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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3.0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겔 1-2장)


20160303 (#1).mp3.zip





설교일 : 2016년 3월 3일 목요일





이제 유다가 멸망당하고 수많은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 갔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겠지요. 나라가 완전히 망해 버리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고, 또 계시더라도 이제는 자신들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것 같고, 그래서 믿음은 더 흔들리고,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의도적인 반항심도 커져가고…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에스겔은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집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초닷새라” 


하나님은 5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하늘은 닫혀 있었고 하나님은 영영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백성들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에스겔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늘을 여시고 에스겔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히 버리고 떠나는 일이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때가 많고,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정말로 믿기 어려운 상황이 참 많지만, 하늘이 완전히 닫혀 있고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되는 그런 순간이나 상황은 참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선지자의 소명을 맡기시기 위해서 에스겔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환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에스겔은 1장 전체를 할애하고 있는데요. 이 환상 속에는 이상한 생물들, 바퀴, 영, 생물의 머리 위에 있는 두려운 궁창, 보좌의 형상 위에 있는 사람의 모양을 한 형상이 등장합니다. 간혹 보면 여기에 나오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 중에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주신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네 생물의 형상을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이 생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모양은 천사의 모양입니다. 특히 그룹들의 모양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시종, 그 영광을 찬양하는 영적인 피조물들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네 개의 얼굴은 각각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동물들 중에서 각각의 대표격이 되는 피조물들입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사자는 맹수의 대표, 소는 가축의 대표, 그리고 독수리는 날짐승들의 대표입니다. 각각의 동물군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피조물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네 가지 피조물은 이 세상에서 스스로 움직이면서 이 세상의 모습과 역사를 만들어 내는 모든 피조물들을 상징합니다. 앞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이라는 점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이 그 모든 피조물들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구요. 이 생물이 넷이라는 것은 동서남북 모든 세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 있는 바퀴는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바퀴 안에 있는 바퀴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흘러가는 인류의 역사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바깥 바퀴의 둘레에는 눈이 가득하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미합니다. 생물들이 가는 방향이 그 바퀴들이 가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사실 또한 이들의 움직임이 곧 역사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 바퀴들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영’입니다. 이 영은 성령님으로 보거나, 또 성령님께 순종하는 그 피조물의 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피조물들의 머리 위에는 두려운 궁창이 있다고 했습니다. 궁창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두렵다는 것은 거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26절을 보면 그 궁창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음성이 들려 올 때 생물들이 멈춰서고 그 날개를 가립니다. 이것은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궁창 위에는 보좌같은 것이 있습니다. 보좌는 보좌인데 에스겔이 처음 보는 것이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아시다 시피 보좌는 왕이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그 보좌는 비어있지 않았습니다. 사람같이 보이는 한 형상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지만 보통 사람과는 너무나 달라서 에스겔이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분이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이것이 분명해 지지만 오늘은 이 정도만 생각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제 2장으로 넘어와서는 그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소명을 맡기시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 세상의 왕이십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에스겔이 처음 본 환상은 바로 그 사실을 에스겔에게 분명히 보여준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 환상은 원래 이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야 정상인지를 보여주는 이상적인 모습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이 세상의 만물들은 모두 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방향을 바꾸지 말고 성령님께 인도하시는 대로 곧바로 움직여 가야 합니다. 때로 이 세상의 모습이 엉망진창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여 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의 역사를 그렇게 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으실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는 비어있지 않고 언제나 성자 하나님께서 앉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올 때까지는 과도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가는 모습도 있고 그 반대의 모습도 섞여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가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그 시험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비록 그런 세상에서라도 네 생물처럼 방향을 바꾸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곧바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신의 방향을 결정하면서, 네 생물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크고 작은 소명들을 아름답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영원한 보좌에 앉아 온 우주를 하나님의 나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더불어 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영원히 다스리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올곧게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