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6월 7일 화요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아마 온 인류가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 나라 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제 생각에는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비율적으로 볼 때,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 나라 백성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것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은혜를 이야기하면서도 항상 그 은혜의 뒤편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증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때로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은 증거가 적을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아예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서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거에 대한 말씀을 읽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말씀들을 만날 때, 그 말씀 앞에서 절대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말씀 앞으로 다가갑니다.
은혜로 구원받는 것과 그 증거를 나타내는 삶은 서로 상관 없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들은 그런 명령들에 순종해서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어 나의 백성이 되었으니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왕의 명령에 무관심하고 또 순종하지 않으면서 그 나라 백성으로 자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가르치면서 점점 더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이 어떤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은 굉장히 실제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서로 나눌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7장에서 예수님은 자기 앞에 앉아있는 청중들을 향해서 몇 가지 실제적인 계명을 주신 후에 13절에서 그 모든 말씀들을 이렇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에 적용시켜 보면 이런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좁습니다. 아는 것보다는 순종하는 것이 훨씬 더 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단 알아야 하고 알았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이렇게 성경이 많고, 또 설교를 쉽게 들을 수 있고, 또 성경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으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데 게을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는 더더욱 게을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좁은 문을 찾지 않고 넓은 문을 훨씬 더 많이 찾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 되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지만 그 문은 멸망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반면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숫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만 그 문이 바로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수가 걸어가는 길에 대해서 매력을 느낍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게 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그렇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다수가 들어가는 문은 들어가서는 안되는 문입니다. 그 문은 언제나 들어가는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대다수가 들어가는 문은 어떤 문입니까? 그 문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옳기 때문에,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문으로 들어갑니까? 아닙니다. 그저 그 문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부담없이, 큰 어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자신을 부인할 필요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이 말씀에 경각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하며,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내내 이 말씀의 빛에 내가 가는 길을 비춰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8장에도 나옵니다. 여기에는 좀더 실제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요. 첫번째 이야기는 나병환자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이야기는 백부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8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에게 해주신 예수님이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앞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믿음을 보인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다 멸시하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나병환자, 그리고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이방인 백부장입니다. 넓은 길을 가면서 자신들이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저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병환자와 이방인 백부장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얻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정말 자신의 모든 것들을 전부 의탁하고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좀처럼 보이기 힘든 ‘좁은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요구하신 것도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중요한 일보다 우선되는 자리에 나를 따르는 일을, 나를 놓을 수 있겠느냐? 그런 좁은 문으로 들어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은혜의 길이 과연 넓은 길일까요? 네. 아주 좁지는 않은 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분명한 것은 대다수가 그 길을 걷기를 즐거워할만큼 그만큼 넓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넓은 길이어도 넓은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좁은 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주신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생명의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과 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된 길을 가면 안되니까 그러면 절대로 안되니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한 우리 주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시고 쉽지 않아도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서 주님의 소원대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백성이 되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