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에베소서 4장 7-12절
이제는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굉장히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야구 경기를 하는 실력 자체는 미국이나 일본같은 세계의 야구 강국을 상대로 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세계대회에서 우승도 할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선수들의 야구 실력과는 별개로 적어도 미국 야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수들을 발굴하는 스카우터들의 눈입니다. 우리나라 스카우터들은 이미 잘 하는 사람들을 골라서 데리고 갑니다. 누가 보아도 실력이 이미 증명된 선수들을 스카우트하지요. 그렇지만 미국의 스카우터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상식대로 한다면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선수를 데리고 갈 때는 최고의 선수들만을 골라서 데리고 가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은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고서 선수를 선택하고 또 스카우트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그런 선택이 대개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꽤 잘하는 정도였던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뛰기 시작하면서 거기서 비로소 진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자주 보게 되니까요. 그렇게 보면 미국 프로야구는 잠재력을 볼 줄 아는 눈과 더불어서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잠재력’은 겉으로 드러날 때까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날 때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또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되지요. 그렇지만 잠재력이라는 것은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그 사람 안에 있던 것이 훈련이나 연습, 그리고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 드러나게 되고 실제적인 힘이 되는 것이지요.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가 ‘은혜’라고 부르는 것도 이 ‘잠재력’과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은혜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요. 흔히 생각하듯이 은혜는 그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효과도 분명히 있고, 그것도 중요하기는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 은혜가 우리의 능력이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 또 은혜를 알기 전에는 항상 실패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았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은혜를 받으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자기도 이상할 정도지요. 미운 사람이 하나도 밉지가 않습니다. 항상 지기만 하던 죄를 이깁니다. 쉽사리 낙심하던 사람이 의지가 엄청나게 강해집니다. 이것은 다 은혜가 주는 능력 덕분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들을 넉넉하게 주셨다는 사실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은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미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미 넉넉한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많이 생각하시고 그 은혜를 사용하시며 살아가셨습니까? 아니면 전과 똑같이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현실에 함몰되어 그 은혜를 잊고 사셨습니까?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충분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능력으로 시험도 이기고, 고난도 견디어 낼 수 있고, 그러는 중에도 죄를 이기면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복되고 기쁨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저 깊은 암반에 저장되어 있는 지하수와도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그 물 맛을 볼 수 없지요. 저는 이 은혜라는 지하수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일은 마치 우리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펌프를 설치해서 물을 길어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펌프물은 처음부터 콸콸 쏟아지지 않습니다. 마중물을 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조금씩 조금씩 물의 양이 많아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촤악하고 쏟아져 내립니다.
은혜가 흘러 넘치게 하고, 그 은혜를 우리의 능력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이렇게 계속해서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펌프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에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마중물을 넣고 정말 목이 마른 사람이 펌프질을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끊이지 않고 솟아 오릅니다. 점점 더 많아지고 넉넉해 집니다. 이미 은혜를 주셨다면 왜 또다시 은혜를 구해야 하느냐고 질문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식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일생동안 필요한 모든 은혜를 한 번에 다 주시지 않습니다. 다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주시지만 그 은혜는 마치 지하수와 같은 모양으로 주시고 우리 손에는 그 지하수를 길어올릴 수 있는 펌프를 쥐어 주십니다. 그 펌프가 바로 믿음이고,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은혜를 길어올리는 기도가 꼭 필요한 것이고, 계속 그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믿음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펌프질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지하수가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우리가 기도로 은혜를 구하고 믿음으로 그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은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지속적인 능력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은혜 가운데 살고, 점점 더 넉넉한 은혜를 누리며 능력있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은혜를 길어 올리기 위해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주신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고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그런 것을 믿고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의지하면서 은혜의 방식으로 살아가셔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 연습을 하고 또 이런 연습에 익숙해 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는데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요?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를 확신할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온 세상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예수님과 함께 이미 전부다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는 우리 자신의 누추함이나 삶의 현실을 보면 안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은혜를 확인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럴 때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나를 위해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흔들리지 않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증거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만약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주실 수 밖에 없으셨던 이유가 하나 더 더해진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 믿음이 더 분명해 지는만큼 그 은혜에도 더 확실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 나머지 시간에는 그 이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엄청난 은혜를 주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1장으로 돌아가 보면 1장이 끝나갈 때쯤 바울은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이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시지요? 그 그림은 땅을 발로 딛고 서 있는 한 사람의 그림입니다.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몸은? 교회구요. 발밑의 땅은? 하나님이 지으신 온 우주와 만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우리들, 그리고 이 세상을 이런 관계로 만들어 놓으신 이유가 무엇이었지요? 그것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몸인 교회를 타고 흘러서 그 발밑의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온 세상을 예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역할을 하게 하시려고 세우신 예수님의 특별한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런 역할을 하는 교회는 하나님께 중요할까요, 중요하지 않을까요?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없으면 안될 정도로 중요합니다. 교회가 없으면 머리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세상을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 일할 몸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실패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는 우리가 우리의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독생자의 피의 값으로 교회를 사신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자신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교회를 보기 시작할 때, 교회의 진짜 영광을 되찾을 수 있고, 또 자신의 영광도 되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그런 눈이 너무 부족합니다.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도 교회를 그저 믿는 사람들의 모임쯤으로 생각합니다. 그 가치가 겉으로 보이는 교회의 이런 저런 모습과 조건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교회를 통해 얻는 개인적인 만족에 교회의 가치가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절대로 교회를 그렇게 보면 안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게 교회의 가치이고 영광이며, 교회와 성도가 이 땅에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 또한 그 안에서 우리의 존귀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을 예수님의 생명과 은혜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이고 또 우리가 그 몸의 지체라는 말의 진짜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도 다시 나옵니다. 8절부터 10절인데요. 먼저 8절을 보면 거기서 예수님은 전쟁에 승리하고 다시 성으로 귀환하는 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려오셨다고 올라가셨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신 것은 사람들을 얽어 매고서 불법으로 왕노릇하고 있는 사탄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은 싸우셨습니다.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는 일을 통해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셨고, 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죄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셔서 그 곳에 하나님 나라 깃발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셨고, 부활로 그 승리를 확정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의 결과물로 이 세상에 세워진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왕이 돌아와 되찾은 옛 영토 안에서 다시 그 왕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예수님께서 사탄과 죽음을 이기셨다는 증거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싸우시고 승리하신 목적을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10절 후반부를 한 번 보실까요? 거기 뭐라고 되어 있지요?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온 세상 만물을 예수님의 생명과 은혜로 꽉 채우려면 먼저 그 세상을 자기 것처럼 차지하고 있는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싸워서 이기고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싸우시고 이기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무슨 일만 남았죠? 채우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1장 23절을 보면 거기는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 두 구절은 사실 서로를 설명해 주는 말씀들 인데요. 두 말씀을 연결시켜 보면 온 세상과 만물을 충만하게 채우는 일이 교회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는 자기가 가진 것으로는 절대로 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들을 뭐라고 부르지요? 하나님의 선물, 그러니까 ‘은혜’라고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아셨지요? 우리가 그 은혜를 공급받아야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충만하게 가꾸어 가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을 위해서 성도와 교회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부족하게 주시겠는가? 하나님께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은혜를 주시면서 그것을 아까워하시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람이 끊임 없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 있는 것이 부족해지거나 아얘 없어지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항상 그렇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믿습니까?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주십니까? 우리 개인에게도 그렇고 교회에도 그렇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성도 여러분, 사실 이것은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치를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절대로 만물을 충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이 세상과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실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살아 보십시오. 그렇게 살아보려고 결단을 내리시고 한 번 애써 보십시오.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다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모든 것, 여러분이 부족할까 걱정하고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그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예수님의 충만한 나라로 회복시켜 가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교회와 성도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름받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정말로 믿고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시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도 함께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절대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그 은혜를 열심히 길어올리지 않고 있거나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ㅈ ㄴㅈ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아가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이 세상을 예수님의 은혜와 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일에 헌신해 보십시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나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 내 필요에만 민감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절대로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면 남을 위해 흘려 보내는 존재가 되어야 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을 섬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해서 풍성하게 흘러들어와 내 삶을 채우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충분히 주어져 있습니다. 믿습니까? 이제는 그 은혜를 그냥 묵혀두지 마시고 열심히 길어 올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구하고, 은혜에 의지해서 살며, 그 은혜로 자신이 서 있는 그 곳을 하나님 나라처럼 섬기며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도 은혜를 많이 길어 올리고, 그 은혜에 의지해서 섬기며 사는 연습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새롭게 허락된 한 주간도 끊임 없는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족하다고 찬양하며 사시는 복된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시 한 번, 나에게 이미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고백하시구요.
- 둘째로 이제는 나 중심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 세상을 예수님의 은혜로 채우며 사는 복된 삶을 살겠습니다.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갈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