 하나님도 안타까워 하셨는데 어찌 우리들이 그런 감정을 마다하겠고, 그런 감정이 귀찮다고 그런 감정을 떨쳐 버리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원래의 우리의 모습, 원래의 인간다움을 회복해 가야 합니다. 슬퍼해야 할 때는 슬퍼해야 합니다. 아파할 때는 아파해야 하고, 화를 내야만 할 때는 화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기쁠 때는 거리낌 없이 껄껄껄 웃을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물론 주의해야 할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과 바울은 우리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데요. 우리가 인간다운 감정, 사람다운 마음을 표현할 때, 그것이 나 자신의 이익이나 입장이 이유가 되거나 내 감정이나 자존심이 다쳤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울의 감정이 움직였던 것, 그리고 그 날 에베소의 장로들이 근심했던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과 교회 때문에, 장로들은 바울 때문에 그런 감정을 품게 되고 또 드러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쩌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사람다움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점점 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주신 하나님의 형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감정적인 부분에서 말이지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감정은 더욱 더 풍부해지게 마련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향한 감정은 분명히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분을 닮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절대로 신앙생활을 할 때, 사람다운 마음을 잃어버리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절대로 영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에게 더 많이 여러분의 마음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 때문에 웃고, 그들 때문에 울며, 그들 때문에 슬퍼하고 또 같은 마음으로 걱정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 참되고 따뜻한 인지상정을 회복해 가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관심을 가지시고 또 그것을 위해서 애쓰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감정까지 새로워지고 또 회복되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선명한 아름다운 주님의 사람들이 되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